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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심해어심해어심해어물속에서나는 새

by 초록낮잠

목적 없는 삶은 살아 있는 게 아닌 것 같아, 초점 없는 시야와 비슷한 느낌이라서

가까운 목표와 먼 목표를 공책에 써 내려가고 -나는 숨을 쉬고 있긴 한 걸까? 아무 생각이 없다-고 적었다

궁극적인 목표는, 목적지는 사실 죽음인데


여기서 과연 버틸 수 있을까 했는데 카드값 때문인지 다음 달이면 어느새 1년이다

첫 직장의 2년을 지나 3년 동안 여기저기 이동하고 멋대로 살았다 1년을 버틴 건 처음이다 어쩌면 앞으로는 일 없이는 지낼 용기가 나지 않을 것만 같다 출근길에 사르트르 문장을 읽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그 문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인간이란 단지 하나의 상황일 뿐이고... 자기의 계급과 자기의 월급, 자기의 일의 성격에 의해 완전히 자기의 정서와 사고까지도 규정지어진 거라고


나의 계급 나의 월급 나의 일 그 일의 성격 내가 하루 종일 하고 있는 이 짓들

나의 정서는? 사고는? 내가 애초에 타고난 기질과, 우연과 필연으로 후천적으로 얻게 된 나의 성격은?

과연 나는 나를 잘 돌보고 있는 걸까? 나 하나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서 무엇을 돌보겠다는 걸까

어제저녁, 메이랑 싸운 것도 다 내가 모자란 탓이다 메이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나는 왜 우냐며 또 버럭 소리를 질렀으니까 메이의 엄마라고 말하는 것도 사실 부끄럽다

물론 우리는 꼭 껴안고 체온을 나누며 잠이 들었지만... 언제나 죄책감 그리고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가까운 목표로는 일주일에 한 권의 책을 읽고, 라라 랜드를 심야로 보는 일, 일정하게 운동을 하는 것들이 있었고 먼 목표로는 18년 12월 친구와의 1박 2일의 세상 단절 바캉스와, 내년에는 꼭 가고 싶은 가족여행

그리고 /앨리가 앨리를 찾았을 때/라는 작은 책을 제작해서 지인들에게 나눠주는 일,... 이 있었다


내가 적금을 깨서 몇 번 갔었던 승마장도 이번 주면 마지막이다 갑자기 비어버린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몰라 비싼 돈을 지불하고 스스로와 시간을 보내는 법을 배우게 되었는데 혼자 시간을 사용하는 것을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이기까지 꽤나 힘이 들었다 커피를 들고 오랫동안 버스를 기다리고 낯선 곳에 홀로 가서 동물과 대화를 하고 교감?을(아니 괴롭히는 걸지도 몰라)하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것인데 뭐 나름 만족스러운 시간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아, 음악은 필수! 언제나 감정이 움직일 때 음악과 함께면 그 파장은 몇 배가 되기 때문이다


일은 하기 싫고 해서

계속 타자만 생각만 적어 내려가고 있다

계속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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