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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an and A Woman

9월과 11월의 사이, 애매하기 좋은 날

by 초록낮잠

계속해서 방준석의 남과 여 OST를 듣고 있다. 끊임없이 하루 종일

음악이 아름다운 것도 있지만 영화 속 핀란드의 겨울 숲이 자꾸 떠올라서, 두 남녀의 눈빛이 자꾸 떠올라서..


마치 대입시켜보는 것이다.

아득한 하얀 겨울, 가득 쌓여버린 눈 위로 발자국을 내면서 어떤 새로운 땅 높고 의연한 나무들에 가려 숨은 곳 나만 아는 어떤 곳에서 나는 누군가와 다시는 없을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그런 것을 종종 상상한다.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접어두었던 도톰한 이불을 꺼내 침대에 가지런히 펼쳐두었다.

기분 좋은 향을 피우고, 하나뿐인 창문을 활짝 열어 스스한 바람이 내 방에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메이야 - 부르면 내게 어느새 달려와 옆에 자리를 잡는 나의 메이, 그녀를 꼭 안고 낮잠을 잤다. 악몽 같은 건 꾸지 않았다. 털은 세상에서 제일 보드랍고 내게 전해오는 따스한 온도는 미소를 짓게 하고 작은 심장이 콩콩 뛰는 걸 느끼고 있으니 같이 살아있다는 사실이 문득 아련하게 느껴졌다.


일기장에 18년이 되면 서른을 축하하며 북유럽으로 여행을 가야지 라고 적었다. 내가 나와 할 수 있는 약속은 꼭 지켜내고 싶어서 세 번 네 번 다섯 번 적었다. 행복한 인생이란 대부분 조용한 인생이라고 요즘에는 정말 조용하고 행복하다. 언젠가 문득 떠났다가, 어느새 돌아오고 또다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고 그렇게 떠남과 돌아옴을 반복하다 결국에는 아주 멀리 떠나는 것 그리고는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게 되는 것


딱 한 번이어서 더욱 소중한 것일지 몰라, 내가 앞으로 들를 곳들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니까

내가 당신을 만난 것도 딱 그 순간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어서 잊을 수도 잃을 수도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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