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서울삼촌이라는 로망..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서울 날씨는 추웠다. 하지만 우리 집과 쇼핑몰의 거리는 코앞이라 아이들을 혹사시킨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신호를 기다리는데 큰 남자조카가 말했다.
"삼촌, 2천 원만 주세요."
"응? 2천 원은 왜?"
"저 포켓몬 할 거예요. 돈 들고 왔는데, 2천 원만 더 있으면 될 것 같아요."
'이게 무슨 소리? 우리 지금 신기한 거 보고 맛난 거 먹으러 갈 건데?'.
나는 당황했다.
아이는 우선 포켓몬 가오레 게임기를 해야 한다고 했다. 작년에 와서 잠깐 해보았던 그 게임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니, 벼르고 있었다고 해야 맞겠다. 어색한 분위기로 집 밖에 나올 때도 그가 챙겨 맨 크로스백에는 포켓몬 칩이 가득했다.
너희 정말…
심지어 그들은 나를 앞질러 포켓몬 가오레로 달려갔다. 축지법을 쓴 그들을 놓칠까 소리쳤다.
"천천히 가!"
가가오레에 다다라서 나는 지갑을 뒤졌다. 요새 천 원짜리가 있을 리가 없었다.
"삼촌, 만 원짜리만 있는데?"
"그럼 만 원 주세요. 8천 원 돌려드릴게요."
"아니야, 그냥 다 써. 온 김에."
그들의 발에 로켓이라도 달린 듯 방방 뛰었다. 지난번 서울 왔을 때 이후로 처음 한다고 했다. 그때가 처음이고 이번이 두 번째라고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모든 룰과 사용법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복잡하고, 재미없는(?) 그 게임에 아이들은 열광하며 집중했다.
어린이의 세계는 이렇게 빨리 넓어지는가.
그들의 세계는 게임뿐 아니라, 게임을 같이 하는 낯선 동료들까지 넓어졌다. 난생처음 본 그들이 분명한데, 눈도 마주치지 않고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서로 칩을 바꾸고, 도와주고, 충고해 주었다.
삼십 분이나 되었을까. 그들의 홀쭉한 크로스백은 빵빵해지고 어린 여자조카의 주머니는 가득 차 새 나왔다.
"삼촌, 이제 다 했어요. 이제 집에 가요."
"벌써 집에 가자고?" 나는 섭섭한 표정으로 말했다.
"레고도 안 봐도 될 것 같아요. 다 즐겼어요."
그렇게 해줄 수 없었다. 나는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좋은 삼촌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얘들아. 그럼 서점이라도 가자."
아이들은 눈이 땡그라 지며 서점이 여기 있냐며 나를 앞세웠다.
큰아이는 책쟁이다. 길을 갈 때, 밥 먹을 때, 게임을 하지 않는 모든 심심한 순간에 책을 편다. 우리 집에 와서도 책장을 뒤지며 본인이 읽을 만한 책을 찾던 아이다. 그는 서점에 들르자마자 본인이 익숙한 코너로 향했다. 그리고 1분도 되지 않아 한 권을 드물게 공손히 들고 와 말했다.
"삼촌, 이거 보고 싶어요."
보아하니 지난번에도 한번 사준 적이 있는 시리즈였다.
"그래! 그거면 되니?"
나는 레고보다 여러모로 책 사주는 게 기분이 좋았다. 그러는 사이 여자조카는 잡화 쪽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러고 그녀의 작은 미간을 찌푸리며 이렇게 말했다. 진짜로.
"삼촌, 저는 지금 책 보다 가방이 급해요. 포켓몬 칩을 넣어야 해서요. 약간은 단단하고, 가벼우면서, 들고 다니기 편한 거요."
나는 똑 부러지는 유치원생 그녀를 팬시샵으로 데려가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