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의금이 아깝냐고요? 네.

by 캉생각

사람의 인생은 상부상조라고 한다.

기쁠 땐 축하하고, 슬플 땐 위로하는 게 삶이란다.

하지만 내가 이제껏 간 결혼식의 절반은, 내가 가도 안 가도 그들에게 아무런 차이가 없는 자리였다.
서로에게 그저 의무이자 사회생활의 일부였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찬란한 순간이 내겐 감동이라기보다 숙제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결혼식 당일까지 갈까 말까, 바지를 입었다 벗었다 하며 망설인 적도 있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잠깐… 그나마 내 또래 친구들이 기를 쓰고 남의 결혼식을 가는 이유는, 어쩌면 본인 결혼식을 위해서가 아닐까? 뿌린 게 있어야 거둘 수 있으니까. (왜냐면 친구들도 남의 결혼식에 기뻐서 간다는 걸 거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아닐 거잖아?'

그래서 더 우울해진 때가 있었다. 결국 나는 정말 가고 싶은 결혼식만 가기로 했다.


이 시점에서 하나 고발하고 싶은 게 있다.
이것은 30대 초중반의 고질병이다. 특정 지인이 별일도 없는데 갑자기 내게 친한 척을 하거나 상냥해지면, 결국 그건 대개 결혼이 임박했을 때였다. 그들의 사탕발림을 듣다 보면, 나와 그가 정말 친했다고 착각할 때도 있었다. 갑작스레 볼링모임을 만들었던 어떤 선배도, 우리팀에 부쩍 많이 놀러오던 동기 누구도 그랬다. 하지만 우습게도 결혼식이 지나면 그 관계는 서서히 사라진다(선배의 그 볼링 모임도 사라졌다). 그저 우리들은 그들의 예비 하객이었을 뿐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진짜 결혼식 와주면 고맙다”라고. 맞다. 나도 막상 가면 기분이 좋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건 대부분 그때뿐이라는 걸.

그때뿐이 아니라면, 우리의 관계는 지금도 바빴어야 한다.


나에게는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이건 진짜 축하해주고 싶었던, 친한 지인의 결혼식이었다. 다른 지인들과도 모여 즐겁게 축하하고, 기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예식이 끝나고 우리는 모여 앉아 식사를 했다.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축의금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동기 형평성을 생각해 적당히 냈다고 말했는데, 한 동기가 말했다.

"나는 꽤 많이 냈어. 우리 그 정도는 되잖아."

순간 나는 머쓱해졌다. 그 말이 맞긴 했다. 나는 내 옹졸한 지갑을 생각하며, 동기의 마음을 다시 보게 되었다. '역시 나보다 마음이 큰 사람이구나'하고.


그런데 그 감동은 한 달 밖에 가지 못했다. 그날은 그 모임의 송년 자리였다. 우리는 새신랑의 신혼 이야기를 들으며 웃고 있었다. 딱 좋았다. 다들 와줘서 고마웠다고, 이번 자리는 본인이 쏜다며 말한 찰나였다. 그 순간, 거액의 축의금을 냈던 동기가 주춤거리며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쳤다.

청첩장이었다.

"나 이번에 결혼해."

그 순간 모든 게 이해됐다. 나는 그 순간 앞자리 새신랑의 표정에서 나온 허탈함도 감지했다.


나는 그를 계산적이라 부르고 싶지 않다. 사실 우리 모두가 계산적이기 때문이다. 돌려받을 게 없을 것 같아 적당히 낸 나나, 돌려받을 게 확실해서 많이 낸 그나 다를 바 없다. 우리는 늘 이런 식이다.


내 속마음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의 행동이 다 빤하게 보인다.

아는 만큼 보인다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세상은 온전히 순수하지도 착하지도 않다. 그래서 경사도 축하도 그 빛이 덜하다. 고로 내가 발길을 끊으면, 세상도 점차 내게 발길을 끊는 세상이다. 하지만 애초에 내게 섭섭할 상황이 없다는 걸 생각하면, 아쉬울 게 없다. (여차하더라도 나는 초조해하며 하객알바를 모집하는 최악의 수도 필요가 없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결혼을 쳐내다 보니, 나는 강제로 인맥 다이어트 중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정신은 건강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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