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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낮잠 Feb 01. 2017

Pardon me for showing overlove

 I don't know purple, though tropical

I devoured everything I could.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집어삼켰고 집어삼킨다. 그리고 빨아들이듯 집어삼키고 싶다. 나는 집어삼킬 듯이 읽을 것들을 필요로 했는데 다행히 좋은 타이밍에 알게 된 Art+Text 덕분에 이른 출근길에 다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읽다 보면 외로워지지 않아졌다.



[O의 이야기]


    내가 O예술이라 부르는 그는 내가 6년 전 자전거를 중고로 구입하며 알게 되었다. 그는 내게 흰 바퀴를 가진 갈색 자전거를 팔면서 자물쇠도 덤으로 주었는데, 며칠 후 나는 그 자물쇠가 작동이 되지 않아 그에게 물었고 그는 자신에게 여분의 자물쇠가 있으니 바꿔주겠다고 했다. 때는 내가 졸업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동안이었고, 인사동 근처 지하철역에서 우리는 다시 만나 나는 음료수를 그는 새 자물쇠를 주고 헤어졌다. 그게 인연이 되어 그 후에 친구들과 함께 팔당댐을, 한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기도 했고 감정들을 공유하고 어느 때나 어색하지 않게 안부를 묻는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 내가 타지로 떠난 후에도,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 사이에는 언제나 음악이 있었고 두서없는 대화가 있었으며 소통이란 폴더로 주고받는 메일들이 있었다. 귀국 후에도 우리의 만남은 종종 이어졌고 그는 음악을 말하고 쓰고 노래하는 재주가 있는 예술가라 담배연기로 가득 찬 붉고 매혹적인 작업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는데 어느 해 연말, 그와 그의 멤버들은 오랜 시간 동안 작업한 작품들을 함께 공유하고자 이런 자리를 만들게 되었다며 그곳으로 사람들을 초대했다. 그곳에서 나는 T를 만났다.

 

   명절이 지나고 휴일이 끝나가는 때에, 바람이나 쐬자고 O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는 커피를 사 한강 근처에 가서 서로의 취향이 딱 들어맞는 음악을 들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O는 차라리 나와 T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고 말했는데, 아니 나는 네가 보내줬던 일마레에도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느냐고, 나는 잘 만나고 잘 헤어진 것이라 생각한다고. 아주 잘 만나고 아주 잘 헤어진 것이어서 더는 바랄 것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결혼도 아이도 거부하고 싶지 않으면서 거부하고 있는데 몇 년 뒤 정말 아무렇지 않게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도 있으면 정말 웃길 것 같다고 얘기했더니 그는 평범하게 사는 것이 좋지, 그런데 세라는 너무 쎄.ㅎㅎㅎ라고 말했다. 내가 세긴 뭐가 쎄냐, 나 같이 순하고 여린 인간이 또 어딨다고ㅋ

    일마레는 <시월애>에 등장하는 초현실적 매개체인데, 그 영화 대사 중 언제나 기억하고 싶은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은 아무것도 잃어본 적 없는 사람보다 아름답다'는 말,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사랑을 사랑을 잃더라도 다시 해야 한다고...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 다음날 O는 지금 고백하러 왔다고, 상당히 떨린다고 했다. 나는 승리를 빈다고 진심으로 잘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4시간 뒤 어떻게 되었냐는 나의 물음에 O는 자신은 품절되었으며 어깨가 무거워졌다고 말하며 이어 '세라, 난 사랑에 빠졌어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느낌표를 붙이지는 않았는데, 내가 듣기로는 꼭 느낌표가 여러 개 붙어있는 것만 같았다. 친애하고 친애하는 O가 드디어 사랑에 빠진 것이다. 오랜만인 것 같아서 내가 다 감격스러웠다. 나는 사랑의 힘을 믿으니까 자꾸 아래로만 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하는 그가, 그녀를 만나 위로 다시 위로. 어딘가로 높이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것이 무에요?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O는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여자 친구와 술을 마시는 것인데 그녀는 술을 먹지 못한다고 아쉽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날 밤, 그녀와 그가 복숭아나무 아래 앉아 투명한 잔을 기울이며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듯 까르르까르르 사랑을 노래하는 것을 꿈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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