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
참 오래된 일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1987년에 이기영 교수님(1922-1996)으로부터 불교개론을 수강하고 있었다. 학기말 과제로 반야심경에 대한 리포트를 제출하여야 했다. 그때 읽었던 반야심경 책을 집에서 찾아보니 아직 있었다. 그 강의를 수강한 이후로 몆십 번이나 이사를 했을 테지만 용케도 찾을 수 있었다. 그 책은 한국불교연구원에서 1985년 6월에 인쇄하고 발행한 목탁신서 5 이기영역 반야심경이다. 그 책의 39쪽에 보면, 반야심경의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에 대한 설명에서 '고액(苦厄)'에 대해서 ‘명광(明曠)은 고(苦)는 팔고(八苦)로 보되, 액(厄)은 사액(四厄)으로 주석하였다’고 하며 다음 문장을 인용하고 있다.
言四厄者, 一欲厄, 二有厄, 三見厄, 四無明流厄也. (속장경 권 41. 반야심경소, 明曠述. p. 329)
다시 역자(이기영)는 팔고는 괴로움을 나타내는 표현이고, 사액은 욕심(欲), 존재(有), 편견(見)*1), 무명 속의 유전(無明流) 등 네 가지 재앙을 말하는 것이다 라고 설명한다.
이 책을 다시 보다 보니, 이러한 내용을 설명하는 명광(明曠)이란 분이 누구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예전에는 그냥 막연히 중국 스님(고승)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인데, 갑자기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찾아 보니, 정보가 그리 많지 않다. 중국 당(唐)나라 때 [천태보살계소天台菩薩戒疏]와 [반야바리밀다심경소若波羅蜜多心經疏]를 저술하였으며, '777년 행적 보임' 정도가 전부이다. 그러므로 이 분의 국적이 어디인지(중국, 인도, 일본, 한국) 등의 자세한 사항은 알 길이 없는 셈이다(조사하다 보면, 일본 고승 망월신형(望月信亨)의 판본 검토까지 이르게 되어 갑자기 웬 불교학자(?) 필feel이 들어 중단).
당시 4액에 대해서는 바로 수긍이 되었다. 그것은 서양 학문으로 보는 관점이지만, 욕액은 프로이트의 ‘이드’나 생명의 '대사와 생식'으로, 유액은 칸트의 ‘물자체’나 비트겐슈타인의 '이름'으로, 견액은 후설의 '현상'이나 베버의 ‘가치 판단’으로 충분히 추론할 수 있었다. 물론 같은 개념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면, 남는 것은 무명류액인데, 이 액을 넘어서는 것은 불교의 교의(敎義) 전체를 깨달아, 더 이상 이 사바세계의 윤회에 머무를 필요가 없는 각자(覺者)의 경지가 아닐까 하고 추측해보았다.
그리하여 나는 4액에 깊은 인상을 받아 이것으로 깨달음의 도정에서의 4가지의 층차로 구분하여 불교를 이해하는 화두로 삼았었다*2). 그런데 나는 8고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아마도 불교의 교리라는 것이 8정도니 12연기니 하며, 이것 저것 숫자로 된 나열이 많고 그 분류도 쉽게 수긍이 안되는 경우가 많아서였으리라. 그렇지만, 생로병사가 4고란 것을 (불교적) 상식으로 알고 있었을 텐데 왜 8고의 나머지 4고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을까? 아마도 그 시절에는 의문을 가진다 한들 그 의문을 바로 해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있었다면 바로 찾아 보았을 테지만, 당시에는 물어볼 데도 마땅치 않고 또 그리 중요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은 채 그냥 묵혀져서는 기억 속으로 소환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어떤 공학 교수님의 연구실에 갔다가 그가 저술한 불교 수련 책자를 접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 책에는 8고가 그림으로 도해되어 있었다. 생로병사 외의 나머지 4고는 다음과 같다.
원증회고(怨憎會苦), 애별리고(愛別離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온성고(五蘊盛苦)가 그것들이다.
이 4고는 기존의 4고(생로병사)와는 개념적 수준이 달라서 부처님이 정말 직접 설하신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부처님의 초기 경전을 확인해 본다.
"비구(比丘)들이여, 이것이 고(苦)의 성제(聖諦)이다. 마땅히 알라.
생(生)은 고(苦)이다. 노(老)는 고(苦)이다. 병(病)은 고(苦)이다. 죽음(死)은 고(苦)이다.
미운 사람과 만나는 것도 고(苦)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고(苦)요,
욕심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고(苦)이다. 통틀어 말한다면 이 인생은 바로 고(苦) 그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고(苦)의 발생의 성제(聖諦)이다. 마땅히 알라.
후유(後有)를 일으키고, 기쁨과 탐심(貪心)을 수반(隨伴)하며, 이르는 곳마다 그것에 집착(執着)하는 갈애(渴愛)가 그것이다.
