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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May 28. 2020

중요한 사실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최재은, 최재숙 작가의 그림책을 읽고

그림책 읽기를 시작한 어른에게, 좋아하는 그림책을 추천해달라고 묻는 친구에게 나는 언제나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원작 <중요한 사실, 최재은 그림, 최재숙 옮김> 을 가장 먼저 추천하고는 한다.


이 그림책의 원작자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은 어린이들의 시선으로 이야기하는 작가다.

운율이 느껴지는 시적인 글은 짧고 간결하지만 많은 이미지를 담고 있어 문장만으로도 그 장면이 느껴진다.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중요한 사실>, 최재은 그림, 최재숙 옮김


숟가락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다는 거야.

숟가락은 작은 삽처럼 생겼고, 손에 쥐는 것이고, 입에 넣을 수 있고,

숟가락은 납작하지 않고, 숟가락은 오목하고, 그리고 숟가락으로 뭐든지 뜨지,

하지만 숟가락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다는 거야.

-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중요한 사실> 중에서, 박재숙 옮김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이 이야기하는 중요한 사실이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우리가 늘 사용하는 숟가락은 그녀가 말한 것처럼 많은 의미와 다양한 이미지를 담고 있지만, 그 모두를 포함한 숟가락의 가장 중요한 사실은  '밥을 먹는다'는 것이다.


그림책 <중요한 사실>에서는 이외에도 비와 눈, 바람, 풀, 데이지꽃, 신발 등의 다양한 자연과 사물을 통해 그들만의 '중요한 사실', '본질'을 알려준다. 그러나 그것은 강요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숟가락의 중요한 사실이 '아이스크림을 뜬다'는 것일 수도 있듯이 작가의 시선은 읽는 이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줄 뿐이다.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르면 비로소 그녀의 의도를 알 수 있다. 바로 그림책을 읽고 있는 '너'에 대한 중요한 사실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다. 그녀는 어떻게 그림책을 읽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그것은 마지막 문장 하나로 설명할 수 있다.


너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너는 바로 너라는 거야.

-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중요한 사실> 중에서, 박재숙 옮김


<중요한 사실> 표지, 최재은 그림, 최재숙 옮김


나는 이 그림책을 글쓰기 수업을 시작하면서 종종 소개하고는 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나의 중요한 사실'에 대해 써볼 것을 과제로 내기도 했다. 처음에는 자기 소개서를 쓰는 것만큼이나 나에 대해 쓰는 것을 두려워하던 수강생도 아주 멋진 '나의 중요한 사실'을 한 편씩 부담없이 써올 수 있었다.


만약 이 글을 읽던 당신 역시  '나'에 대해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들거나 에세이 쓰기를 시작하려고 한다면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의 글처럼 나에 대한 '중요한 사실'에 대해 먼저 써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아래는 내가 나에 대해 쓴 중요한 사실이다. 적절한 예시일 지는 모르나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나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나는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거야.

나는 몇 권의 에세이와 몇 편의 단편 소설을 썼고, 아직까지 더 많은 이야기를 쓰고 싶어하지.

오전에는 명상과 걷기, 고양이를 쓰다듬는 것을 좋아해.

오후에는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며 커피를 마시거나 넷플릭스를 보며 게으름 피우는 것도 좋아하지.

친구와 전화로 한참 수다를 떨거나 저녁은 간단히 냉동식품으로 떼우는 것을 좋아해.

하지만 나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이 글을 읽고 사람들도 좋아하길 바란다는 거야.


숟가락의 모양 또한 이렇게 다양하다 (사진 출처 : 언플래시)


그림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서른 중반이 넘어서부터의 일이다.

내게는 그림책을 읽어 줄 아이가 없지만, 내 안의 아이를 일깨우고 위로하기 위해 그림책을 읽은 것이 시작이었다. 읽어가다보니 알게 된 '중요한 사실'은 그림책은 꼭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아이를 통과하여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림책은 아이들만 읽는다'는 '중요한 사실'은 그동안 나의 고정관념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외에도 내게는 불필요한 중요한 사실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때로 그 것은 타인의 중요한 사실을 따라가는 경우다. 살아가다보면 내가 만든 '틀'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그것이 안전하다고 굳게 믿고 지내는 시기가 있다. 그러나 사실 고정된 중요한 사실이란 아무것도 없다. 정말 중요한 사실은 오직 내가 나라는 것, 당신이 당신이라는 것 뿐, 모든 것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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