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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Feb 14. 2024

1화. 무작정 1인출판사 운영할 결심

어느 작가의 1인출판 도전기

작년 여름까지 나는 어느 제작사의 계약 작가였다.


나는 약 2년 간 내 오리지널 아이템으로 TV시리즈 트리트먼트와 4부까지의 대본을 썼다. 신인에게는 쉽지 않은 기회였다. 작업을 하는 내내 넷플릭스, 티빙 등에 방영될 내 작품을 꿈꾸며 매달렸지만, 결과는 싸늘했다. 지면에 다 설명하기 구차한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쳐 제작사로부터 계약 종료 통보를 받는 것으로 내 드라마 작가 데뷔는 무산되고 말았다.


처음엔 노력의 결과가 실패라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보조작가 시절을 거쳐 지망생으로 긴 시간을 버티다 다가온 귀한 기회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 나는 신인이라기에는 조금 묵직한 나이인 40대에 진입한 참이었다.


통보를 받은 직후에는 억울함과 원망이 먼저 다가왔지만, 결국 스스로 능력을 비관하기도 했다. 한밤중에 갑자기 심장이 아파 응급실로 향하기도 했다. 계약 종료와 관련한 서류가 오가기까지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마음으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어찌 됐던 계약은 종료됐다. 그러나 모든 게 끝났다는 걸 인정하기까지는 꼬박 반년의 시간이 걸렸다.


어떻게든 다시 회생해 보고자 지난 6개월간 예술인 심리 상담을 받았다. 이는 예술인 복지 재단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인데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또 다른 지인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된 것이었다. (여기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 연재 중인 에세이 '혼자 카페에 가는 취미'에서도 언급하긴 했다.)


상담소는 우리 집에서는 1시간 거리에 있는 비교적 먼 곳이었다. 홈페이지를 통해 자신의 거주지와 가까운 곳으로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저 집과는 동떨어진 곳이면서도 어딘가 활기가 느껴지는 곳에 있는 곳이었으면 해서 즉흥적으로 그곳을 선택했었다.


심리 상담 중 내게 큰 도움이 됐던 교수님 말씀은 '나는 언제든지 자신에게 STOP!이라고 말할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 알고 보면 단순한 솔루션일 수 있지만, 내게는 그 어떤 조언보다 깊게 다가왔다.


그래, 이제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생각은 여기서 멈추자. STOP!


시작은 거기에서부터였다. 멈추었고, 끝을 보았으니 시작도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다시 조금씩,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나는 카페 구석 자리에 앉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솔직하게 써보기로 했다. 말 그대로 '솔직하게'



첫 번째, 이전처럼 또 어딘가에 매이고 싶지 않다.

어딘가에 다시 소속이 되면 돈을 받게 된다. 흔히 계약금이라고 하는, 신인 작가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목돈이다. 그러나 결국 그 대가로 상대가 원하는 것을 써내야 한다. 제작이 확정되기까지는 계약금이 연봉이 될 수도 있고, 생활비가 되기도 한다. 운이 좋아 레드 카펫이 곧바로 펼쳐지면 정말 행복하겠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다. 결국 이 일도 산업이기에 나는 회사가 원하는 것을 결과물로 내어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 내 작품을 끝까지 지키고 싶다.

이전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수년간 내 자식처럼 공 들인 작품을 결국 두고 나왔다. 아직 신인 작가여서? 뭐,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주체적으로 일을 끌고 가지 못했던 탓도 있겠지. 인정하기 싫지만 솔직히 남은 잔금에 백기를 든 것도 있다. 작품 위에 사람 없다고 믿고 싶지만, 일을 하다 보면 사람 위에 작품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어쩌랴. 내가 아직 이 세계의 인정을 받아내지 못한 것을. 결국 끝까지 싸우지 않겠다고 선택한 내 몫이었으니 누굴 탓할 것도 없다. (그래도 심장은 여전히 아프다.)


세 번째, 나는 사실 영상보다 책을 좋아한다.

얼마 전, 네이버 인물정보에 나의 경력을 등록했었다. 그런데 분명 영상 일을 더 오래 했음에도 포트폴리오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출간된 단행본 3권이 전부였다. 내가 참여한 영상 대본이나 시나리오들은 제작이 무산되었거나 연기된 경험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막상 영상 시나리오 쓰기로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그 일을 하며 간간이 쓴 소설과 에세이가 결국 내 메인 포폴이 된 셈이다. 그 일들은 그렇게 괴롭지도 않았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그러니 이제 내가 조금이라도 더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 모든 생각들을 조합해 앞으로 내 주체적으로 작품을 쓰고, 만들어가야겠다고 나름의 다짐을 했다. 그것이 잘 되던, 되지 않던 그건 추후에 알게 될 일이고 이제 심을 씨앗을 정했으니 시작할 땅이 필요해졌다. 여전히 무명인 작가는 땅을 직접 개척해야만 한다. 그래서, 무작정 결심했다.


나의 출판사를 운영하기로.



매거진 '밑줄서가'를 브런치북으로 옮겨 목요연재를 시작합니다.

응원과 하트 보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 전하며, 매주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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