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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궁리인 Oct 19. 2022

상사의 지시라도

꼭 해야 할까?

 

 직속 상사인 S임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내일 오전 특별한 일 없지? 좋은 제휴 건이 있어. M업체인데 거기 L전무를 잘 알아. 지점장도 아는 사람일 거야. 같이 방문하자고” 한다.


 제휴가 잘 성사되면 실적에 도움이 되니 좋지만, 고객 불만이 많은 업종이고 처음 들어보는 업체라 썩 내키지 않았다. 이 업종 영업을 직접 해 본 터라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상사가 영업처를 연결해 주는 경우가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잘 되면 좋지만 안 될 때가 문제이다. 상사도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보니, 뭔가 매끄럽지 않으면 언짢아한다. 하물며 거절은 더더욱 쉽지 않다. 우선은 부딪혀 볼 수밖에…


 

#1   어떻게 되고 있지?


 M업체를 방문하고 영업을 총괄하는 L전무를 보니 역시 구면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지요?” 하고 반갑게 맞이한다.


 대기업 부장이었는데 이 업체로 영입된 것 같았다. 당시 친분으로 S임원에게 제휴 의사를 타진한 듯 했다. S임원도 인맥 중심 영업에 강점이 있으니 아귀가 맞았다.


 

 회사 현황 등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S임원이 한 마디 한다.


 “구체적인 것은 지점장하고 이야기하세요. 베테랑이니 잘 챙겨 드릴 겁니다.” 다.


 평소 타 회사 방문 시에 분위기나 직원들의 표정 등을 유심히 보는 편인데, 어수선한 분위기가 썩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실무 회의를 더 신중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제휴 조건과 영업 등 구체적인 이야기를 L전무와 나누었다. 운영 수준과 영업사원수, 영업 방식 등 대응 능력이 미흡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제공 가능한 서비스, 비용 등에만 관심이 있었다. S임원과의 친분을 생각해 다 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신속히 성사시키고 싶어 하는 S임원의 입장이나, 실적만 보고 추진할 일은 아니라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타사에도 제휴 오퍼를 해놓은 상태예요. 나야 지점장님하고 일하면 좋지만… 잘 면 좋겠네요.” 하고 은근히 압박을 한다.


 “요즈음 회사도 더 신중해졌습니다. 제휴 수익성 등 본사의 결재를 거쳐야 해서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하고 일부러 여지를 남겼다.


 며칠 후 S임원의 전화가 왔다.


 “잘 되고 있지? L전무도 궁금해하더라고. 지점 실적에 도움이 많이 될 테니 잘 진행해봐” 한다.   


 역시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2  출구 전략이 필요해


 제휴 추진을 위해서는 수익성과 일정 수준의 실적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물론 예상 실적을 많이 잡으면 S임원의 지시대로 제휴 추진은 가능하다. 그러나 업체의 영업 능력과 요구 수준을 감안하면,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럴 싸하게 제휴 조인식을 하고 실적은 안 나오고 스트레스는 받고 비용만 드는, 용두사미로 흐를 게 뻔한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제휴 상품 관리도 흐지부지되어 통폐합될 것이니, 고객에게도 못할 짓이 된다.


 답은 나왔는데 S임원이 문제였다. 직접 소개해 준 업체인데 소극적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하고 업체에도 면이 서게 해야 했다.



 순간 인적 네트워크를 중시하는 S임원의 방식으로 해결하자는 생각이 스쳤다. 제휴 업무 부서에 근무하는 J차장에게 전화를 했다. S임원이 총애하는 직원이었다.


 “자료는 봤지? S임원이 소개한 건인데 아무리 검토해 봐도 답이 안 나와서…” 하고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기존 제휴 실패 사례 등도 S임원에게 언급해서 본사 검토 단계에서, 자연스레 반려하는 모양으로 정리해 달라고 했다.


 눈치 빠른 J차장도 바로 알아차린다.


 “예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고생 많으시네요. 수익성 때문에 진행이 어렵다고 제가 S임원에게 잘 말씀드릴게요.” 한다.


 며칠 후, 잘 마무리되었다고 전화가 왔다. 주장이 강한 S임원도 자신이 아끼던 직원의 말인지라 수긍한 것 같았다. M업체의 L전무에게도 양해를 구하고 매듭지었지만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불필요한 시간을 낭비한 것이 아쉽기도 했다. 처음부터 실익이 없다고 속 시원하게 이야기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S임원 입장에서는 불쾌하게 여겼을 것이다. 소극적이거나 의지가 없다고 생각해 크게 화를 낼 것이 뻔했다.


 

 인적 네트워크가 영업에 도움이 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본질을 가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임원은 중요한 의사결정권자인 만큼, 항상 열린 시각으로 사안을 판단해야 한다. 권위는 폭넓은 식견과 지혜로 빛을 발하는 것이다.


 아직도 상사의 지시를 좇아 안 해도 될 일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두루 살펴 직원들과 후임자가 불필요한 힘을 소모하는 일이 없도록 지혜를 짜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미지 출처 : 제목 #1 #2–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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