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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근데 너 장손이잖아.

by 캉생각

나는 가족과 별개의 인물이 아니다.

가족 품에서 자랐고, 가족의 가호를 받으며 살아왔다. 또 나 스스로가 가족의 자랑임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 다짐을 한 시점에서, 나의 비혼은 어쩌면 가족에게 큰 혼란일 수도 있다.


더군다나 나는 장손이다.
딸 다섯, 아들 하나, 그리고 그 아들의 아들. 심각하게 무뚝뚝한 할아버지의 유일한 웃음은 ‘손자인 나’였으며, 할머니가 사시사철 물을 떠놓고 신에게 기도한 것도 나의 건강과 안녕이었다. 그들은 내 친부모보다 더 간절했다.


늘 가족 모임에서 따로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가 기억난다. 친척들이 다 모여도 홀로 등산을 가시고, 따로 TV를 보시던 할아버지는 가끔 내게만 손을 내밀어 산책을 가셨다. 그리고 오는 길에 꼭 과자를 쥐어주시고, 내 학교생활을 물으셨다. 물론 질문이 많지 않으셔서 내가 어색함을 깨려 조잘대야 했지만, 나는 그 순간이 사랑받는 시간임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더 말할 나위 없이 아들·손자 바라기셨다.

그것을 확신하는 이유는, 인지 기능이 약해진 지금도 나를 전혀 잊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녀는 본인 이름보다 나를 더 오래 기억하실 거란 생각이 들 만큼, 그녀는 나를 무한히 사랑하셨다. 그런 그녀는 지금도, 그 열악한 상황에서도 내 결혼 여부를 묻는다.

평생 그녀는 내 앞에만 서면 늘 라디오가 되었다. 그녀의 기도와 태몽 덕분에 내가 아들로 태어났다는 신화 같은 이야기, 중학생이던 내게 결혼을 하면 무엇을 해주겠다는 말, 심지어 국제결혼도 괜찮다는 이야기까지.

그리고 항상 강조하셨다. 내가 본인 제사를 이어 지내줄 유일한 혈육이라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복잡했다. 사랑받는 기쁨과 동시에, 내 어깨에 지워지는 무게가 느껴졌다.
나는 나 자신이 아니라 ‘대를 잇는 자’로 존재해야 하는 걸까? 나로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임무를 떠받든 자로서의 대우일까?


그런데 슬프게도, 나는 신인류가 되었다.

집안의 대를 잇는 문제는 지나간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억지로 잇는다 해도, 머지않아 사라질 문화라는 것도 깨달아버렸다.
집안의 후계자가 아닌, 스스로의 삶을 사는 것은 반항이 아니라 이른 선택일 뿐이다.


다행히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내 또래 친구들 중 절반 이상이 비슷한 생각을 한다. 우리가 멀리 나가 소리치지 않아도 뉴스에서 앵커가 차분하게 시대를 읽어준다. 우린 결혼을 미루고, 아이를 낳지 않고, 가문보다 개인을 선택한다. 기존의 삶들이 뭐라 하건, 오직 행복이 우선이다. 받아들이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이제는 조상들의 강에 합류해 흐르기보다, 그저 구름이 되고 싶다.

사라지고 마는 것들이라고?

아니다.

수증기는 사라지는 것 같지만, 하나로 모여 구름이 된다. 그리고 필요한 곳에서 비가 되어 내린다. 그 비는 다시 땅으로 스며들어 꽃을 피우고, 생태계를 이룬다. 강에서, 바다에서 물고기를 머금는 것만이 생명이 아니다. 구름도 삶을 만든다. 이것도 하나의 인생이다.


지금은 하늘에서 나를 지켜보실 할아버지와, 평생 나를 잊지 못하실 할머니에게 나는 “결혼 안 해요”라고 말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굳이 말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서서히, 천천히 버티며 언젠가 그들 곁에 가는 날, 손을 꼭 잡을 것이다. 그리고 말할 것이다.

“생각보다 제 삶, 나쁘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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