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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Aug 05. 2019

내가 처음 만난 물, 양수

태아를 보호하며 양막 안에 차 있는 액체

나는 처음부터 똑바로 서 있었다. 그 따뜻한 물속에서.


엄마는 결국 제왕절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께는 죄송하지만, 내가 왜 바로 서 있기를 바랐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이 문제였을까? 지금도 나는 물구나무서기를 못한다.


언젠가 발목을 고리에 걸면 저절로 물구나무서기를 할 수 있는 운동 기구에 타본 적이 있다. 몸이 그저 평소보다 좀 더 기울어졌을 뿐인데도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결국, 나는 기구에서조차 거꾸로 설 수 없었다.


원래부터 거꾸로 설 수 없는 인간인 걸까.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거기서 일어난 일을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다.


양수 2019


정확한 것은 내가 그곳에 머무르기 전까지 엄마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거란 것이다. 엄마에게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이미 아이를 가진 다른 엄마보다 시간이 더 필요한 일이었다. 왜 그랬는지 역시 알 수 없다. 그 일은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고 노력한다고 ‘반드시’ 되는 일도 아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불규칙하게 엄마 안에 도착했다. 아마도 겨울에. 


가을에 태어나서인지, 내게 여름은 너무 덥고 겨울은 너무 춥다. 시원한 것보다는 따뜻한 것이 더 좋다. 그래서 나는 그 물속이 매우 따뜻했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한다.


우리는 어쩌다가 그곳에서 나와버렸을까.

어떠한 의지도 없이.


물을 벗어난 순간부터 사람들은 위험해졌다. 누구도 깨끗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사랑이 필요했다. 

나를 다시 따뜻하게 만들어줄 누군가.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누구를 만나도 그 물속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오늘도 어디선가 어느 아이는 물밖으로 나온다.

결국, 태어난 자만이 진실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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