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나의 고정 카페 메뉴는 아메리카노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메리카노 보다 카페라테를 주문하는 횟수가 좀 더 늘었다. 그간 쓴 일기를 다시 보니 메뉴 변화의 시기는 작년 가을쯤부터인 것 같다. 하던 일이 어그러지면서 동시에 심리적으로도 잔뜩 위축되어 상담을 받기 시작한 때였다. 갑자기 갈 곳을 잃었고 날씨는 차가웠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면 의식처럼 상담소 근처 카페를 찾아가 내 작은 수첩에 느낀 바를 기록하고 돌아가던 날들. 내 앞에는 늘 따뜻한 카페라테 한 잔이 놓여 있었다.
이전에는 아메리카노의 강단이 필요했었다. 거의 매달, 팀 내에서 내가 쓴 작업물에 대한 평가를 받아야만 했고, 개선을 위한 충고와 조언, 새로운 의견들을 가차 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다. 일이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차가운 아메리카노 한 잔이 꼭 필요해졌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회사 주변 카페에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아 차가운 아메리카노 첫 모금을 들이켜면 그제야 조금 정신이 들었다.
그래, 이게 어떻게 찾아온 기회인데. 이제 내 나이에 이만한 기회는 또 없을 거야.
작업물을 내놓으면 평가를 받는 것이 당연한 이치지.
완벽한 글은 없으니까 당연히 수정해야지.
그럼 칭찬받을 줄 알았어? 정신 차리고 내일부터는 제대로 된 걸 써보자.
그렇게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는 동안에는 샷을 추가한 진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주 메뉴였다. 작업을 할 때도 습관처럼 아메리카노만 마셨다. 시럽의 단맛, 생크림과 우유의 부드러움을 더할 때는 아직 아닌 것 같아서. 사실 평가는 그들이 아니라 스스로 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 내가 얼마나 강박적인지 알지도 못한 채 시간이 흘렀고, 상담을 받고 나서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나는 여태 ‘자격 없음’을 외부 평가만으로 판단했구나. 그래서 거기서 멈춰버린 거다. 왜 그간 스스로에게는 전혀 묻지 않았던 걸까. 이대로 괜찮은 건지.
사진: Unsplash의Jojo Yuen (sharemyfoodd)
첫 상담을 받고 나왔을 때, 나는 이전보다 혼란한 기분이었다. 처음 보는 선생님 앞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쏟아낸 것 같았고, 내 고민과 상관없을 것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은 것 같아 홀가분하다기보다는 어딘가 찝찝한 기분이었다. 복잡한 생각들을 털어내러 들어간 근처 카페는 오랜 역사의 드립커피 전문점이었다. 평소라면 당연히 다크한 향과 맛의 드립커피를 주문했겠지만 그날따라 이상하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메뉴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망설이며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어쩌면 그것은 이전의 일상과 차이를 두는 작은 첫 시도였는지도 모른다. 잠시 후 테이블 위에 올려진 카페라테 위에는 웃는 얼굴이 귀여운 하트가 그려져 있었다. 모든 것이 괜찮다고 하듯이.
이후, 상담을 마치고 카페라테를 한 잔 마시고 돌아오는 것이 일종의 루틴이 됐다. 카페라테는 카페마다 스타일도 달라서 다양한 라테아트를 보는 재미도 있었다. 어느 날에는 토끼가 그려져 있거나, 해당 카페 로고, 나뭇잎, 무지개가 있을 때도 있었다. 이렇게 예쁜 것들이 사라지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반쯤 마실 때까지도 우유거품으로 그린 그림들은 꽤 오랫동안 유지됐다. 거기에 소소한 위로를 받기도 했다. 어떤 날에는 상담을 마치고 어떤 카페에 갈까 고민하는 것이 작은 설렘을 주기도 했다. 마지막 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나는 주저 없이 카페라테를 마셨다. 그날 위에 그려진 라테아트는 여러 개의 작은 하트들이었다. 하나로 좁혀져 있던 마음이 여러 갈래로 새롭게 피어오른 것처럼.
이제 나는 다시 새로운 작업을 시작할 채비 중이다. 글을 쓰기 위해 카페에 갈 때는 여전히 아메리카노를 먼저 주문하곤 하지만 이제는 카페라테를 주문하는 날도 있다. 또 다른 날에는 캐러멜 마키아토나 딸기 라테, 홍차를 주문하는 날도 있겠지. 수많은 카페 메뉴만큼 앞으로 펼쳐질 날들도 다양한 맛일 거라고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