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위로
십수 년 알고 지내는 선배가 있다.
직장에서 ‘알고 지낸다’는 대단히 중의적 의미를 지니는데, ‘네 이름을 안다’부터 ‘나는 당신이 생일에 (당신 와이프가 특별히 주문해서 배달되어 온 생크림 케이크를 당신보다 강아지가 먼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센 수위의 솔직함과 적극성으로 반기는 바람에 식사보다 먼저 열 일을 제치고) 강아지 목욕을 시켰다는 것을 안다’까지 다양한 층위로 구성된다. 꽤 많은 인원이 들고 나며 일하는 곳이라 노력하지 않으면 이름만 아는 상태에서 십수 년 지나가기도 한다(이십 년 같은 부서 소속인데 한 마디도 말 안 섞어본 사람이 두엇 있다. ㅋㅋ). 그러니 오래 알았다고 다 속내를 드러내지는 않지만, 이 선배로 말할 것 같으면 ‘강아지 목욕’ 쪽이다.
민물낚시를 좋아해서 그 스케줄만 망쳐 놓지 않으면 세상 가장 평화롭고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남자다. 그의 최대 단점은 ‘궁시렁거림’인데, 그마저도 눈치 한번 주면 쪼르르 옥상으로 혼자 올라가 삭이고 내려온다. 10년 넘게 근무했던 부서를 5년 동안 떠나 있다 최근 돌아왔다. 5년이면 사내 시스템이 두 번은 갈아엎어질 시간이다. 아무리 베테랑이었다고 해도 조금의 OJT는 필요했다. 출근길, 흘끔 자리를 보니 엄숙한 표정으로 업무를 배우는 중이었는데, 가르치는 직원의 얼굴은 젊고 낯설었다.
점심시간,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 슬며시 내게 다가왔다.
“오랜만에 하려니까 뼈가 쑤셔.”
마스크를 턱 아래에 걸치고 커피를 짭짭 대면서 선배가 말했다.
“늙어서 그런 거야.”
점심시간 같은 것 봐주지 않고 쌓이는 일을 해치우느라 헉헉대던 내가 모니터를 쏘아보며 말했다.
“그런가? 요즘 애들한테 OJT 받으려니까 더 긴장돼. 아우, 달라도 너무 달라.”
모니터에서 후다닥 눈을 떼고 선배를 봤다. 갑작스러운 시선에 선배가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왜? 뭔 일 있었는데? 요즘 애들이 왜? 선배랑 밥 먹기 싫다고 도망갔어? 못 알아듣는다고 막 무시해?”
“아니, 그건 아니고……”
더듬더듬 중얼중얼 말하는 바를 종합해보니 ‘요즘 애들은 융통성이 없고 너무 칼 같다’는 것이었다.
“안 되는 것 알지. 그래도 좀 부탁을 하거나, 몇 가지 옵션을 바꿔서 설득하거나 할 수 있잖아. 그럴 마음이 조금도 없어. 안되니까 못한다가 끝이야.”
부탁을 하는 것은 안면이 있어야 가능하고, 옵션을 바꾸는 것은 재량권이 따라와야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이다. 입사한 지 3년 된, 그 부서로 자리를 옮긴 지 1년도 되지 않은 ‘요즘 애들’이 쉽게 구사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대꾸를 하면서 낄낄거리는 내게 선배는 ‘진짜 그런가’하면서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우리가 요즘 애들보다 외국어가 잘 되나 컴퓨터 실력이 나은가? 그나마 융통성이라도 있으니 버티는 것인데, 걔들이 그것까지 잘해봐. 어디 점심 잘 먹고 와서 밥줄 떨어지는 소리를 하냐.”
