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필역
한 남자가 술집으로 들어간다… 만약 당신이 농담을 분석하려고 하면, 당신은 농담을 죽이게 된다, 그럴까? 아닐까! 그러면 ASIT가 이를 증명할 것이다!
금번 이슈에서 우리는 ASIT의 원리들이 희극과 농담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해 토의할 것이다.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창의성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농담과 유머를 창의적인 해결책으로 살펴보는 것은 가능하다. 만약 이것이 맞다면, 우리는 여기서 역시 ASIT 원리를 발견하기를 기대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농담에서 창의적인 요소를 분석하는 것은 그것을 죽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의견으로는 농담을 단순하게 분석하는 것은 그것을 한 번 더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당신을 위해 여기 한 가지를 든다:
한 남자가 의사에게 가서 말한다, ‘의사선생님, 저는 치명적인 병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제 몸을 건드리는 곳마다, 저는 심각한 고통을 느낍니다.’
걱정스러워진 의사가 그를 진찰했다. 그리고는 웃기 시작했다. ‘저는 당신의 병의 원인을 발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의견으로는 당신은 더 오래 살 것입니다. 당신은 다만….’
계속하기 전에, 이 농담의 적당한 마무리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글쎄요,’ 의사는 말했다. ‘문제는 당신이 당신의 손가락에 상처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이것이 우스운가?(그리고 나는 이것이 우습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사과한다)
닫힌 세계와 질적 변화라는 ASIT의 원리가 이 농담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해 주목하세요.
먼저, 농담을 몸체(body)와 반전(punch line)으로 나누는데 동의하자
-- 닫힌 세계의 조건 -- (우리는 어떤 새로운 종류의 대상을 추가하지 않는다고 기술하는 것) 이 농담의 반전에서도 어떤 새로운 대상은 추가되지 않는다.(상처는 병의 종류이다)
-- 질적 변화의 조건 -- (해결 상태에서 문제의 원인은 문제의 심각성과 끊어진다고 기술하는 것): 농담에서, 질적 변화는 대개 농담의 몸체와 반전 사이에서 창조된다.
농담의 몸체에서, 환자가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이 고통을 느끼면 느낄수록, 그의 상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반전에서 우리는 고통스러운 곳의 수와 문제의 심각성 사이에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당신이 ASIT의 원리를 보여주는 어떤 농담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가 그것을 들을 수 있다면 매우 기쁠 것이다.
My Note
1. 환자의 농담은 하나도 웃기지 않다. 그 이유는 통각은 인간이 그 위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손이 아프면서
만지는 곳마다 아픔을 느낀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립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것은 농담이 아니라, 재치 퀴즈이다.
그것은 환자가 상황설명과 퀴즈를 내고, 청자가 어떤 상황인지 맞추는 퀴즈 게임이 와전된 것이다.
2. 서론(body)에서의 꼬인 상황이 반전 후 전혀 관계가 없게 되는 농담을 찾아보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웃음]에서 엄선한 농담
두 정자가 만나서...
<난소까지는 아직 멀었어?>
<뭔 소리야, 이제 겨우 편도선 근처에 와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