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바닐라 스카이.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자기애와 자기 혐오 사이 줄 타며 찾는 삶의 의미(3.5)
오래 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 중 하나인 <바닐라 스카이>(2001)는 관람 후 <매트릭스>(1999), <메멘토>(2000), <아메리칸 사이코>(2000), <인셉션>(2010)과 같은 영화들이 떠오른 영화이다. 어딘가 현실 같지 않은 하늘을 배경으로 젊은 시절 톰 크루즈가 전면에 있는 포스터로 기억되는 영화인지라 관람 전에는 톰 크루즈의 리즈 시절 연기를 본다는 생각만 했던 터라 꿈을 소재로 한 영화의 서사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물론 앞서 떠오른 영화들과 비교하면 주요 소재인 꿈을 깊이 있게 활용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과학 기술과 꿈으로 구축한 SF적 세계관은 <바닐라 스카이>의 주제와는 크게 관련이 없다. 몽환적이면서 미스터리한 서사의 분위기를 구축할 수만 있다면 <바닐라 스카이>의 세계관은 굳이 SF적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바닐라 스카이>는 굉장히 위태로운 서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자칫 잘못하면 요즘 말로 '아 XX, 꿈...'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바닐라 스카이>는 영화의 비주얼을 강조하는 듯하다. 톰 크루즈, 페넬로페 크루즈, 카메론 디아즈라는, 당대 최고의 스타와 라이징 스타들을 내세운 영화의 비주얼은 지금 봐도 감탄할 만하다. 꿈이라는 소재를 기반으로 만든 몽환적이면서 미스터리한 서사는 위태롭지만 관객들은 톰 크루즈, 페넬로페 크루즈, 카메론 디아즈의 비주얼을 좇으며 계속해서 진실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비주얼로 서사를 지탱하는 듯한 <바닐라 스카이>에서 인상 깊은 지점을 꼽으라면 뉴욕의 전경을 보여주는 버즈 아이 뷰 오프닝과 깨어나는 것을 선택하고 옥상에서 추락하는 '데이빗(톰 크루즈)'의 수미상관이다. <바닐라 스카이>를 보다 보면 어느 시점부터 데이빗의 현실과 꿈이 구분되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영화의 시작과 끝에 하늘에서 대지를 바라보는 시점을 제시한다는 것에서 보면 이러한 구분 자체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고 구분한다고 하면 영화 전체가 냉동된 데이빗의 꿈을 보여주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오프닝의 버즈 아이 뷰는 꿈의 세계로 들어가는 데이빗의 시점이자 데이빗의 삶으로 몰입하게 될 관객의 시점이다. 이러한 시점의 일치는 진실에 대해 계속해서 의문을 가져야 하는 관객을 단순한 관찰자로 두지 않고 데이빗의 삶을 데이빗으로 살게 하는 인식적 착각을 일으키는 듯하다. 당대 최고의 톱스타인 톰 크루즈를 향한 관객들의 인식을 이용한 것 같은 이러한 연출로 비주얼과 일치된 경험을 한 관객들은 꿈으로 귀결되는 반전과 마지막 선택의 순간에서 추락을 선택하는 데이빗에 대해 심리적 저항감을 덜 갖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바닐라 스카이>는 현실과 삶을 중요한 가치로 두는 주제에 대해 굉장히 강력한 지향성을 지닌 영화로 보인다.
하지만 반대로 <오픈 유어 아이즈>(1997)의 할리우드 리메이크 작품인 만큼 <바닐라 스카이>는 원작과 차이가 거의 없으며 톰 크루즈, 페넬로페 크루즈, 카메론 디아즈의 비주얼과 스타성에 기대어 관객을 설득하는 영화처럼 느껴진다. 그렇기에 상당히 모순적인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분명 영화는 관객에게 현실과 삶의 가치를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관객에게 <바닐라 스카이>는 가상이지만 톱스타인 톰 크루즈와 그런 톰 크루즈와 비슷하게 뉴욕 출판계의 부호이자 플레이보이인 데이빗의 삶을 살게 한다. 이러한 일치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심리적 저항감을 덜 갖게 할 수도 있지만 개선만 하면 더 완벽한 삶을 살 수도 있을 꿈의 세계에서 데이빗이 깨어나기를 선택하는 것에 오히려 반감을 갖게 할 수도 있다. 외부에서 영화의 구조를 위와 같이 분석하는 경우에도 묘한 유혹이 끊임없이 작용하는 듯하다. 유혹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욕구하게 되는 것에서 일종의 도덕적 죄책감을 느끼다 보니 역시 삶은 100% 만족스러울리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는 것 같기도... 그런데도 계속 지금의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욕구하게 되는 걸 보면... 음... 눈을 뜨라는 <바닐라 스카이>의 소리는 과연 진실과 욕망 중 뭘 보라는 걸까?
아니 뭘 보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