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BIFF 1일차. 육체의 악마.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감정에 휩쓸려 우연을 필연이라 믿는 가련한 인간(3.5)
이전 글에서도 말했지만 마르코 벨로키오 감독의 영화를 2편이나 볼 계획은 없었다. 섹션 확인 없이 제목만 보고 제목 번역이 대단히 직접적인 특이한 영화다라는 인상과 함께 선택했을 뿐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벨로키오 감독의 영화였고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상당히 수위가 높은, 욕망에 대한 영화였다. 약혼을 한 여성 '줄리아(마러쉬카 디트메어스 분)'과 고등학생 '안드레아(페데리코 피찰리스 분)'의 사랑은 제목을 넘어 그 자체로 파격이다. 소재만이 아니라 영화에서는 줄리아의 육체, 줄리아와 안드레아의 성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이미지에서도 파격을 드러낸다. 하지만 개인에 따라서는 외설로 느껴질 수도 있을 소재와 이미지가 외설로 느껴지기 보다는 거리를 두고 관찰하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 파악하고 싶게 한다. 파격적인 소재를 통해 <육체의 악마>가 줄리아와 안드레아의 관계를 통해 욕망에 휩쓸리는 인간을 조명하고 그 과정에서 여성의 욕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전복시키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줄리아와 안드레아의 관계는 상호보완적이기에 모순적이다. 둘의 관계가 시작하고 유지되는 것을 관찰하면 안드레아가 둘의 관계를 주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흑인 여성의 자살 기도 소동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줄리아를 보게 된 안드레아가 수업 시간을 제끼고 그를 따라 법정의 재판까지 가 줄리아를 관찰하는 모습, 줄리아를 보기 위해 위험천만한 곡예를 펼치며 줄리아가 있는 방까지 올라가는 모습,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줄리아와 관계를 계속 지속하는 모습 등은 사회적으로 성인인 줄리아보다 미성년인 안드레아에 의해 유지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하지만 반대로 줄리아는 사회적으로 성인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정신적으로 불안정함에도 오히려 관계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약혼자가 감옥에 있음에도 안드레아와 관계가 더 중요한 듯 재판에 가지 않으려는 모습이나 안드레아에게 집착하는 모습 등은 둘의 관계가 안드레아에 의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향해 욕망을 갖고 그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해 유지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흑인 여성의 자살 기도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우연하게 마주친 시선에서 시작한 둘의 관계는 단순한 우연을 운명이라 여기고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을 일깨우는 것이다.
나아가 <육체의 악마>는 욕망에 휩쓸리는 인간을 조명하는 과정에서 줄리아를 통해 여성의 욕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전복시키려는 듯하다. 우연으로 시작했으나 필연이 된 관계에서 줄리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팜므파탈로 정의할 수 있다. 줄리아의 시어머니, 정신과 의사인 안드레아의 아버지 모두 줄리아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안드레아의 아버지는 줄리아와 숨겨진 과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아들이 줄리아와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자 다른 환자에게서 줄리아의 환영을 보며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아들에게는 줄리아와 관계가 아들을 파멸에 이르게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줄리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법정에서 한 남녀가 광적인 섹스를 벌이며 주변 사람들이 사랑, 자유, 섹스를 외치는 장면과 정면으로 대치하는 보수적 인식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단순한 보수적 인식이라기 보다는 대중적으로 만연한 것에 가까운 보수적 인식이라 해야 할 것이다. 사랑, 자유, 섹스를 외치는 것이 진보와 젊은 세대의 사상이라는 인식이 있으나 실제로는 대중이라는 모호한 인식적 집단 혹은 인간에 의해 구성된 사회의 모습은 기존 사회의 인식이 조금씩 변화할 뿐 큰 틀에서는 보수적이다. 기존 사회에서 줄리아는 남성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팜므파탈이기에 그의 주도적 욕망은 금기이며 그를 제어하기 위해 특정 가부장의 권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과 다르게 안드레아와 줄리아의 관계는 팜므파탈과 그에게 현혹된 남성의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다. 우연에서 시작되었으나 이를 필연으로 인식하는 인간 개인의 존재자적 한계는 있을 수 있으나 그렇다고 줄리아에 의해 안드레아가 파멸에 이르지도, 반대로 줄리아가 안드레아를 온전히 지배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줄리아의 행동은 주변의 압박에 대한 반사적 행동으로 보이기도 한다. 특히 꿈을 꾸고 있는 안드레아를 보며 다른 누군가와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이라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가위로 위협하는 줄리아의 모습은 서스펜스적 공포가 느껴질 정도로 끔찍하다. 하지만 뒤이어 아무 일 없다는 듯 레닌에 대한 농담을 꺼내는 안드레아에게 안겨 어린아이처럼 웃는 줄리아의 모습과 함께 그러한 공포스러운 모습은 끊임없이 자신을 압박하는 사회로부터 안정을 원하는 여성으로서 생존을 위한 애처로운 집착으로 보인다. 성인임에도 그가 안드레아에게 보이는 집착이나 폭력적 성향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나 반대로 그러한 모습은 흔히 인식하는 팜므파탈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자신을 지켜달라는 혹은 지키려는 본능적인 몸부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