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은 물을 마시는 것으로 시작된다. 밤새 움츠러든 몸에 물을 주면서. 오늘도 건조하지 않게 살아갈 다짐으로.
| 작업 전에는 언제나 커피 한 잔이 필요했다. 커피를 내릴 동안에는 잠시 오늘의 걱정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간편한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마시는 것은 너무나 금방 지나가는 일이고, 인식하지 않고도 끝나버리는 일이기 때문에 가끔은 정성을 들여본다.
| 책상 위에 놓인 머그컵이 다 비워지면 그날은 그래도 뭔가를 한 날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멍하게 있던 날이나 흘러가는 매체에 매달려간 날은 마시는 진도조차 따라잡지 못한다.
|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술을 마시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술이 없는 인생을 생각하지 못했다. 술을 마시면 항상 후회가 따라왔다. 부끄러운 기억 뒤에는 언제나 술이 있었다. 지금은 곁에 없는 사람들도.
| 이제는 어쩌다 가끔 술을 마신다.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오랜 벗을 만날 때. 엄마가 언제인가부터 담가둔 과실주를 꺼낼 때. 인생에 어쩌다 한 번 찾아오는 행운을 자축할 때. 이제는 아껴두고 싶은 귀한 순간에 술이 있다. 그래서 자주, 마실 수 없게 된 것이다.
| 다시 차를 우리는 오후. 한 번의 찻 잎으로 몇 번이고 길게 차를 우려도 안될 것은 없다. 굳이 새로운 차를 우리지 않는다. 맛과 향이 옅어지면서 하루도 저문다. 조금 아쉬워야 내일의 희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