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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Oct 25. 2024

물, 커피, 술, 차

아침은 물을 마시는 것으로 시작된다. 밤새 움츠러든 몸에 물을 주면서. 오늘도 건조하지 않게 살아갈 다짐으로.

 

작업 전에는 언제나 커피 한 잔이 필요했다. 커피를 내릴 동안에는 잠시 오늘의 걱정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간편한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되지만 마시는 것은 너무나 금방 지나가는 일이고, 인식하지 않고도 끝나버리는 일이기 때문에 가끔은 정성을 들여본다.


책상 위에 놓인 머그컵이 다 비워지면 그날은 그래도 뭔가를 한 날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멍하게 있던 날이나  흘러가는 매체에 매달려간 날은 마시는 진도조차 따라잡지 못한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술을 마시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술이 없는 인생을 생각하지 못했다. 술을 마시면 항상 후회가 따라왔다. 부끄러운 기억 뒤에는 언제나 술이 있었다. 지금은 곁에 없는 사람들도.


이제는 어쩌다 가끔 술을 마신다.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오랜 벗을 만날 때. 엄마가 언제인가부터 담가둔 과실주를 꺼낼 때. 인생에 어쩌다 한 번 찾아오는 행운을 자축할 때. 이제는 아껴두고 싶은 귀한 순간에 술이 있다. 그래서 자주, 마실 수 없게 된 것이다.


다시 차를 우리는 오후. 한 번의 찻 잎으로 몇 번이고 길게 차를 우려도 안될 것은 없다. 굳이 새로운 차를 우리지 않는다. 맛과 향이 옅어지면서 하루도 저문다. 조금 아쉬워야 내일의 희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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