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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파이브 단상

백석. CGV. 하이파이브.

by Gozetto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날아오를 뻔한 한국형 어벤져스의 꿈(3.5)


보는 내내 기대감과 분노가 함께 차오르는 영화이다. 최근 한국 대중영화를 보면서 만족스러웠던 적을 떠올리면 <승부>가 떠오른다. 단상의 소재인 <하이파이브>와 <승부>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배우가 나온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두 영화 모두 최근 나온 대중영화 중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대중영화로서 관객에게 줘야 하는 오락적 즐거움이 충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특히 배우들의 연기를 보며 느끼는 희열감이 굉장히 만족스럽다. 스크린과 현실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서서 영화의 세계에 깊이 몰입해 있는 순간은 영화를 즐기는 이유 중 가장 원초적인 스펙타클일 것이다. 대중영화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현실로 돌아갈 듯 말 듯 하는 관객들을 영화의 세계로 끌어당기는 원동력 중 기본 중 기본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두 영화는, 특히 <하이파이브>는 보는 내내 기대감으로 벅차오르고 그런 기대감을 통해 실소와 파안대소를 번갈아 터뜨리며 즐길 수 있는 영화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기대감과 웃음 모두 굉장히 허탈해진다. 단 한 배우가 나온다는 이유로 스크린과 현실의 경계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발을 하나 걸친 채 보게 되고 이 영화가 꿈꿨을 속편 역시 암울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출처. 키노라이츠

<하이파이브>의 장르를 구분하자면 B급 감성을 가미한 초능력 액션 코미디 히어로물이다. 초능력을 활용한 액션과 코미디인만큼 과할 정도라는 말이나 눈에 띨 정도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CG인 것이 보이는 연출이 오히려 더욱 편하게 영화의 세계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연출에서의 B급 감성과 맞물려 경쾌한 리듬감과 함께 웃음을 유발한다. 오랜 지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어 친구를 사귀지 못해 외로운 여학생 '박완서(이재인 분)'는 묘하게 구수하면서도 구렁이 담 넘어가는 듯한 능글맞음과 동시에 아직 어리기 때문에 보이는 순박함과 맹한 구석이 조화를 이룬 매력적인 태권소녀이다. 마찬가지로 지병으로 오랜 병원 생활을 해 삐뚫어진 마음으로 커뮤니티에서 영화 악플을 달고 코인 투자로 대박을 노리는 작가 지방생이자 백수 '박지성(안재홍 분)'은 미워할 수 없는 찌질함에 갑작스럽게 생긴 초능력으로 뭔가 해보고자 하는 묘한 정의감 등이 뒤섞여 해뜰 날을 기다리고 결국 스스로 해를 찾으려는 2, 30대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두 인물을 필두로 우울증으로 자살하려고 하다 자신은 살아남고 구하려던 소방관은 화상으로 생사를 오고가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어떻게든 죄책감을 이겨내 다시 살아보고자 하는 '김선녀(라미란 분)', 언제나 철저하게 정해진 규칙을 지키면서도 타인을 돕는 것을 마다하지 않아 대리운전을 하면서 간호사 시험을 준비 중인 '허약선(김희원 분)' 모두 서민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는, 그저 남에게 피해를 안 끼치면서도 착하게 살 수 있으면 살고자 하는, 평범하지만 매력적인 인물들이다.

출처. 키노라이츠

<하이파이브> 속 인물들이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평범성, 다르게 말하면 우리 주변에서 있었으면 싶거나, 아주 간혹 가다 실제로 있거나, 어디선가 들어봤거나 등 너무나도 흔해서 사실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관객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하이파이브>의 인물들은 관객들 개개인에게 어떤 하나의 연결 고리가 걸려 매듭을 짓게 되고 관객들은 자신과 닮은 인물을 미워하자니 미워할 수 없고 오히려 계속 보게 되며 그러면서 정이 들 수밖에 없다. 특히나 초능력물만이 아니라 최근의 콘텐츠 대다수가 인간의 선한 면이 아니라 악한 면에 포커스를 두고 있는 것과 다르게 <하이파이브>는 최근의 흐름과 다르게 인간의 선한 면, 그러니까 초능력이 생긴다면 당연하게도 다른 사람을 구하려고 하는 순박함에 집중한다.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뭉치는 5인의 초능력자들은 폭력과 유혈이 낭자한 요즘의 콘텐츠 속 인물들과 비교하면 특이한 매력을 지녔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인물들을 배우들이 실제로 살아 움직이게 하니 보는 내내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클리셰라 할 정도로 뻔하다고 할 수 있을 아주 단순한 권선징악형 전개지만 원래 그렇기에 더욱 그들의 순박함이 웃음과 힘을 준다.


그렇기에 영화의 유아인 배우를 보면 분노와 허탈감이 피어오른다. 특유의 그 껄렁하고 가벼운 분위기에 때로는 날카로운 독설을 뱀처럼 날리는 야비함, 자신 먼저 챙기는 듯한 이기적인 모습, 하지만 사실 다른 누구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어하는 외로움 등을 정말 있는 그대로 표현해 정말 매력적인 인물 '황기동'을 연기했다. 다른 배우가 했다면 그만의 또다른 매력이 있기야 하겠지만 동시에 기동이라는 인물에게 각인된 유아인의 이미지를 탈피하는 것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 점에서 마치 기회가 된다면 속편을 제작할 수도 있다는 여지 역시 남겨놓는 <하이파이브>의 마지막은 분노와 허탈감의 정점이다. 이전 <승부>에서도 계속해서 연기의 질적 측면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와중에도 허탈감을 느끼게 하는 영화 외적 사건의 영향력을 동일하게 경험했기에 <하이파이브>의 분노와 허탈감은 달갑지 않은 익숙함이다. 현재 약 170만 명의 관객과 만난 <하이파이브>가 200만 관객을 돌파할 수 있을지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영화라는 콘텐츠 자체에 대한 수요가 현저히 줄어든 상황에서 단순히 배우 한 명의 영향력이 얼마나 크겠냐마는... 그럼에도 괜히 탓하게 된다. 어쩌면 한국형 히어로 영화 시리즈로 이어졌을지도 모를 이야기가 사그라드는 것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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