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산책 중 딸의 마스크 상태가 이상했다. 입만 간신히 가린 채 헉헉거리며 걷고 있었다. 코를 다 가려야 효과가 있는 거라고 아는 척을 했다.
“괜찮아. 난 건강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줄까 봐 낀 마스크야. 난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20분 후 걸음을 멈추고 마스크를 벗고 씩씩거렸다.
“인중에 땀이 차니까 이타심이 사라져.”
하늘 아래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없다. ‘과연 그럴까’ 싶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옛날에는 말이야’라며 은근슬쩍 자리 잡는다. 라떼 같은 소리지만 대학 1학년 리포트는 손으로 썼다. 곧이어 책받침 같은 플로피 디스켓을 번갈아 꼽아가며 커다란 타자기 대용으로 컴퓨터를 이용했다. 지금에 비하면 아메바 뇌 수준의 하드 디스켓이 달린 컴퓨터와 전화선이 만나서 유레카를 외치던 때를 지나 WWW의 시대를 거쳐 재택근무 도입을 말하는 곳까지 도착했다. 오는 길이 힘들고 험난했냐면 조금 그렇다. 자꾸 배워야 할 것이 생겨 귀찮기도 하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늘 씁쓸하다. 요즘은 코딩을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다 몇 년만 버티면 퇴직이란 생각에 또 한 번 타협한다. 인간의 적응력이 이렇다.
이런 인간이다 보니 바뀐 풍경에도 익숙해진다.
도서관 입구에서 체온계를 들이미는 것이 익숙해지는 것에는 이틀 걸렸다. 지금은 그나마 문을 닫아 버려 갈 수 없지만 계단을 올라 입구에 도착하면 자연스럽게 이마에 걸쳐 있는 머리카락을 들어 올렸다. 삑, 통과
회사 열화상 카메라에 익숙해지는 것 역시 그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체크를 위해 큰 문 출입이 금지되고 작은 문을 통해 줄을 서서 들어가야 하지만 뭐 그 정도는. 네, 좋은 아침입니다.
간만에 발견하고 흥 차올라 예매한 공연이 취소되는 것에 익숙해지기는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오래 기다렸던 만큼 속이 상했던 거다. 다음에 볼 수 있어 라고 생각하지만, 그때 내 시간이 허락할지 상황은 또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출근부에 도장을 찍고 있는 노예 아니던가. 그러다 어느 아카펠라 그룹이 올린 ‘공연 취소 10개째, 코로나 실업자, 미쳐가는 중’ 태그를 보고 숙연한 마음이 되었다. 나도 살맛은 안 나지만 적어도 이번 달 월급은 입금될 예정이다. 넵, 상황이 좋아지면 반드시 당신들 공연 보러 갈게요. 월급에서 조금 떼어 내 킵해놓겠어요. 분노맨 되지 말고 붐붐맨으로 남아줘요.
이제는 마스크 없이 다니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빠르다. 거의 모두 검은색, 흰색의 마스크를 눈 아래까지 덮어쓰고 빠르게 지나간다. 한 달 전 만해도 버스에 가득 찬 마스크 낀 사람들은 세기말적 상황처럼 보였는데 약간 익숙해지는 중이다(익숙해지지는 않았다!). 회사에는 늘 만나는 동료도 있지만 적당히 아는 사람도 잔뜩 있다. 친하지 않고 가까스로 이름과 얼굴을 매칭 할 수 있는 사람이 오면 실수하기 딱 알맞다. 아닌가 맞나를 갸웃거리다 인사할 타이밍을 놓친다. 눈썰미가 나쁘면 몸이 고생이다. 인사성이 -10 되었다.
아버지 제사가 있었다. 제사상 차림이 힘들다고 하지만 20년째 하다 보면 익숙해진다. 시아버지 아니고 친아버지다.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 아니고 20년 넘게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눴던, 기억에 생생한 내 아버지다. 제사 정도야 애교로 해 드릴 수 있다.
장 보고, 전 부치고, 나물 하고, 고기와 생선을 찐다. '딱 한 접시 나올 만큼만'을 외치기는 하지만 곧 그것이 얼마나 ‘미션 임파서블’인지 알게 된다. 기본적으로 '나물 한 접시'라는 것이 세 가지 종류를 올려야 한 접시가 된다. 전은 또 어떤가. 대 여섯 종류를 지져 내야 한 접시에 올릴 수 있다. 결정적으로 먹을 입은 적다. 제사가 끝날 때마다 씀풍씀풍 퍼 담아 근처에 사시는 성당 지인들께 돌리곤 했다. 음식은 막 했을 때가 맛있다. 묵혀 놔야 맛만 떨어진다. 아끼다 똥 된다는 이럴 때 쓴다. 매 해 제사는 그렇게 끝이 나곤 했다.
코로나 19가 대세인 2020년, 끝을 낼 수가 없었다. 음식이 그득그득했지만 누구에게도 가져다 드릴 수가 없었다. 지금은 남의 집 방문이 곧 민폐인 상황이다. 이건 도대체 적응이 안 된다. 몇 번이고 접시를 들었다 놨다 고민하다 플라스틱 통 안에 쓸어 담아 냉장고에 넣어 버렸다. 결국 버리게 된다 해도 올 해는 어쩔 수 없다. 간만에 부침개 넣은 전골 한 냄비 끓이게 생겼어 라고 중얼거리며 쓸쓸히 제사를 마무리 지었다.
손을 씻고, 생각날 때마다 손소독제를 뿌리는 것에는 완벽하게 적응했다. 피곤한가 싶으면 만사를 제쳐 두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은 습관이 되었다. 다이어트를 고민하는 딸에게 지금은 먹고 튼튼해야 해를 외치며 함께 과식하는 나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 면역력만이 나를 살릴 것이라고, 내가 살아야 우리가 사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생각한다. 덕분인지 기침 한번 없이 환절기를 지나는 중이다. 그래, 뭐 내가 이 정도라고. 잘 씻고, 잘 먹고, 잘 자다 보면 언젠가 끝이 보이겠지.
세끼째 남은 나물과 고추장을 넣고 밥을 비비다 마스크 대란 관련 뉴스를 보았다. 내가 마스크 살 수 있는 날은 수요일이래. 넌? 목요일이지 같은 말을 나누다 생각했다. 괜찮잖아? 손 한번 더 씻고, 맛있는 것 한번 더 먹고 아프지 말자. 비비던 손을 멈추고 비빔밥에 참기름과 계란 프라이를 두 개 추가했다.
수요일에도 목요일에도 너와 나의 기회는 기저 질환 있으신 분들께 드리자. 마스크 없어도 돼. 만약 우리가 콜록거려 바이러스를 퍼뜨릴 때를 대비한 마스크 몇 개는 아직 남아 있으니, 이제 기회는 다른 분께 드리도록 하자. 세상에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없으니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이 지나가겠지. 그나저나 비빔밥 괜찮지 않냐? 다음엔 딴 것 좀 먹고 싶다고? 나도 그래. 두런거리며 양푼에 가득한 비빔밥을 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