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엑스. 메가박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혁명은 언제까지나 계속된다, 겉모습은 다를지라도(4.0)
돌이켜보면 인류 역사에서 혁명이 없었던 적은 없다. 크든 작든, 인간은 언제나 현재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바꾸려기 위해 혁명을 꿈꿨다. 다르게 말하면 인류 역사에서 혁명은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혁명을 실행했으나 여전히 현실은 시궁창이고 그 시궁창을 다시 바꾸기 위한 혁명의 연속.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제목 그대로 세상은 하나의 전투가 끝나면 다음 전투가, 하나의 혁명이 끝나면 다음 혁명이 있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피로할 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허무하고 우울하기까지 하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면 대체 무엇을 위한 희생이었을까? 정말 세상은 바뀌고 있기는 한 것일까? 이처럼 허무하고 우울하기까지 한 세계에 대해서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정신차리는 듯 희망의 돌팔매질을 하며 달려든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냐고. 그래서 주저 앉은 채 짓눌리다 죽을 것이냐고.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서는 트럼프 재당선 이후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면 아래 자국우선주의와 패권주의라는 칼을 휘두르는, 작금의 미국의 현실을 볼 수 있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미국 내 백인 남성을 중심으로 백인에게 인정 받은 혹은 인가된 특별한 소수에게만 허용되어야 한다 믿고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현실에서 미국 사회로 진입하려는 외부 세력은 모두 철저하게 배제, 축출해야 할 뿐이다. 하루하루 벌어먹고 사는 것조차 빠듯하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가난한 이들인 이민자들은 미국 사회를 좀 먹는 혹은 망치는 악마의 세력이라 명명되고 이들을 향한 폭력은 '스티븐 J. 록조(숀 펜 분)' 대위의 부대가 밤중에 여아 혹은 노소를 가릴 것 없이 이민자들에게 총으로 죽음을 들이밀며 아무런 희망도 없는 곳으로 추방시키는 것일지라도 합당하다 여겨진다. 생존이 걸린 문제에서 이러한 압력은 곧 '밥 퍼거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이나 '퍼피디아 베벌리힐스(테야나 타일러 분)'와 같은 프렌치 75처럼 혁명 세력의 들고 일어나는 원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혁명은 결국 현재와 현실의 주류 세력에 의해 발생한다.
이러한 아이러니한 현재와 현실에 더해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보수와 진보의 모순적인 지점을 조명한다. 백인 우월주의 사조직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의 나이든 백인 남성들의 논리에는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논리가 아니라 지극히 비과학적이면서 미신적인 차별과 혐오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사회는 백인 남성들과 그들에게 승인된 이들을 제외하면 누구도 존재해서는 안 되는, 순수해야 하는 사회이다. 애초에 미국 자체가 백인들로만 지탱된 적도 없고 이제는 지탱될 수도 없는 상황임에도 이들은 과거 나치, 파시스트, 일본 군국주의 등 극우 우파의 순수성 논리와 마찬가지로 백인 외에 세력을 미신적 적대 세력으로 규정한다. 흑인인 퍼피디아와 성관계를 맺고 혼혈인 윌라의 아버지이기도 한 록조는 이들의 논리상 발 끝의 때만도 못하며 능력도 뛰어날 수 없는 비순수 백인이나 그를 사조직에 들이는 이유는 록조의 뛰어난 이민자 축출 이력과 능력이란 점을 기억하자. 다르게 말하면 현재와 현실을 유지하려는 보수는 다수의 권리 혹은 공동체의 가치를 수호한다는 숭고한 목적이 아니라 특정 소수의 권력 유지를 위해 국가와 사회라는 가면 뒤에서 미신적 믿음에 기반한 폭력으로 유지된다는 모순이 존재한다.
혁명에도 마찬가지로 모순이 존재한다. 이민자들을 해방한다는 프렌치 75의 혁명의 선두에 서는 퍼피디아는 자신들의 혁명 목적을 숭고하게 여기며 달성하고자 하는 열성적인 혁명가가 아니다. 퍼피디아에게 혁명은 위험을 추구하는 자기 욕구의 발현이자 실현에 가까워 보이며 이는 록조 대위와의 성적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프렌치 75의 행동에 동조하는 백인 남성 밥에게 혁명은 퍼피디아와 함께 할 수 있는 방편이었을 뿐이며 '윌라(체이스 인피니티 분)'를 임신한 퍼피디아에게 더이상 위험한 행동은 하지 말라는 그의 만류와 그에 따른 두 사람의 갈등을 봐도 혁명은 밥에게 우선 순위가 아니다. 다르게 말하면 현재와 현실의 전복을 꿈꾸는 혁명은 사실 뿌리부터 살펴보면 혁명이라는 순수하면서도 맹목적인 뉘앙스를 가진 직진적인 단어로 포장되어 있을 뿐이다. 즉,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순수한 보수와 진보, 반동과 혁명이라는 것이 현재와 현실이라는 시공간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듯하다.
이러한 가운데 영화에서 가장 순수하게 혁명에 임하는 것은 오히려 미래 세대라 할 수 있는, 스크린 너머 현실에서 보자면 아직 사회의 주류라 보기 어려우며 나아가 조롱의 대상으로까지 여겨지는 MZ 세대인 윌라이다. 혁명가에서 이중 스파이가 되어 동지들을 배신한 엄마, 과거에 사로잡혀 술에 절어 사는 아빠, 주류가 되고자 혈육마저 죽이려는 생물학적 아빠 등. 모순되고 한심한 이전 세대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던 윌라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오히려 깨달은 것은, 아니 체화하게 된 것은 행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시라도 빨리 딸을 만나야 하는 밥을 조직의 안전이라는 이름 하에 시스템화되어 아무런 실효성 없는 신원 확인 절차가 가로막은 것처럼 이전 세대는 주류 세력 만큼이나 나태한 관료주의에 찌들었다. '디안드라(레지나 홀 분)'과 무언가 보여줄 것 같던 분위기의 수녀원을 비롯해 자신을 보호해주겠다고 한 조직원들은 주류 세력의 권력과 힘에 허망하게 무너졌다.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현실에 몸이 반응하며 당연하다는 듯 나서 저항해야 한다.
이전 세대는 문자 그대로 이미 흘러가 뒷방 늙은이가 된 이들이다. 밥의 탈출을 돕고 도주 시간을 벌어준 '세르히오(베니시오 델 토로 분)'나 양심의 가책으로 록조의 청소부들과 총격전을 벌이며 윌라의 탈출을 도운 '아반티 Q(에릭 사이그)'처럼 서로 연대하거나 양심에 따라 행동하며 다음 세대가 스스로 자신들만의 혁명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것뿐이다. 다음 세대의 혁명이 어디로 나아가 어떤 결말에 도달할지는 생각할 필요는 없다. 혁명은 언제나 계속된다. 그저 우리의 혁명이 끝났을 뿐이다. 이제 다음 혁명의 물결을 기다릴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