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BIFF 1일차. 호주머니 속의 주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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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비추는 폭력과 자유, 그 사이를 왜곡하는 광기(3.0)
이번 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람할 영화를 선택할 때 개인적으로 해외 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이후 이미 수입과 배급이 정해진 영화는 최대한 보지 말자는 개인적인 기준에 따라 선정했다. 그러다 보니 경쟁부문보다는 다른 섹션에서 영화를 찾으려고 했으며 그 가운데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준비한 특별기획 프로그램 '마르코 벨로키오, 주먹의 영화'에서 2편의 영화를 보게 되었다. 물론 이후 단상을 작성할 <육체의 악마>의 경우 섹션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제목 번역이 상당히 직접적이라는 인상만으로 선택한 영화라 어쩌다 보니 마르코 벨로키오 감독의 영화를 2편 보게 된 후문도 있다. 어찌 되었건 마르코 벨로키오 감독의 영화를 보게 된 것에는 한국에서 거의 수입, 배급되거나 특별전의 형태로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영화의 정보에 대해서는 보기 전까지는 절대 찾아보지 않기에 <호주머니 속의 주먹>과 <육체의 악마> 모두 어떤 영화인지 찾아보지 않은 채 영화 상영 직전 약간의 정보만 찾는 정도로만 봐 영화에 대해서는 아예 모르는 상태로 보기도 했다.
마르코 벨로키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호주머니 속의 주먹>은 제목에서 느껴지는 억압된 폭력성이 여실히 느껴지는 영화이다. 이탈리아 부르주아 가족이 등장하는 <호주머니 속의 주먹>의 인물들은 모두 어떤 불만들이 있다. 장남 '아우구스토(마리노 마제 분)'는 장애가 있는 가족을 돌봐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결혼을 하면 떠날 생각을 하고 있다. 아우구스토가 아니면 가족이 유지될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 장녀 '줄리아(파올라 피타고라 분)'는 불안을 느끼는 반면, 차남 '알렉산드로(루 카스텔 분)'는 그런 형에게 휘둘리는 것에 불만이 있어 보인다. 가족이라는 혈통적, 역사적, 사회적 공동체에 부여된 의무와 책임으로 엮인 형제자매에 대해서 <호주머니 속의 주먹>은 양가감정이 들게 한다. 장남으로서 느끼는 부담감과 그럼에도 가족을 버리고자 하는 욕망,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욕망과 자유를 향한 갈망. 이러한 양가감정 속에서 인물들이 느끼는 불합리와 그에 따른 파괴적 행동은 감정적 공감보다 거리를 둔 채 관찰의 대상으로 놔두며 그들이 느끼는 불합리의 원인을 분석하게 한다. 간질인 남동생 '레오네(피에르 루이지 트로길리오 분)'과 시각장애인 '어머니(릴리아나 게라세 분)'를 사악한 계획과 잔인한 행동으로 죽이는 알렉산드로의 모습은 불합리와 별개로 그가 가지고 있는 정신적 문제와 함께 공허와 같은 감정적 결여를 느끼게도 한다. <호주머니 속의 주먹>은 사회적 불합리만이 아니라 인간 개인이 지니고 있는 존재론적 불합리까지 염두하고 있는 듯하다.
결과적으로 <호주머니 속의 주먹>은 어떤 이유로든 결국 표출될 수밖에 없는 폭력성을 다룬다. 형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가족은 삶의 유지와 자유의 억압이라는 모순을 품고 있다. 그러한 가족의 모순에 대해서 사회는 아무런 제도적 장치가 없으며 반대로 개인은 가족의 모순에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동생 레오네와 마찬가지로 간질 증상을 가지고 있어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언제든 발작으로 죽을 수 있음에도 알렉산드로가 남동생과 어머니를 죽이고 나아가 누나 줄리아까지 죽이려고 시도한 모습은 이해하기는 어렵다. 반대로 줄리아 역시 오빠 아우구스토가 가족을 떠나지 못하도록 약혼녀 '루시아(제니 맥닐 분)'인 척 이별 편지를 쓰고 끊임없이 오빠가 가족을 떠나지 못할 구실을 찾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두 사람의 파괴적 행동, 즉 폭력성은 가족의 모순에서부터 비롯된 것이기에 종국에는 가족이 완전히 파괴되는 결말을 마냥 그들 두 사람의 죄로만 보기는 어렵다. 어쩌면 그러한 폭력성으로라도 어떻게든 가장 본질적인 무언가를 갈망하는 것이 인간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