그것에는 욕애(欲愛)와 유애(有愛)와 무유애(無有愛)가 있다."
([相應部經典] 56:11 如來所說]. 漢譯同本, [雜阿含經] 15:17 轉法輪, 마스타니 후미오 저, 이원섭 역 [아함경], 현암, 2001)
“수행승들이여,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란 이와 같다.
태어남도 괴로움이고, 늙는 것도 (괴로움이고), 병드는 것도 괴로움이고, 죽는 것도 괴로움이고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도 괴로움이다.])
사랑하지 않는 것과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고, 사랑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줄여서 말하자면, 다섯 가지 존재의 집착다발이 모두 괴로움이다.
수행승들이여, 괴로움의 발생의 거룩한 진리란 이와 같다.
그것은 바로 (갈애craving이다.) 미래의 존재를 일으키는 쾌락delight과 탐욕lust을 갖추고 여기저기에 환희하며 (미래의 존재를 일으키는 갈애이다.)
곧,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대한 갈애, 존재에 대한 갈애, 비존재에 대한 갈애이다.
(Dhammacakkappavattanasuttaṃ 가르침의 수레바퀴에 대한 경, 전재성 역)
이러한 전거들을 살펴 볼 때, 이것은 부처님이 득도 후 처음으로 다섯 비구에게 설한 초전법륜이며, 그것도 꽤 이른 시기 채집된 경전(아함경)임을 알 수 있다. 이제 새로 알게 된 4고의 뜻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원증회고: 싫어하는 사람(대상)과 만나는 괴로움 (The suffering of encountering what is unpleasant).
애별리고: 사랑하는 사람(대상)과 헤어지는 괴로움 (The suffering of separation from what is pleasant).
구부득고: 아무리 구해도 얻어지지 않는 괴로움 (The suffering of not getting what one wants).
오온성고: 오온(五蘊: 색온(色蘊),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 식온(識蘊))이 한꺼번에 일어나 생기는 괴로움 (The suffering of the five appropriated aggregates).
그런데, 이 8고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된 이후 30여년이 흘러서였을까? 세상을 살면서 예전에는 아지 못했을 '원증회고'가 너무나도 크게 가슴에 와닿는다. 세상살이 하면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아프고 상처를 주는 괴로움이 어디 있을까? 물론 사랑이 많은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애별리고'에 상심이 더 클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세상에서의 성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구부득고'가 가장 아프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원증회고'가 가장 아프게 다가온다.
세상을 살아보기도 전인 푸르런 젊은 시절에 누가 '원증회고'를 알려 주었다 한들 내가 그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나 있었을까? 이 괴로움은 내가 그것을 이해할 시점에 문득 찾아와서 젊은 시절의 나의 고민의 흔적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원증회고'를 이해하게 되었고 그 아픔을 넘어서서 다시금 전진할 것이다.
이제는 오묘한 오온성고를 해결해 보려 한다. 항상 그랬듯이 나는 먼저 경전으로의 여행을 떠난다.
주:
*1) 지금 30년을 격하여 반야심경을 다시 읽어 보니, 이기영은 견액을 편견으로 주석하고 있다. 여러 전거를 조사해보니, 이러한 해석은 역자만의 해석이 아니라 모든 불제자의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해석이다. 그런데 나는 당시 견액을 능소(能所 주체와 객체)의 차별심을 가지게 하는 장애로 오독(誤讀)하였다. 왜냐하면 본다는 것은 보는 주체와 보이는 객체를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견액(차별심의 장애)을 넘어서는 경지야말로 소아(小我 Atman)를 탈피한 보살도의 경지가 아닐까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 견액을 능소의 장애로 이해할 때, 욕액은 아함적 세계인 초기불교의 세계이며, 유액은 중도와 유식론의 세계로 이해한다. 그런 다음 견액을 넘어 보살도의 경지에 들어서게 되면, 욕망의 세계, 인식의 세계, 피아의 세계를 모두 넘어선 것이다. 그런데도 장애가 있으니, 그것이 무명류액이다. 이것은 논리와 인식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반야의 세계이다. 이렇게 나는 내 나름의 교상판석(敎相判釋)을 시도하였었다. ('총체성의 실화' https://brunch.co.kr/@zhoyp/326 참조).
그러고보니, 유액에서의 유(有)를 존재로 이해한다면, 욕액 - 유액 - 견액 의 단계별 경지가 존재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연기론을 보더라도 존재(有)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갈애(愛)를 넘어설 수 있다. 그렇다면, 욕액보다 유액은 더 낮은 단계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유액을 욕액 다음에 배치하였다. 그 까닭은 내가 규정한 유액에서의 유(有)란 허상의 존재에 대한 유(有)가 아니라 욕(欲)을 넘어선 경지(state)를 실재(有)로서 인식하는 유(有)이었기 때문이다.
