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친구

-오늘의 조언

by 지안

2016년 방영된 미니시리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착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던 희자가 친구인 정아에게 울면서 화를 냈다.


“너는 왜 사는 게 맨날 그렇게 힘들어. 왜 맨날 힘들어서, 내가 필요할 때는 없어.”


치매가 온 희자는 과거 자신의 가장 큰 트라우마였던 아들의 죽음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죽은 아들을 업고 걷던 길에서 발견된 그녀는, 그 당시 자신에게 매몰찼던 정아에게 울부짖는다.


“기껏 전화했더니, 나도 힘든데 징징거리지 말라고 하고 전화 끊었지. 그때 난 너 밖에 없었는데……”


그런 친구를 보며 울음을 터트린 정아에게도 할 말은 있었다. 그 전화를 받을 당시 까탈스러운 시부모를 모시는 와중에 유산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치매와 정상의 사선에 위태롭게 서 있는 친구를 끌어안고 미안하다며 잘못했다며 사죄했을 뿐이다.



살면서 몇 명의 사람을 만날까. 핸드폰에 몇 천명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다는 사람부터 단지 수십 명만 있는 사람까지 다양할 것이다. 직업상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과 만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종일 나누는 대화는 반려 동물과 하는 것이 전부인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친구’라는 여과지로 걸러내고 나면 과연 몇 명이 남을까.


먼저 ‘친구’와 ‘지인’을 구별할 필요가 있겠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이 다 나의 친구는 아니다. 굳이 나이가 같을 필요도 없다. 고등학교 때까지야 비슷한 나이로 구성된 사회 안에 머무르지만, 이후로는 나이도, 성별도, 사는 곳도 비슷하지 않은 사람들과 살아가게 된다. 그러면 이렇게 만나서 ‘알게 된’ 사람 중 누구에게 친구라는 호칭을 부여하게 될까.


각자 본인의 경우를 돌아보면 알 수 있겠지만, 대부분 ‘내게 어떤 의미에서든 영향을 주는 사람’을 우리는 ‘친구’라는 호칭으로 부른다.


생각을 정리하게 해 주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오류를 잡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이야기가 잘 통하는 친구라고 생각한다. 먹고사는 것과 연관은 없지만 특정 부분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사람이라면(그 특정 부분은 내가 좋아하는 분야겠지) 그를 멋진 친구라고 부른다. 기분을 잘 이해해주고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며, 감정의 평안을 찾게 해주는 사람을 이심전심인 친구라고 칭한다. 그 외 어떤 의미로든 내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그에게 쉽사리 ‘친구’라는 호칭을 허용하지 않는다.


‘지인’과 ‘친구'로 분류하는 법을 우리는 학교 생활을 거치면서 차곡차곡 습득한다. 아무에게나 고민을 털어놓고, 그것이 온 동네로 소문이 퍼져 마음고생을 한 경험을 대부분 학창 시절에 한 번쯤 경험한다. 물론 그 이후로도 지인과 친구를 잘 가려내지 못해서 상처를 입기도 한다. 도무지 우리 인생에서 완벽하게 터득되는 법은 없으니까.


정리하자면, 친구란 내게 어떤 의미로든 영향을 주는 사람을 말한다(이래서 ‘우리 애는 착한데 친구를 잘 못 사귀어서… 같은 말이 나오나 보다). 그렇다면 나 역시 그럴 정도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영향력이 있고, 든든하며, 좋은 시간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친구가 될 수도, 친구를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단 한 명의 친구만 가져도 인생은 훨씬 풍요롭다. 내게 생긴 좋은 일을 진심으로 기뻐해 주고(뒤돌아서 비꼬거나 토라지는 일 없이), 힘들 때 시간을 내서 이야기를 들어주는(해결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경청하는) 사람 하나를 갖는 것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일이다



중년을 넘어 노년으로 가는 요즘, 내 인생의 후반기에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상상을 가끔 한다. 아마 도시를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치안이나 교통망의 문제를 생각한다면 도시를 벗어날 생각이 없다. 집 근처에 좋아하는 밥집(이라 쓰고 술집이라 읽는다)이 하나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무 말없이 늘 먹던 것을 서두르지 않고 내어주는 주인이 있는 그런 곳 말이다.


그리고 그곳을 찾아가는 길, 문득 올려다본 창에 불이 켜 있으면 전화해서 함께 가기를 청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한다. 가끔은 귀찮지만 몸을 움직여 함께 집밥을 해 먹을 수도 있겠다. 별 설명 없이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옛날이야기 말고. 제발.) 새로운 곳에 대한 정보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친구가 동네에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그(혹은 그녀)의 말을 경청할 것이고 그(혹은 그녀)가 좋아할 소식과 이야기를 준비할 것이고 그(혹은 그녀)가 근래에 경험한 재미있는 일에 대해 환호를 보낼 것이다. 상상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연애의 쓰라림 중 하나는 인생 최고의 친구를 가졌다가, 헤어지면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이 점에서는 우정이 연애보다 일억 삼천 사백 오십만 배 낫다). 연애 외에도 우정을 가로막는 많은 장애물이 있다. 열악한 밥벌이, 피로한 하루,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소소한 일들…… 그러나 기억할 것은 내가 좋은 친구가 되어야만, 나 역시 훌륭한 친구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나 스스로가 작을지언정 빛을 내고 있어야 다른 빛이 나를 찾고, 함께 빛날 수 있다. 자신을 소중하게 대하는 사람만이 타인의 중요성을 안다. 오늘도 내가 스스로를 돌보는 일에 열중해야 하는 이유다.


오늘의 조언 : 좋은 친구가 되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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