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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주 Nov 25. 2024

열다

|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부터 열어 본다. 차가운 바람과 약간의 소음이 들려올 때 하루가 시작되었음을 비로소 알아차린다.


| 아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동네 카페에서 카페라테를 테이크아웃했다. 손이 너무 차가워서였다. 종이컵의 온기 덕분에 비어있는 벤치에도 잠시 쉬어갈 여유가 생겼다. 커피를 조금 식히려고 컵 뚜껑을 연 순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뚜껑으로 가려진 테이크아웃 커피일 뿐인데, 귀여운 하트가 정성스럽게 그러져 있었던 것이다. 열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었을 다정한 마음. 넘어가지 않아서 다행. 알아차릴 수 있어서 감사.


| 다음 주면 마감해야 할 원고가 있는데도 계속해서 유튜브 숏츠를 보고 있었다. 한동안 안 보던 넷플릭스 드라마로 넘어가던 찰나에 번뜩, 오늘 날짜와 마감일 사이가 얼마나 좁혀졌나 생각해 보았다. 곧바로 집중력에 좋다는 음악을 찾고, 과연 효과가 있을까 싶어 댓글창을 열어보았다. 시험 준비 중인 수험생, 자격증을 준비하는 중년, 당장 다음 화를 써야 하는 웹소설 작가와 늘 미루기만 하던 집안일을 1시간 만에 해치웠다는 누군가의 댓글들. 천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당장 해치워야 하는 일이 있다는 사실이, 대부분 마감 앞에서는 같은 마음이라는 사실이, 잠시나마 위안이 되었다. 그나저나 이럴 땐 왜 댓글까지 재미있는 건지.


| 한동안 방치해 두었던 찬장 문을 열었더니 유통기한이 임박한 비빔면이 나왔다. 점심 메뉴가 고민이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 떨어져서 사려고 고민했던 인스턴트커피와 설탕도 거기에서 되찾았다. 다 갖고 있어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열어보기 전에는 절대 모른다.


| 어제 쓴 원고 파일을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열어 볼 용기가 났다. 줄거리가 다 있는데도 다음 장을 이어갈 길이 떠오르지 않아 더 쓰지 못했었다. 다음 단어와 문장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다시 앞으로 돌아가는 버릇이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을 고쳐 쓰고, 지우고, 다시 쓰면서 조금씩 길을 찾아간다. 설사 잘못된 길에 들어섰어도 내일이 있으니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내일은 그 길로는 다시 안 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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