“잘났다. 근데 진짜 늙어서 배우려니 못 해 먹겠어”
선배가 투덜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되돌아보면 ‘요즘애들’에 관한 뒷담화는 계속 있었던 것 같다(나도 그 시절에는 들었다는 소리다). 앞에 놓고 똑같은 소리를 하기도 하니까 뒷담화도 뭐도 아니다. 요즘 애들은 ‘일을 똑 부러지게 잘한다’부터 시작해서 ‘너무 개인주의적이다’까지 거의 내용도 비슷하다. 마치 ABO 식 혈액형에 따라 성격을 구분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처럼 ‘옛날 사람’과 ‘요즘 애들’을 나눈다. 지구 상 인간을 4가지 성격으로 구분 지을 수 없듯이, 옛날 사람이고 요즘 애들이고 각자의 성격이 다를 뿐 세대 간의 차이는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두 가지 사건을 터트려서 출근을 두렵게 하는 신입도 있고, 5시 40분만 되면 팀장이 화를 내고 있건 말건 퇴근해버리던 선배도 있었다.
그래도 ‘요즘 애들’에게만 보이는 좀 다른 면이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있긴 있다.
비교할 대상이 나 밖에 없는지라 좀 오래된 비교를 해 본다면, 요즘 애들은 스펙이 ‘달라졌다’. 1996년에 입사한 내 동기를 10으로 봤을 때, 7 정도는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여자에게 유일하게 허용된 외박은 시집이다’라는 지론의 아버지로 인해(요즘은 이런 분들 안 계시지요?) MT도 못 간 사람이었지만, 어쩐지 입사하고 보니 상황이 그랬다. 10년 후쯤 들어온 신입에게는 “어디서 했니?”가 질문이었다. 이미 어학연수 안 다녀온 직원을 찾기가 별따기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몇 살 때부터 거기서 공부했니?”가 질문이다. 한국 대학 졸업자와 외국 대학 졸업자의 비율이 6:4 정도인 것 같다. 어마 무시하다.
꼭 그런 이유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신입의 절반은 1년 내 퇴사다. 남은 반 중 또 절반이 4년 안에 순차적으로 그만둔다. 1/4 정도가 남아서 관리자도 하고 임원도 하고 ‘요즘 애들에게 일 배우려니 너무 힘들다’는 소리를 해가며 평범하게 회사를 다닌다. 1/4 입장에서 말하자면, 기껏 일 가르쳐 놓으면 거의 사라진다. 이것도 신나는 상황은 아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초반 퇴사자가 많은가 생각해 보면, 갈 곳이 있으니 자리를 옮기는 것이다. 취업이 힘들다고 말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리 힘든 일이 아닌 것이다. 완벽한 ‘빈익빈 부익부’ 상황이다.
어학연수 정도는 (이것도 어렵긴 하지만) 본인의 가열찬 노력으로 야금야금 자금을 모아 몇 달 다녀오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조기 유학을 가려면 집안 뒷받침이 필수다. 그것이 기러기 아버지가 되었든 온 가족 이민이 되었든 마찬가지다. 즉 외국 대학을 나왔다는 말은 그 학교에서 공부할 학력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그 생활을 감당할 정도의 집안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한다. 경제적인 문제와 관련해서는 따로 인사검증을 할 필요가 적다는 말이다. 역시 인사부는 다 생각이 있다. 내가 입사했을 때는 ‘회사에 경제적인 손실을 끼칠 경우 대신 갚아줄 연대보증인’을 2인 이상 세워야 했다. 물론 그런 절차는 사라졌다.
그런데 이 방법밖에는 없는 것인지는 묻고 싶다. 1/4 입장에서 말하자면 ‘어느 정도는 다녀 줄 신입’이 필요하다. 스펙 따위야 내 알 바가 아니다. 교육시키면 딱 알아듣고, 제때에 출근해서 일하고 발랄하게 인사하고 퇴근하는 신입이 가장 예쁘다. ‘요즘 애들’ 중에는 이런 애들 찾기가 힘들다. 다들 그만둔다.
누군가에게는 몇 가지 중 선택의 문제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몇십 번의 도전에도 이루지 못한 어떤 것이 취업이라면 조금 슬프다. 기회 정도는 공평해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할 방법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또 별로 할 말이 없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