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가버린 겁니다.

-오늘의 조언

by 지안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행복한 가정의 사정은 다들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라고 했다. 비슷한 이유로 ‘잘 되는 연애는 다들 비슷비슷 하지만 끝을 바라보는 연애는 다 다른 이유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유는 다르지만, 징후는 대개 비슷하게 포착된다.



연락이 뜸해진다. 이보다 확실하고 또한 변명거리 많은 이유는 없다. ‘바빠서’가 최고 중의 최고다. 실제로 나 역시 사는 일이 바쁘기 때에 상대방의 ‘바빴다’는 주장에 쉽게 납득되어 버린다. 하지만 썸 타던 시간이나 연애 초기를 떠올리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할 것이다.


연락을 하는 기본적인 이유는 ‘궁금함’ 때문이다.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어제 만나지 못했는데, 그때 다른 소개팅이라도 한 것은 아닌지’ 기본적으로 궁. 금. 하. 기 때문에 연락을 한다. 원래 성격상 연락이 뜸한 사람도 있다. 이런 분들은 처음부터 뜸하다. 하루 서너 번 연락하다가 뚝 끊기는 날이 생겼다면, 미안하지만… 사랑은 가버린 겁니다.



대화가 산만해진다. 분명 눈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데, 얘기가 헛바퀴를 돈다. ‘어제 엄마한테 혼나서 우울했어’라고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어제 기분 괜찮았지?’라고 묻는 경우다. 즉 내 말을 한 귀로 듣고 거침없이 한 귀로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다.


“회사에 중요한 일이 있어서…”라거나 “요즘 입사 준비에 정신이 없어서”라고 말하겠지만,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누구에겐가 기대려고 하는 것이 사람 심리다. 즉 나 이외에 기댈 누군가가 생긴 것이다. 이런 경우라면 그가 하루 다섯 번 내게 전화하고, 퇴근 때 회사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미안하지만…. 사랑은 가버린 겁니다.



별 일 아닌 것에 생색을 내기 시작한다. “내가 주말 저녁에 너 혼자 있게는 안 하잖아.”라거나 “내가 그래도 연락은 항상 되잖아.” 같이 갑자기 별 일 아닌 것에 생색내기가 시작되었다면, 마음의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생색은 상대방에게 하는 것이기보다는 ‘스스로 마음을 다잡는’ 과정일 수가 많다.


몇 달 혹은 몇 년씩 지속된 관계를 깨는 것은 누구나 부담되는 일이다. 게다가 자신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도 드물다. 상대에 대한 애정이 식은 채로 의무감이 밀려들기 시작할 때가 이런 타이밍이다. 미안하지만…. 이미 사랑은 가버린 겁니다.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친해지면 팽팽하던 신경 줄이 느슨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썸 탈 때나 거울 앞에서 신경 쓰는 것이지, 매일 그렇게 어떻게 사느냐는 질문도 말은 된다.


하지만 동성친구를 만나러 나갈 때도 거울 앞에 서는 것이 인간이다. 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상태가 괜찮다’ 고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연애 상대가 나를 만나러 나올 때 ‘너무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 는다면, 그(혹은 그녀)는 당신을 그(혹은 그녀) 자신처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즉 당신의 존재에 무심해진 것이다. 당신은 그의 방 전기스탠드나 침대, 욕실의 칫솔과 같은 수준이 되어 버린 것이다. 미안하지만…. 사랑은 가버린 겁니다.



내가 널 잘 아는데….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사랑을 시작하면 상대방의 모든 것에 궁금해하고 집중하게 된다.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느 장소를 선호하는지, 어떤 음악을 즐겨 듣는지 관심을 갖게 된다


연애할 때 상대방은 나에게 커다란 ‘?’ 기호다. 그(혹은 그녀)가 나를 만나 즐겁고 기쁠 때만 다시 만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취향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그때의 반응에 대한 기억이 필수다. 이미 그(혹은 그녀)가 당신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그(혹은 그녀)는 더 이상 당신을 관찰하지도 기억하지도 않게 된다. 미안하지만…. 사랑은 가버린 겁니다.



만나는 이유가 단순해진다. ‘밥 먹자’고 만나서 정말 밥만 먹고 헤어진다(여기에다 ‘그래도 내가 밥은 안 굶기잖아’라는 생색까지 덧붙이면 딱 걸린 것이다) ‘영화 보자’고 만나서 영화만 보고 헤어진다.


연애를 하게 되면 다른 사회적 관계가 줄어든다. 연애만 시작하면 잠수 타는 인간들은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당연히 일정 시간 연애 관계가 지속되고 나면, 딱히 만나고 싶거나 보고 싶지 않을 때에도 편하게 불러낼 수 있는 사람이 연애 상대뿐일 경우가 많다. 이것은 일단 진동을 시작한 진자처럼 관성적으로 만나고 있다는 말이다. 미안하지만…. 사랑은 가버린 겁니다.



해가 뜨면 반드시 지는 것처럼, 추위 속에서도 얼마 후 분명 여름이 다가오는 것처럼 사람 관계도 불타오를 때가 있고 시들 때가 있다. 문제는 양 쪽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 70프로 차 있는 연애 배터리 상태인데 상대방은 10도 남지 않았다면 문제가 된다.


하지만 붙잡는다고, 매달린다고 상황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갈팡질팡 하는 마음을 다독이며 미래의 준비를 해나가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그래서 시인은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노래했던 모양이다.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것보다 둘이 같이 있을 때 외로운 것이 더 슬프다.


오늘의 조언 : 사랑이 가 버렸다는 느낌이 든다면, 잡지 마세요.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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