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things to come

다가오는 것들

by 초록낮잠

11월, 겨울 같은 가을.


바람이 많이 부는 타지에서 회사 행사를 무사히 끝내고 숙소에 돌아와 이불 위에 시체같이 누워 'things to come'을 보았다. 좋아하는 배우, 아름다운 소품들, 예쁜 옷들(나도 늙어서도 저렇게 예쁘게 입어야지), 황홀한 음악과 풍경들.... 아 몇 달이라도 저런 곳에서 살고 싶다 검은색 고양이는 역시 너무너무 사랑스럽다 '판도라'라니 이름까지 예쁘다, 물론 우리 메이보다는 아니지만ㅋ


딱 할 만큼만 이기적으로 하는 나지만 적어도 남들에게 피해는 안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복덩이라는 별명이라니, 죄책감을 살짝 느낀다. 아무리 거지 같은 회사지만 지금 모든 상황에 불만은 없다. 그리고 실은 언제나 떠날 생각만 하는 내가 나도 걱정이다. 꼭 정착이라는 걸 모르는 인간 같아서


영화를 보고 나서 나이와 상관없이 묘한 공감이 일었다. 나름 겪지 않아도 될 것들을 꽤 겪어버려서 일까

아직 내게 오지 않은 사건들과 지나간 시간들과 곧 다가올 사건들을 가만히 그리고 아주 멍하니 그려보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굉장히 좋았다. 나의 인생에 대해서의 몰입. 짧지만 내가 가장 원하는 순간이다.

원한다면 우리는 행복 없이 지낼 수 있다

우리는 행복을 기대한다

만일 행복이 안 온다면 희망은 지속되며

환영의 매력은 그것을 준 열정만큼 지속된다

이 상태는 자체로서 만족되며

그 근심에서 나온 일종의 쾌락은

현실을 보완하고 더 낫게 만들기도 한다

원하던 것을 얻고 나면 덜 기쁜 법,

행복해지기 전까지만 행복할 뿐


알랭 행복론中


나는 제로 사상을 바탕에 두고 있다. 실제로 간절히 원했던 '것'이 오지 않았던 적이 있다. 다시 말하면 '오게 하지' 않았던 적이 있다. 마치 쥘레가 된 것처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을 계속해서 상상 속에 남겨두는 것. 희망이라는 단어를 증오의 대상에 가깝게 생각하지만 상상을 지속하면서 현실로 끌어들이지 않았던 기억은 나를 황홀경에 닿을 수 있는 고속열차에 잠시 태워주곤 한다.


사실 나는 언제나 행복해하고 싶은 인간이고 행복에 대해 집착하면서도 그 행복 후에 모든 것이 다시 제로로 돌아가는 순간들에 대한 인정이 너무나 빠르고 익숙해서 가끔은 너무 허무한, 무의미의 세계에서 축배를 들지만..언제나 그렇지는 못하더라도 본능처럼 튀어나오는 +1 -1 = 0 나의 삶에 대한 방식이, 태도가 앞으로도 오래오래 함께했으면 좋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시간을 보내주는 방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