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라는 요주의 인물

좋은 서울삼촌이라는 로망...

by 캉생각

"엄마 간다~"

누나가 애들을 이역만리 서울에 두고 떠났다. 물론 애들은 걱정 안 했을 것이다. 떠난 그곳이 삼촌 집 안방이니까. 아이들은 엄마를 비몽사몽 이불에 누워서 엄마를 배웅했다.

나는 애들에게 약속했다.

"너네가 숙제만 다 하면, 삼촌이 게임하게 해 줄게"

애들은 신나 했다. 그 시간에 나는 내 작업실에 앉아, 얼른 업무를 보고 있었다. 물 마시러 가는 척 애들을 틈틈이 감시도 했다. 아이들은 숙제를 하는 둥, 놀이를 하는 둥 둘이서 뭐라 뭐라 하며 장장 한 시간을 보냈다.


제법 되는 엉덩이씨름에 기특하다고 생각할 때, 남자 조카가 학습지꾸러미를 들고 내게로 다가왔다.

"삼촌 오늘 거 다 했어요. 이제 게임할게요"

나는 본능적으로 눈치챘다. 아이의 미세한 긴장과 눈 못 마주침을 느낀 나는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진짜 다 한 거니?"

사실 나는 애들의 숙제 분량을 몰랐기에, 애들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네"

아이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럼 사진을 찍어서 너네 엄마 아빠한테 보내도 된다는 거지?"

아이가 숙제를 덮어버렸다.

"네. 다 했다고 보내주세요"

"아니 사진을 찍어야지"

아이는 다시 마지못해 학습지를 폈다.

나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척, 거짓말에는 절대 속아줄 수 없다는 티를 내며 사진을 찍어댔다.

"그럼 이제 놀아"

물론 사진을 누나에게 보내지는 않았다.


그때부터 아이는 소파에 뛰듯이 날아가, 조이스틱을 잡고 히히헤헤 거리기 시작했다. 집에 게임기도 없는데 아는데 저렇게 잘한다는 게 21세기 어린이의 힘인가 했다. 나는 아이가 게임하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끼워달라고도, 훈수도 두지 않고, 오로지 부를 때 가서 막힌 부분만 해서 넘어가 주곤 했다.

그렇게 또 한 시간이 지났을까.

뿅뿅거리는 게임 효과음 소리 속, 아직도 여자 조카는 책상 앞에서 끙끙대고 있었다.

"아직 못 끝냈니?"

소녀는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어제 거, 오늘 거 둘 다 해야 해서 오래 걸려요"

"아 이틀 치라 양이 많구나. 쉬면서 나중에 해"

"네! 오빠는…"

남자아이가 튈 듯이 나와 여자아이의 입을 막았다.

또 발견된 의심스러운 행동.

'어? 잠깐 이틀 치라고?'

남자 조카는 분명 오늘 치라고 말했다.


"도0이는 이틀 치 다 한 거니?"

남자 조카는 여자 조카를 흘겨보며 말했다.

"네…!"

더 캐묻지는 않았다. 다만 믿지도 않았다.


여자아이에게도 자유시간은 주어졌지만, 게임기는 여전히 오빠의 손에 가 있었다. 최대한 불개입 원칙을 세웠던 나로서도 어쩔 수 없이 한마디 했다.

"서로 번갈아 가면서 해~"

"네"라고 들리지만 '치'라고 해석되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제야 여자아이도 게임기를 쥐게 되었다. 여자아이는 컨트롤러를 잡자마자 3초 만에 절벽에서 떨어졌다. '아...' 하는 한숨과 함께.

물론 너무 빨리 죽는 바람에, 게임을 했다고도 말할 수 없는 지경이었지만.

남자 조카는 공평하게(?) 한 번씩의 목숨씩만 주고받았다.


11시 반이 됐을 무렵.

나는 애들에게 소리쳤다.

"얘들아 뭐 먹을까?"

"아무거나요~"

애들이 외쳤다.

그래서 나는 "그럼 치킨이랑 피자 먹을까?" 물었고, 빠른 승낙을 얻었다.

주문을 끝내고 보니 왠지 찝찝했다.


'애들이 정말 좋아할까?' 하지만 이미 늦었다.

사실 나는 치킨과 피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도 그렇게 그 메뉴를 원치 않았던 것 같은데, 내가 굳이 그 메뉴를 선택한 것은, 오로지 어린이를 위한 경험 부족에 창의력 부족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생각해 낸 게 피자, 햄버거, 치킨 뿐이었다.


치킨이 오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띵동 하고 치킨이 오자 아이들은 학습지를 땅바닥으로 숨겨버리고, 상을 비웠다.

또 말하기도 전에 게임을 끄고, 호다닥 어린이 채널을 틀며 세팅을 했다.

나는 이번엔 "피자가 맛있지?" 묻지 않았다.

치킨과 피자가 아이들에게 특별하리라고 기대도 안 했다.


아이들은 이번에도 콜라에는 손에도 안 대고, 정수기에 물을 졸졸 채워 마셨다.

3명이 치킨 한 마리, 피자 한판의 반도 못 먹었다. 냉동으로 보관하기엔, 너무 전쟁터음식 같아, 결국 버렸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나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물론 일을 빨리하고, 미룰 건 미루고, 애들과 산책을 나갈 마음이었다.

"얘들아 한 시간 후에 나갈 거니까, 씻고 준비해"

"네~"

작은 여자아이는 우렁차게, 큰 남자아이는 티비에 집중한 채 형식적으로 대답했다.

나는 큰아이를 요주의 인물로 찍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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