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주 Mar 20. 2020

판단하기 전에, 그냥 하기

랜선 요가의 가르침, "판단하지 말고 집중하세요"

내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은 10분 정도의 요가 스트레칭이다. 매일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해당 동작들에 제법 익숙해져 조금씩 다른 동작을 시도해 볼 때도 있다.      


사실 오래전, 학원에서 요가를 ‘얼핏’ 배운 기억은 있지만 아침 스트레칭 루틴을 시작하기 전에는 제대로 할 수 있는 동작이 거의 없었다.      


어느 날, 이대로 지내기엔 몸이 더는 허락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지날수록 몸은 더욱 뻣뻣해졌고, 재택근무로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세 역시 점점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매일 저녁이 되면 어깨가 쑤시고 허리가 아파 소파에 앉아있는 것도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목을 길게 빼고 ‘그놈의’ 스마트폰에 푹 빠져 있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던 중 스마트폰 중독의 순기능을 발견했다. 검색을 통해 친절한 랜선 요가 선생님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막상 ‘요가’라는 단어를 들으면 부담부터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아마도 과거에 몇 번이고 수강했다가 중단한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고, 뻣뻣한 내 몸에 대한 자신감 하락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래서 좀 더 난이도를 낮춰보기로 했다.

‘스트레칭’ 또는 ‘왕초보 요가’, ‘초급 요가’ 등의 키워드 검색을 통해 진입 장벽을 낮춘 것이다. 랜선 수업의 장점이란 언제 어디서든 내가 원하는 형태의 수업을 찾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니까.     


Photo by JD Mason on Unsplash


몇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마음에 드는 랜선 요가 선생님을 찾을 수 있었다. 다시 시작하는 만큼 조금씩 매일 할 수 있는 것이 중요했기에 운동 시간은 10분~15분 정도로 잡고 난이도는 초급으로 검색하여 찾은 수업이었다.      

하루 10분. 핸드폰 좀 보고, 인터넷 좀 하다 보면 금방 지나가버리는 시간이지만 매일 일정한 목적으로 10분을 보낸다는 것은 마음을 먹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보낸 10분은 여느 10분보다 무게감이 느껴졌다.     


영상을 보며 자세를 따라 하다 보면 어떤 자세는 잘 되는데 어떤 자세는 아무리 해도 되지 않았다. 잘 되는 자세는 보지 않고도 자신 있게 해내지만, 잘 되지 않는 자세는 몇 번을 돌려보아도 그 원리를 알 수 없어 답답할 때도 있었다. (사실 아직은 그런 자세가 대다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안 되던 그 자세를 잡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저 내 몸 하나 추슬렀을 뿐인데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내 몸에 숨어있던 잠재력 하나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자만은 금물이었다. 다음 날 또 안 됐으니까.     


다시 성공하는 비결은 성공 당시의 기분과 형태를 만끽하고 기억해두는 것이었다. 물론 그래도 또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 성공한 자세는 여러 번 다시 시도하면 아예 안됐을 때보다 더 빨리 성공할 수 있었다.     


Photo by Calder B on Unsplash


수업을 듣다 보면 부드러운 요가 선생님의 조언에 심중을 찔릴 때가 있다. 하루는 평소 잘 되던 전사 자세가 잘 잡히지 않아 휘청이던 중 그 말을 들었다.     


판단하지 말고 집중하세요!


정답이었다. 머리를 비우고 자세만 잡을 때, 비로소 자세가 잡힌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는 잡음이 없다. 고요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이 들어가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날 나는 거울에 비친 내 자세가 얼마나 비뚤어졌는지 판단하느라 집중하지 못했고, 결국 흐트러지고 말았다.     


글을 쓸 때도 가끔 나는 판단에 빠져 마무리를 짓지 못한다. 일을 할 때도 그럴 때가 종종 있다.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은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뿐이라는 것을 잊고 있던 탓이다.     


나는 이제 매일 10분의 스트레칭 루틴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다. 이것으로 무언가 이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만 그냥 한다. 조건 없이 그냥 반복하는 일 하나쯤은 내 인생에 포함되도록 자리를 내어주었다.      


아, 판단 없이 그렇게, 글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다시 생각에 빠져 이 글을 마무리 짓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로 위의 풍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