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주 Feb 14. 2024

2화. 27,000원으로 출판사를 차렸다


일단 출판사를 차릴 결심은 했다. 

그래서 그다음은?


어떤 일을 시작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하는 일이 있다. 바로 포털사이트에 관련 키워드를 쳐보는 것이다. 무작정 '1인출판사', '출판사 등록', '출판사 창업' 등의 키워드부터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졌거나, 이미 그 길을 걷고 있는 선배님들의 정보가 가득했다. 


문득 기시감이 스쳤다. 벌써 십 수년 전의 일이었다.

첫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함께 일하던 동료 언니와 작업실을 차리고 쇼핑몰 운영을 시작했었다. 2천 년대 초반. IT산업의 부흥기이자 쇼핑몰 1세대가 막 출범하던 시기였다. 전에 내가 하던 일도 IT 쪽의 일이었기에 보다 자연스럽게 그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무모했던 첫 동업이자, 사업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폐업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폐업의 원인은 명료했다. 우리는 이전에 뭔가를 직접 '팔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저 컴퓨터 앞에서 월급 받으며 할당된 업무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업 전반의 운영을 맡게 되었는데도 별다른 공부도 준비도 하지 않았었다. 한 마디로 겁이 없었던 거다. 그래도 아직 20대였고, 언제든 다시 취업할 수 있다는 알 수 없는 자신감도 있어서 상처보다는 인생의 쓴 경험 정도로 여기며 무난하게 넘어갔던 것 같다. 물론 함께 폐업 정리를 한 동업자가 있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40대 중반으로 향하는 내게 재취업은 이제 창업보다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다. 무작정 창업을 했다가 실패하면 받을 타격도 이전보다는 두 세 배가 되리라는 걸, 지금 뭔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이제 그 일에 내 남은 날들을 건다는 나름의 각오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게다가 말 그대로 1인 출판사 아닌가? 


이제 모든 것을 온전히 혼자 해야 한다. 1인출판사를 운영 중인 랜선 선배님들의 여러 포스팅과 자료들을 정독하며 며칠을 보냈다.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알려 준 출판사등록의 첫 스탭은 출판사 이름을 짓는 것이었다. 맞다. 어디든 이름을 붙이면 의미를 갖게 된다. 생각해 보면 살면서 수많은 곳에 이름을 붙여봤다. 내가 키우던 화분, 고양이, 아끼던 노트북까지도. 가끔 익명으로 활동할 때 쓰는 필명도 있고. 이번에는 좀 더 심각했다. 쉽사리 바꿀 수 없을 테니까. 


여러 고민 끝에 출판사를 결심하기 몇 주전부터 책 리뷰를 올리는 채널로 구상한 '밑줄서가'라는 내 유튜브 채널명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곧바로 동명의 출판사가 있는지 문화관광체육부 주관의 홈페이지에서 출판사명을 검색해 봤다. 다행히 동명의 출판사는 없어서 바로 등록을 진행할 수 있었다.


다음 스탭. 친절한 랜선 선배님들은 포스팅에서 사업자등록보다 출판사등록이 먼저라고 알려주었다.

이는 출판사등록을 하면 추후 사업자등록증을 발급할 때 면세사업자로 발급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면세사업자'라는 단어를 보자 또다시 머리가 아파졌다. 그래도 일단 닥치면 할 수 있을 거라 믿고 관할 구청에 연락해 필요한 서류를 문의했다.



출판사등록을 하러 간 날은 역대급 시베리아 한파가 몰아친 월요일이었다. 

내가 가져간 서류는 신분증과 주민등록등본으로 매우 단출했다. '문화 관광체육과'가 있는 층으로 올라가 담당 공무원께 출판사 등록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담당자님은 곧바로 신고서 1장을 주셨다. 거기에 출판사명, 사업장 주소, 전화번호, 생년월일, 신고일 등을 기입한 후, 제출하면 끝이라고 했다. 비염 때문에 신고서를 작성하는 내내 훌쩍이긴 했지만 신청은 생각보다 더 간단했다.


다음 날, 출판사등록 알림과 함께 면허세 27,000원을 입금하라는 문자가 왔다. 

곧바로 해당 계좌로 입금한 후, 칼바람을 뚫고 다시 구청을 방문해 출판사 신고확인증을 받아왔다. 그걸 보고 집의 PC홈텍스로 사업자등록을 신청하는 것으로 내 작은 출판사를 열기 위한 모든 절차가 마무리됐다.


그렇게 나는 자본금 27,000원으로 1인 출판사 밑줄서가의 대표.... 가 되었다.


일러스트작가 꾸엉 770님이 그려준 축전 (현재 밑줄서가 유튜브/블로그 모든 곳에서 활약 중이다)



* 밑줄서가의 시작을 크루아상 1개 값으로 응원해주고 싶으시다면...


이전 01화 1화. 무작정 1인출판사 운영할 결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