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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각의 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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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필 Zho YP Feb 10. 2016

목어(木魚)와 바둑

조영필

소백산 등산가던 길에 초암사에 들렀다가 깜짝 놀랄 만한 그림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초암사의 대적광전 측면에 있는 물고기의 등에 나무가 박혀있는 그림이었다. 대학 시절, 불교개론을 수강하면서 알게 된 심우도(尋牛圖)를 좋아하여, 절에만 가면 대웅전의 측면을 구경하곤 하였는데, 평소에 눈에 들어오지 않던 그림이어서 매우 당혹스러웠다.


물고기에 나무란 정말 예사 그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보통, 나무는 북방 문화에서는 생명나무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고기 또한 남방 문화에서 신성함을 뜻하는 것인데, 이 두 가지가 만나서 매우 고통스러운 형상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림 속의 물고기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면, 무슨 오도(悟道)의 그림으로 생각하였을 것이었다.


그림을 본 지 반년쯤 지나서야 그것도 우연한 기회에 그것이 목어(木魚)에 대한 그림임을 알게 되었다. 스승의 가르침을 잘 지키지 못한 제자가 있었는데, 물고기가 되어 등에 뿔이 나게 되었다. 어느 날 스승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널 때, 그 물고기가 나타나서 죄를 참회하였다. 스승은 수륙제를 베풀어 물고기가 된 그 제자를 구제하고, 후생의 교훈을 위해 목어를 만들어 어리석음에 대한 경계로 삼았다는 전설 따라 삼천리이었다.


그림 중앙 상단에는 앙증스레 목탁도 그려져 있다. 사실은 목탁 또한 목어를 단순화한 디자인이라고 한다. 항상 들고 다니면서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처럼 근면 정진하라는 뜻이다. 그러고보니, 목탁의 소리 구멍은 아가미이었다.


이제껏 절에 가서 수없이 이런 그림을 보고, 목어도 목탁도 보았지만, 눈 뜬 장님이 따로 없다.


목어가 불당에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해 정설은 없지만 여러가지 배경이 보인다. 당(唐) 대의 고승인 백장 회해의 백장 청규에서 시작한다는 설과 한(漢) 대 인도 구법승인 자광 대사의 대어 응징설 등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이 나무 물고기의 전통은 인도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연목구어와도 같은 이질적 상징의 조합을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병모 교수의 가락국기 허황옥 연구에 따르면, 물고기의 상징은 그보다 더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즉, 바빌로니아에서부터 인도를 거쳐 중국 양쯔 강 유역을 지나, 한국의 김해지방에 이르기까지 물고기 또는 물고기 두 마리의 전통은 꽤나 유서 깊은 것이다.


그가 읽은 페르시아 신화 한국어판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자


인류의 만병을 고치는 영약이 있었다. 그 약은 '고케레나'라고 부르는 나무의 열매이었다. 고케레나는 바다에서 자라는 나무였다. 인류를 파멸시키는 악신(惡神)이 나무의 뿌리를 파버리려고 두꺼비를 파견하였지만 실패하였다. 알고 보니 나무뿌리를 지키는 '두 마리의 신통한 물고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물고기의 이름이 '가라(Kara)'이다. 가라가 지성으로 보호하여 고케레나 나무가 잘 자라났고 그 열매와 잎새를 먹고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번창하게 된 것이다. (가야의 유래가 물고기일까?)


그러나 여기서 나는 어처구니없게도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바둑판이 바로 목어가 아닌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바둑판은 나무로 만들어지는데, 바둑돌을 놓으면 소리가 청명하게 난다. 바둑판의 뒤에는 향혈이라는 울림 구멍이 있다. 가히 속이 비어있는 목어라고 할 만하다. 목어의 소리는 바다의 중생들을 구제한다고 하는데, 바둑판의 소리는 또한 우리 애기가들의 가슴을 얼마나 시원하게 비워내는 소리인가?


2) 바둑판의 가운데를 어복(魚腹)이라고 한다. 즉 물고기의 배다. 가운데가 물고기의 배이면, 그 나머지는 무엇인가? 바로 물고기가 아니고 무엇이랴! 게다가 바둑판 위에는 물고기 비늘 같은 괘선이 가로 세로로 그어져 있다. 그 위를 흰 포말과 검은 심해가 교대로 스쳐 지나간다. 이것이 바로 바다 위를 가르는 물고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또 무엇일까?


3) 오늘도 우리는 이 바둑판 위에서 끝없는 승부를 거듭하고 있다. 몇 천만 번의 변화를 거듭하고, 또 거듭해도 새로운 변화가 태어난다. 이 바둑판 하나만 있으면, 억겁이 허허롭다. 예수는 물고기 두 마리로 뭇 백성의 배를 끝없이 채워주었다. 채워주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았다고 한다. 바둑판 또한 끝없이 우리의 유희에 대한 갈증을 채워주고도 남음이 있으니, 이 또한 신통한 물고기가 아닐까?


(2015.04.16)


Note:

불교에서의 목어는 이러한 전설 따라 내려온 물고기를 힌두교의 상징으로 보고 부처가 득도하였을 때 힌두의 신이 부처에게 굴복한 징표라는 이야기도 있다.

남방불교에는 정말 목어가 없을까? 현재까지는 있는 것을 확인하지 못함(2020.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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