Note:
1. 전 4고(생로병사)와 후 4고(원증회고, 애별리고, 구부득고, 오온성고) 사이의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은 여러 가지 Version이 있다.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각묵 스님 역), 'sorrow, lamentation, physical pain, unhappiness, distress'(Peter Harvey 역), '시름, 근심, 슬픔, 불행, 번민', '근심, 비애, 고통, 번뇌, 번민', '우울, 슬픔, 고통, 불쾌, 절망', '우비고수뇌(憂悲苦愁惱)' 등이 그것들이다.
2. 전 4고와 후 4고를 동렬에 놓아 8고라고 일컫는 것은 사실 납득이 잘 안된다. 전 4고는 12연기에 등록되어 있는 고이나, 후 4고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3. 후 4고 또한 함께 그룹화하는 것도 이상하다. 원증회고와 애별리고는 사실 동어반복(대우)의 관계이며, 이러한 원증회고와 애별리고는 둘다 결국 구부득고의 현상이다. 그리고 부처님이 말씀하셨듯이, 이러한 모든 고는 오온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것이므로 오온성고는 모든 고통의 총정리이다. 그러므로, 고통을 정리해보면 4고(생로병사: 고통으로 직접 체험되지는 않는 본질적인 고) -> 잡고雜苦(우비고수뇌+3고: 고통으로서 체험되는 고) -> 1고(오온성고: 고 자체이자 고의 원인) 의 서술 형태로 여겨진다.
4. 재미있는 사실은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의 산스크리트어 원문이 없다는 것이다(이기영의 주). 따라서 이 구절은 한역을 한 현장이 처음으로 삽입한 구절이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나의 상념은 환영 위에서 춤을 춘 그야말로 공한 색이다.
5. 김용남, 약본 반야심경 도일체고액 해석의 비판적 검토, 한국불교학 제61집, 2011, pp. 203-230. 을 보면, 도일체고액 번역과정에 대해 보다 입체적인 이해를 할 수 있다.
6. 액을 4액이라고 주석한 첫 인물은 누구일까? 명광일까 아니면 다른 누구인가? 이것이 불타의 가르침에 그 원류가 있는 것일까? 욕액과 유액 그리고 무명류액은 12연기에도 보인다. 12연기의 [애]와 [유] 그리고 [무명]이 그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편견으로 해석되는 견액은 어디에서 불쑥 날아들어온 것일까? 만약 내가 해석하듯이 견액이 능소의 구별이라면, 그것은 [명색]과 [육입] 사이에 존재한다.
7. 4액은 4폭류인데, 이는 번뇌라고 한다. 그중 견폭류는 능의에 의한 번뇌이고 무명폭류는 소의에 의한 번뇌라고 한다.
8. 그렇다면, 내가 견액을 능소의 분별심이라고 본다면, 이는 견폭류(능의)와 무명폭류(소의)를 아우르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무명류액은 불필요하다. 욕액, 유액, 견액의 3액을 넘어서면 바로 부처가 아닐까
(2020. 10. 06 추가 메모)
9. 4액을 이야기한 사람으로 사리불이 보인다.
閻浮車問舍利弗。所謂流者。云何為流。 舍利弗言。流者。謂欲流.有流.見流.無明流。 復問。舍利弗。有道有向。修習多修習。斷此流耶。 舍利弗言。有。謂八正道。正見。乃至正定。 時。二正士共論議已。各從座起而去。
염부차가 사리불에게 물었다.
흐름[流]이라고 말들 하는데 어떤 것을 흐름이라 합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흐름[流]이라는 것은 이른바
욕류(欲流), 유류(有流), 견류(見流), 무명류(無明流)입니다.
또 물었다.
사리불이여,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히면 흐름을 끊을 수 있는 길이 있고 방법이 있습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있습니다. 이른바 8정도이니, 즉 바른 소견과……(내지)…… 바른 선정입니다.
그 때 두 정사(正士)는 서로 논의를 마치고 각각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잡아함경 제18권 제490경 염부차경(閻浮車經)] 위키피디아 참고
10. 또 찾았다. [방광대장엄경 제 9권 22 성정각품] 에 보면, 4액 관련 구절이 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욕계의 여러 천녀들은, 여래께서 보리좌에 앉으셔서 일체지(一切智)를 얻고 큰 서원이 만족하며 악마를 항복받고 승리의 당기를 세우며 큰 의왕이 되어 뭇 병을 잘 치료하며 큰 사자와 같이 두려워함이 없고 깨끗하게 때를 떠나 일체지를 얻으며 3명(明)을 두루 갖추고 4류(流)를 뛰어넘으며 하나의 법 일산을 지니어 삼계를 덮어 보호하는 것을 보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