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안 쓰던 원고를 멈추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자료가 될만한 영화, 다큐멘터리, 영상물들을 찾아보고, 책도 읽었다. 여전히 나는 그 원고 안에 있다고 믿었다. 며칠 후 다시 쓰던 원고로 돌아가니 내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앞에 놓여 있었다. 그 며칠 사이 내 생각도 감정도 또다시 바뀌어버렸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 좋은 아이디어 하나. 거기에 매달린 얼마간의 시간. 완성하지 못한 글들이 창고에 쌓인 신문지 묶음처럼 가득 찬 '꼭 완성하기' 폴더.
| 문제가 뭘까 생각해 봤다. 처음의 흥미를 왜 끝까지 가지고 가지 못할까. 생각해 보면 흥미가 지속되기만 하는 일은 없었다. 재미는 언제나 시작점에서 나를 유혹했지만, 발을 들여놓고 나면 늘 지루함과 괴로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 처음으로 수영을 배웠을 때가 생각났다. 물속에서 숨 참는 방법을 배울 때.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항상 빨리 물속에서 빠져나오는 아이였다. 눈을 뜰 수 없는 잠시를 견디지 못해서, 이대로 가라앉아 영영 빠져나오지 못할 것만 같아서. 누군가 내 다리를 잡고 확 끌어당겨 버릴 것만 같아서. 물속에서 견딘 아이들은 곧 자유롭게 헤엄치게 되었지만 나는 끝내 날갯짓하듯 접영 하는 아이들 사이로 킥판에 매달려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 몇 주째 물 밖으로 고개를 빼고 바깥만 보고 있었다. 물속으로 다시 얼굴을 집어넣을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도망칠 거면 안 써도 되는데 물에서 나올 생각도 없었다. 지금 나오지 않을 거라면 결국은 물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결국 부딪혀야 한다.
| 킥판을 버리고 맨몸으로 자유형을 배웠을 때, 드디어 물속에서 숨 쉬는 법을 깨달았다. 물속에 고개를 넣었다가 빼기를 반복하기. 팔을 젓는 속도에 맞추어 일정한 간격으로 고개를 빼고 음- 파 음- 파.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은 결국 숨 쉬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나만의 호흡으로 다시 살아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