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보다 잘하는 일 해야 하는 이유
곤두박질 쳤다. 조직에서 원하는 것에 내 능력이 부응하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스스로도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물, 계속되는 부정적인 피드백이 힘을 합쳐 나를 망가뜨렸다. 0에서 시작하는 신입이 아니라, 어느 정도 자기 성과를 내왔고 자신감도 있었던 경력직이라 망가지기 더 쉬웠다.
(아, 참고로 숫자 '32'에는 의미가 없다. 그만큼 깊이 아래로 추락했다는 표현을 위함이다.)
반복되는 매질과 악순환은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하게 했다. 점점 나를 잃어갔다. 그간 나의 강점이라 생각했던 회복탄력성도 여기선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더라. 잘할 자신도 없고, 점점 이 일이 싫어졌다. 덕업일치에 대한 회의감은 나날이 깊어졌고, 좋아하면 잘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추측을 했던 내가 싫었다. 회사에서 불쑥 눈물이 나 업무에 집중이 안 될 때도 많았고, 출근에 대한 두려움은 주말까지 잠식했다.
아 어쩌면 나는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가봐
한껏 방황하고 있을 때, 스스로 답을 찾는 힘이 부칠대로 부쳐서 주변의 조언을 구했다. 그중 가장 도움이 되었던 두 가지는 아래와 같다.
(1) 서울대 의대 들어갔다고 다 의사는 아니다.
노력해서 서울대 의대 합격했더니, 선배 의사들에게 매일 지적 당하고 본인의 능력을 냉정하게 자각하는 순간을 자주 마주친다.. 근데 그렇다고 '의사'라는 직업이 나와 맞지 않다고 단정할 수 있나? 의대에 입학했을 뿐이고, 의사가 되는 건 또 다른 문제인데. 진짜 전문성을 갖추기까지는 더 노력이 필요하고, 더 큰 난관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상황에 빗대어 나는 이제야 의대에 입학한 것뿐, 그다음 전문성을 갖추기까지 힘든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이걸 관둬야 하나'를 고민할 때는 아니라고 말이다.
(2) 잘하는 걸 살리면 된다.
▼▼(내가 생각한) 조직에서 원하는 능력▼▼
1. 와우 포인트와 센스를 감미한 크리에이티브도 기획력
2. '빠른' 커뮤니케이션과 업무 속도
'조직에서 원하는 능력'을 너무 좁게 보지 말 것. 지금 '컨텐츠 기획'을 하면서도, 기획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넓혀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물론 와우 포인트와 센스를 감미한 크리에이티브도 기획력을 인정받는 하나의 방법이지만, 그것을 못 한다고 자괴감에 빠지고 기획력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영업부서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통해 협업을 이뤄내는 것도 '기획', 데이터 기반으로 디벨롭 해나가는 것도 '기획'이다. 지은님은 그 부분을 잘 하는 것 같다며 짚어주셨다.
그리고 '빠른' 커뮤니케이션과 업무 속도의 장점도 있지만, '느림'의 미학도 있다. 조금 느리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는 것과 꼼꼼히 분석하고 잊지 않고 챙기는 것. 조급하지 않게 부드럽게, 배려 있게 상대를 배려하며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
못 하는 걸 개발하기보단, 잘하는 걸 살려야 효과/효율적
(1) 일단 잘하는 게 뭔지 정확히 인지해야 한다
사실 이게 제일 어렵고 중요하다. 계속해서 자기 관찰을 통해 자기 객관화를 해야 하고, 메타인지 능력도 요구된다. 스스로에 대해 관심이 많아야 하고, 애정을 쏟아야 한다. 나도 이걸 단련하기 위해 독서하기(for 통찰력), 일기쓰기(for 메타인지) 행위를 꾸준히 해왔다. 그래도 어려우면 이번의 나처럼 주변의 도움과 조언을 구하는 것도 좋다.
(2) 잘하는 것을 나열하고, 일과 연결 지어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각 능력별로 정리한다
컨텐츠 기획
-커뮤니케이션 능력 -> 타 부서와 원활한/적극적 커뮤니케이션 통해 협업을 이뤄 컨텐츠 만들기
-데이터 분석 능력 -> 성공/실패 사례 데이터 기반 가설-검증 과정 통해 컨텐츠 디벨롭
일하는 애티튜드
-느리지만 꾸준히, 끈기 -> 포기 않고 방법을 강구하는 애티튜드, 작은 일도 누락 없게 챙겨가기
-일단 해보기 -> 완벽하지 않아도, 실패할지라도, 다양한/새로운 시도를 일단 해보는 도전의식
둘 중 하나 택해야 한다면 좋아하지 않는 일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맞고, 좋아하는 일보단 잘하는 일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좋아하는데 잘하지 못하면 오기로 극복할 게 아니라, 강점을 살리는 게 훨씬 빠르고 효과적이고 정신건강에도 이롭다. 일찍 포기하라는 건 아니고, 노력해서 극복될 게 아니라는 판단이 섰을 때 이후의 이야기다.
약점에 휘둘리지 말고, 강점을 살려서 자존감을 지켜야 한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 멀리 더 오래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내가 잘하는 것을 탐구하고, 집중하고, 개발하는 것이 현명한 것 같다. 이렇게 나는 점점 자존감을 회복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