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인의 사랑 - 다니자키 준이치로

by 이소

치인의 사랑: 줄거리

치인의 사랑은 근대 일본을 배경으로, 중산층 남성 조지가 한 소녀와 만나면서 시작된다. 그는 서구적 감각과 세련됨에 강하게 끌리는 인물로, 우연히 만난 소녀 나오미에게서 자신이 동경하던 ‘이상적인 이미지’를 발견하고 그녀를 보호하며 키워 나가려 한다. 조지는 교육과 생활 전반을 통제하며 나오미를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 가고자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관계의 주도권은 미묘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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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DfnlCI45SVo


치인의 사랑: 책 속 문장

제게 나오미는 아내인 동시에 참으로 드문 인형이자 장식품이기도 했으므로 별로 놀랄 것이 못 됩니다.
나오미를 ‘훌륭하게 만드는 것’과 ‘인형처럼 소중하게 다루는 것’, 이 둘이 과연 양립할 수 있는 걸까요?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이야기지만 그녀의 사랑에 빠져 이성을 잃은 저에게는 그런 확연한 도리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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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된 책 리뷰는 이소 (yisodreams@gmail.com) 의 개인적인 해석 및 감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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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인의 사랑: 해석 및 감상

조지와 나오미의 관계를 따라가다 보면, 처음부터 무언가 기묘하게 어긋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엔, 두 사람 사이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성 간의 사랑이라 부를 만한 감정이 애초에 크게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조지에게 나오미는 사랑의 대상이라기보다, 어떤 목표물에 가까웠다. 다이쇼 시대 후반의 일본 사회를 감싸고 있던 서구 문화 열풍, 그 시대가 만들어낸 욕망이 조지의 시선을 왜곡시켰고, 그는 자신의 열등감과 결핍을 메우기 위해 나오미라는 존재를 하나의 프로젝트처럼 다루기 시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지를 움직인 건 단순한 매혹이 아니었다. 서구 문화를 신봉하는 시대의 공기 속에서, 키도 작고 평범한 외모의 조지는 스스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근대와 서구적 아름다움을, 나오미를 통해 만들어내고자 했다. 나오미의 서구적 외모와 이름, 그리고 ‘서양 여인’처럼 보이는 분위기는 조지의 상상 속에서 이상적인 현대적 여성을 상징했고, 조지는 그녀에게 서양식 옷을 입히고, 피아노를 가르치고, 영어를 교육하며, 자신의 모든 자원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스스로에게 쓰지 못한 시간과 돈과 정성을, 오롯이 그녀에게 투자했다는 점에서 이미 그는 나오미에게 단순한 감정 이상의 것을 걸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조지는 자신보다도, 나오미를 키우는 데 자신의 존재를 갈아넣었다. 그녀를 가꾸는 행위는 조지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 열등감을 보상받고 싶은 마음, ‘내가 만들어낸 완벽한 서양 미인’이라는 의기와 자부심으로 이어졌다. 동시에 그 자부심은 소유욕으로 변했고, 나오미는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아니라 조지가 원하는 형태로 다듬어진 ‘인형’ 같은 존재가 되어갔다. 나오미의 성장 과정은 열렬히 기록되었고, 조지는 그 기록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어 직접 사진을 현상할 정도로 철저하게 감추었다. 이 비밀스러움 자체가 조지의 강한 소유욕과 통제욕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나 이 인형 만들기 같은 과정은 오래지 않아 균열을 드러낸다. 나오미는 조지가 예상했던 순종적인 여성의 모습을 벗어나, 자신만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기 시작한다. 젊은 남자들과 어울리고, 방탕한 생활을 하며, 유부녀로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그럼에도 조지는 분노하지 못하고, 떠나지도 못한다. 오히려 그녀의 아름다움은 조지의 판단력과 균형 감각을 더 흐리게 만들고, 나오미를 향한 조지의 감정은 미움과 매혹이 기묘하게 뒤섞인 형태로 변한다. 그녀의 요염한 모습, ‘사악의 화신’ 같은 표정조차 조지는 거부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것이 나오미만이 가진 절정의 아름다움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 뒤에 자리한 핵심은 외모 그 자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조지가 나오미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녀가 조지의 ‘작품’이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조지는 마치 예술가로서,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을 신성화 하는 듯한 모습처럼 보였다. 나오미는 조지가 만든 세계의 중심이자, 그의 존재 의미 그 자체가 되었다. 조지는 자신의 시간, 노력, 욕망, 자존감까지 나오미에게 쏟아부었고, 그녀가 떠난다면 그가 살아온 모든 날과 에너지 그리고 정체성까지 모두 무너져버릴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오미가 집을 나가도, 젊은 남자들과 관계를 가져도, 계속해서 돈만 요구해도 조지는 거절하지 못한다. 그녀의 요구는 곧 조지의 생존 조건처럼 변했기 때문이다.


결국 조지는 자신이 신봉하는 여신 앞에 무릎 꿇듯 복종하게 된다. 이 복종은 단순한 사랑의 굴복이 아니라, 자신이 살기 위해 필요한 방식이었다. 조지는 더 이상 현실 세계의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세계 속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내어줄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최종적인 조지의 모습은 조지가 처음에 나오미에게 원했던 모습이 아닐까? 조지는 나오미를 자신의 손으로 길러내고, 다듬고, 통제 가능한 인형으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나오미의 손안에서, 그녀의 변덕과 욕망 속에서 조지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전락했고, 그녀의 선택과 인정에 의해 생존이 결정되는 무력한 존재가 되었다.


이 비극적 대칭을 보며 이 작품의 결말이 너무나 완벽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오미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 했던 조지는, 나오미라는 세계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오히려 자기 자신을 지우고, 자신을 바쳐야만 하는 인물이 된다. 관계의 처음과 끝이 완전히 반전되며, 가장 소름 돋는 형태의 아이러니가 완성된다.


나오미를 자기만의 인형으로 만들려 했던 조지, 결국 마지막에 인형이 된 것은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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