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상상씨네마. 포제션.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차갑지만 과장되게 그려지는 불가지의 공포와 자조의 이미지(3.0)
올해 본 영화 중 난해한 영화를 꼽으라면 바로 떠오를 영화이다. 감독인 안드레이 줄랍스키도 주연인 이자벨 아자니도 처음이었음에도 영화를 보고자 마음 먹은 것은 포스터의 강렬한 이미지가 한몫했다. 공허하고 초점이 없어 보이는 듯하지만 안광에서는 또렷한 힘이 느껴지는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보는 가운데 핏줄이 보일 듯한 하얀 피부와 말그대로 핏빛 입술이 서로 도드라지게 보이는 이자벨 아자니. 제목에 더해 뱀파이어를 연상시키는 듯한 포스터로 혹시 뱀파이어가 소재로 쓰인 영화인가 하는데 그 와중에 귀동냥으로 <박쥐>(2009)를 제작할 당시 박찬욱 감독이 김옥빈 배우에게 참고하라고 알려준 영화라는 비하인드를 듣게 되어 더더욱 영화에 대해 완전히 잘못 알고 갔다. 애초에 영화를 보러 갈 때 포스터나 전단 정도만 보고 그 외 다른 정보는 알아보지 않은 채 가니 잘못 알고 말고 할 것도 없겠지만서도, '뱀파이어 소재로 어떤 이야기를 그렸을까?'라는 선입견이 있다 보니 영화를 보면서 '와르르 멘션'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것을 넘어 '지금 이곳은 정말 영화관이 맞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포제션>이 처음이지 않나 싶다. 그만큼 대단히 난해하고 충격적인 영화이다. 어쩌면 비하인드를 귀동냥으로 알지 못했다면 보러 갈 마음이 더 크게 샘솟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 아니다. 사실 비하인드가 아니었어도 예고편과 포스터를 보고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박쥐> 비하인드는 그저 약간의 기름을 더 부은 정도 밖에 되지 않기는 하다.
영화를 보고 나온 뒤 찾아보니 감독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기반으로 시작한 영화라고 하는데 그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잠시 제쳐두고 일단 사실이라 생각한 채로 접근해보자. '나무위키'에 따르면 안드레이 줄랍스키 감독이 괴작이라 평가 받는 <은빛 지구>(1988)가 촬영이 무산된 뒤에 자신의 아내 '마우고자타 브라우넥'의 불륜까지 겹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아내의 불륜이 정말 큰 충격이었는지 아내가 혹시 악마에게 빙의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커지고 커져 <포제션>의 시나리오가 되고 끝내는 영화화가 된 것이다. 여기까지 본다면 <포제션>은 표면적으로는 영단어의 원의미인 "빙의"와 연결된다. 포스터에서 초점이 없는 듯하지만 안광만큼은 형형한 안나의 눈은 정말 뭔가에 홀린 듯한 모습이다. 영화에서는 지속적으로 정신 분열이라도 하듯 어느 순간에는 가사에 집중하는 주부이다가 어느 순간에는 마크와 마주치는 것 자체를 혐오하듯 몸도 가누지 못하는 와중에 밖으로 뛰쳐나가는 모습, 영화에서 가장 압권이라 할 터널 장면의 모습은 영화의 제목처럼 뭔가에 홀려 자신의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한 여성을 그린 듯하다.
하지만 감독의 망상처럼 영화의 '안나(이자벨 아자니 분)'가 뭔가에 홀려서 남편 '마크(샘 닐 분)'를 배신하고 불륜을 저지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이전부터 부부의 사이는 균열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고 그 분열을 가속화시킨 것은 안나를 향한 마크의 편집증적인 소유욕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안나와 그를 닮은 학교의 선생님 '헬렌(이자벨 아자니 분)'은 팜므파탈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상이나 동시에 그가 다른 누군가를 유혹해서 파멸로 밀어넣지는 않는다. 오히려 안나와 헬렌을 욕망하며 소유하고자 하는 것은 마크이며 특히나 헬렌을 욕망하는 듯하면서도 안나를 미친듯이 갈구하는 마크의 모습은 그의 편집증적 소유욕의 정도를 짐작할 만하다. "possession"에서 유추할 수 있는 "possess"가 소유하다라는 의미인 점을 잠시 제쳐두더라도 안나를 향한 소유욕에 '빙의'되어 있는 것은 마크이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포함해 사립 탐정과 탐정의 상사이자 연인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 것은 마크 본인의 소유욕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크와 비슷하게 안나를 향한 감정에 빙의되어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인물로는 '하인리히(하인츠 벤넨트 분)'도 있다. 두 남성 모두 안나를 소유하고 싶다는 것에 빙의되어 자신들을 파멸로 이끌고 있으나 정작 그 원인을 반대편에 있는 안나에게 두고 있는 묘한 모순이 담겨 있다.
<포제션>의 배경은 냉전 시기의 동독이고 마크의 직업은 스파이이다. 직업적으로 끊임없이 타켓에 대해 의심을 거두지 않아야 하며 동시에 오랜 기간 외국을 나가야 해 집을 오래 비워야 한 마크는 다르게 말하면 영화를 찍기 위해 대상에 집착하듯 달라붙어 카메라로 관찰하며 오랜 기간 촬영을 위해 집을 오래 비워야 하는 안드레이 줄랍스키 감독 본인이다. 전술한 내용에 이러한 유사성을 연결하면, <포제션>은 집착하지만 정작 집착하는 대상인 아내에 대해서는 오랜 기간 가정 외부에 있어야 해 알지 못한다는 공포, 그런 공포스러운 존재에게 집착하다 스스로 파멸에 이르는 것에 대한 자조의 이미지가 담긴 영화로 느껴진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이 왜 그렇게까지 아내에게 집착하는지 알지 못함에도 집착하는 본인 스스로를 파괴하기 위해서 영화를 만든 것도 같다. 물론 감독이 영화를 만들고나서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끝맺음 했을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