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서울삼촌이라는 로망...
외출 예고를 하고 한 시간이 흘렀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대로 게임 삼매경이었고, 여자 조카의 끝내지 못한 숙제는 그대로였다.
나는 눈치를 주는 듯 거실을 오가며, 씻은 티를 내고, 옷을 챙겨 입었다. 아이들의 눈은 오로지 TV에만 가 있었다.
"우리 나가려면 세수는 해야지?"
"채0이가 먼저 할 거예요"
오빠가 기다렸다는 듯 동생에게 순서를 떠넘겼다.
여자아이는 순간 발끈했으나, 차분히 말했다.
"오빠는 저한테 게임도 안 넘겨주고 혼자만 했어요"
응 그래 잘 알지…
"그래? 그럼 얼른 씻고 오면, 오빠가 씻는 동안 맘대로 게임할 수 있으니 얼른 씻자"
아이는 듣고 보니 설득이 되는 듯 쪼르르 욕실로 달려가 물을 틀어놓았다.
그러고 잠시 후 아이는 눈곱이(만) 말끔해진 채 나타났다.
"도0아 이제 너도 씻어"
지금도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3초 정도 고민했지만, 아이는 미련이 없다는 듯이 게임기를 놓고 욕실로 향했다. 그 사이 여자아이는 입던 옷도 내팽개치고, 다시 게임기를 잡았다.
'그래 지금이라도 해라'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여자아이가 2판도 죽기 전에 냉정한 오빠가 다시 등장했다.
여동생에게 게임기를 내놓으라 하지는 않았다. 대신 팔짱을 낀 채 앉지도 않고, 그녀의 플레이에 감 놔라 배 놔라를 했다.
기쁘게 게임하던 그녀도 "내가 알아서 한다고~" 외쳤다.
그렇게 나도 다시 욕실에 가서 외출 마무리를 했다.
선크림도 바르고, 컬크림도 바르고… 늙은 삼촌처럼 보이면 안 되니까.
그러나 내가 욕실에서 나온 순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깨달았다.
화면이 꺼진 TV.
엎드려 있는 여자 조카.
그 옆에 앉아 있는 남자 조카.
그 어린아이들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짐작만 할 뿐이다.
그녀는 한참 동안 고개를 들지 않았다.
준비 다 했냐는 삼촌의 말에도, 빨리 나가자라고 보채는 오빠의 말에도.
외출 한 번 하기가 이렇게 힘든 일이라니.
여자아이가 내내 피해자였음을 알기에 성을 내지도 못했다.
그 순간은 장장 10분을 넘었다.
이렇게 둘 수 없었다.
"그럼 삼촌 혼자 나갈게. 너네 둘이 놀고 있어"
남자아이가 비명을 질렀다.
"안 돼요!!"
"너네가 나가기 싫어하는 거 같아서 삼촌만 나가서 맛있는 거 먹고 올렸는데, 책도 보고, 레고도 보러 가고"
그때였다.
여자 조카가 그제야 얼굴을 들고서는 "저도 레고 좋아해요" 하고 외쳤다.
다행이었다. 이걸로 꼬실 수 있다니.
"그래? 그럼 나가자!"
그때 남자 조카가 말했다.
"삼촌! 저희 서울 온 기념으로 레고 사주세요!"
여자 조카가 아까보다 더 크게 소리쳐 말했다.
"저희 레고 좋아해요!"
그들은 빠르게 외투를 집어 입었다.
'레고가 아직 아이들 장사를 잘하고 있는 걸?'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