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집안 곳곳이 소소하게 고장 났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일까,라고 생각하기에는 그다지 연관 없는 구역들이라 동시다발적인 이 현상에 대해 당장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그저, '그런 때인 가보다' 생각하며 스스로 다독이는 수밖에.
|처음 닥친 문제는 새로 산 냄비솥 바닥의 그을음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딱 한 번 밥을 지어먹었을 뿐인데, 누룽지를 끓이겠다고 오래 둔 것이 문제였을까. 하루종일 불리고 수세미로 문질러도 시꺼먼 그을음은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기세였다. 그냥 이대로 사용해야 하나, 포기하려던 그때 찬장에 고이 모셔져 있던 베이킹소다를 발견했다. 냄비에 베이킹소다를 넣고 끓인 후에 그을음을 떼어내면 된다는 정보를 어디선가 본 것 같다. 생각보단 실행. 하루종일 씨름하던 그을음이 너무나 간단히 똑 떼어내 졌다. 모든 일이 그렇다. 방법을 알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고, 내 코앞에 해결방법이 놓여 있어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 내가 가진 최소한의 것을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올 때가 더러 있다. 찬장 구석에 처박혀 있던 베이킹소다처럼.
| 두 번째 문제는 더욱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집 앞에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너무나 가벼운 옷차림에 스마트폰 하나만 달랑 가지고 나온 상황이었다. 되도록 이웃에 내 무방비한 모습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황급히 문을 열려는 순간, 나갈 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도어록이 방전되었다. 내 머릿속도 무응답인 도어록 액정처럼 까맣게 변했다. 도어록 주변에 붙은 '열쇠 고칩니다' 스티커가 곧바로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이번 달 생활비는 벌써 초과 상태. 기술자를 부른다면 적지 않은 출장비를 주어야 할 것이었다.
| 다행인 것은 내 손에 아직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얼른 '도어록 방전'이라는 키워드로 검색부터 했다. 수많은 블로그 게시물 중 '9V 건전지'에 대한 팁이 눈에 들어왔다. 건전지를 도어록 하단이나 전면에 있는 단자에 갖다 대면 전원이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얼른 편의점까지 뛰어가 스마트폰에 저장된 카드로 건전지 값을 계산하고 문 앞에 돌아왔다. 과연. 건전지를 갖다 대자 전원이 들어왔고, 나는 어느새 집 안으로 돌아와 있었다. 손에 아직 쥐어진 건전지를 보며 생각했다. 평소 때도 이걸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녀야 하나? 9V 건전지를 가방 속에 넣어 다니는 사람은 어떤 유형일까.
|평소보다 고장 난 것들이 유독 많이 보인 건 당장 뭘 해야 할지 모르고 갈팡질팡하던 내 상황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고장 난 것들은 고칠 방법을 찾으면 찾을 수 있다. 답답하고 초조한 건 방법을 찾기까지의 시간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