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질문
세상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두 가지'로 나누기 좋아한다. 여자와 남자, 앞과 뒤, 처음과 끝 등등. 이런 것 중 하나가 인문계 자연계가 아닐까 싶다. 따지고 보면 그 어떤 것도 정확히 양분되어 규정되지는 않는다. 어정쩡한 중간이란 것이 반드시 존재한다. 예를 들어 요즘 세상에 사람을 여자와 남자만으로 나누다니 말도 안 된다. 앞과 뒤도 마찬가지고, 처음과 끝도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인문계와 자연계 역시 딱 나눠지는 개념은 아니다.
그러나 나라는 개인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뼛속까지 인문계’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신이 나를 만들 때 한 스푼쯤 넣으려던(다른 사람들은 열 스푼쯤 넣는다고 가정했을 때) ‘숫자 감각’을 깜빡 잊고 빠뜨린 것이 아닐까 오래전부터 줄곧 의심하고 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다들 자주 사용하는 전화번호 몇 개는 외우고 다녔는데 나는 언제나 수첩을 봐야만 했다. 달랑 숫자 7개였는데 말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던 남자 친구의 전화번호도 헤어지는 그 날까지 제대로 못 외웠다(헤어지고 나서 진상 떨 일은 없어서 좋았으니 그걸로 된 건가). 당연히 남의 생일이나 계좌번호 같은 것을 암기하는 건 꿈도 꾸지 않는다. 덕분에 현재 도어록 번호도 설치기사가 만류할 만큼 간단하게 해 놓았다. 남이 들어오는 것보다 내가 못 들어오는 것이 더 문제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양자역학을 강의하는 김상욱 교수가 “물리학과 학생들은 입학하면 두 번 뇌수술을 받는다. 한 번은 일반 물리를 배우며, 또 한 번은 양자역학을 배우며 그렇게 된다.”라고 했는데, 그런 면에서 보자면 나의 뇌는 말짱한 신품이다. 당연히 전공도 인문계이고, 개수로 보나 무게로 보나 집 안의 가전제품보다 책이 더 많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지 싶어서 의식적으로 과학에 관심을 가져보려고 하지만, 그 방법이란 것이 또 책이다. 어쩔 수가 없다.
말장난을 따라 하거나 논리를 펴는 것에는 제법 흥미를 느끼지만, 컴퓨터를 손보거나 전기 배선을 만지거나 차에 관한 문제에 부딪혔을 때는 답이 없다.
노트북을 산 후 프로그램을 깔지 못해 며칠을 버벅거리는 내게 회사에 앉아 있던 후배가 혀를 쯧쯧 차면서 30분 만에 원격으로 해결해준 일은 애교다. 집 전기 배선에 관해서는 친구에게 통째로 맡겨버렸다. 도무지 일하시는 분들과 대화가 안 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이 친구도 나를 아는지라,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 마음대로 일을 해치워버렸다. 괜찮아, 나는 불만 켜지면 돼. 전등 모양 같은 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고마워, 친구. 그런데 식탁 등이 조금……. 소심하기 이를 데 없는 A형 염소자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작은 중얼거림 뿐이다.
하지만 ‘모른다’로 끝날 수가 없는 것이 인생이다. 어쩌다 보니 숫자로 계산해야 하는 일을 하면서 밥 먹고 사는 중이다(오래됐는데 지금도 가끔 돌겠다). 자동차 엔진오일 정도는 제 때 갈아줄 줄 알게 되었고, 가전제품 사용 설명서를 읽어가며 장착된 기능 중 하나라도 더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이만해도 벅차다.
하지만 세계는 한없이 잔혹한 것이어서, ‘그 정도로 되겠냐?’는 듯 계속 다른 문제를 내민다. 기껏 기본적인 마이크로 오피스 프로그램에 익숙해지고 났더니 회사가 통째로 구글 쪽으로 갈아타버린 것이 얼마 전이다. 새로 문서를 작성할 때마다 회한이 밀려온다. 집에서도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다. 언제나 프린터가 말썽이다. 알 수 없는 이유로 혼자 삐져서 작동을 안 하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쌓인 문서를 콸콸콸 쏟아낸다. 제발 내가 원하는 때에 달라는 문서를 내놓으라고 사정을 해 보지만, 앞으로도 내 말을 잘 들어줄 것 같지는 않다.
그러던 중 코로나 19가 시작되었다. 바이러스의 생성과정을 보여주고 진단장비의 근본 원리를 설명하는 글을 읽으며, ‘그래, 이런 것은 몰라도 괜찮아. 나 말고 훌륭한 누군가가 해결해 줄 거야.’라는 달콤한 생각에 빠졌다. 붉은색의 뾰족뾰족한 바이러스의 모형도를 지나 전통적 백신의 방법과 VLP가 어떻게 다른가 하는 문제까지 이르자 ‘아, 됐고 백신을 만들었다고 하면 그것이 뭐든 다 맞아 주겠어.’하는 무식함과 용감함 사이 어딘가에 우뚝 선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해맑기도 하다.
그러다 얼마 전 텔레그램, N번방, 비트코인, 딥웹, 다크 웹 같은 디지털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목 뒤로 서늘한 것이 지나갔다. 내가 모르는 사이버 공간에서 엄청난 폭력과 말도 안 되는 비열한 짓들이 자행되고 있었다. 마을에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불어서 미지의 세계로 날아가버린 ‘오즈의 마법사’ 속 도로시가 된 기분이었다. 모르는 것은 내 사정이지만, 모른다고 말하고 누군가 해결해주기를 편안하게 기다릴 상황이 아닌 것 같다. 눈 앞에 펼쳐진 것이 지옥도라고 할 지라도 내 발로 걸어서 빠져나와야 하는 것이다. 사자와 허수아비와 양철 나무꾼은 보이지도 않는다. 아, 도대체 이게 뭔가.
늘 하던 방식으로 미래를 ‘두 가지’로 나눠야 한다면, ‘프로그램을 만드는 자’와 ‘겨우 그것을 따라가는 자’로 나뉠 수 있을 것이란 불안한 생각이 든다. 기술은 발전하고, 그것에 따른 윤리와 제도와 법은 너무 느리게 움직인다. 해결책은 물론 저 두 방식의 어중간한 지점쯤 자리를 잡을 것 같다. 아, 정말 인문계라서 요즘 세상 너무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