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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Aug 17. 2020

한 걸음 떨어지면 견딜만하다

-오늘의 조언

어스름에 야구를 시청하고 있었다. 내 핸드폰을 흘끔거리던 그가 물었다.


"어느 팀 응원하세요?"


그리고는 한숨과 함께 랩처럼 이야기를 쏟아냈다. 본인이 응원하는 팀의 성적이 형편없어서  야구를 잘 보지 않는다고 했다(요즘 한국 프로야구사에 한 획을 긋고 있는 두 팀 중 하나였다). 그 마음, 안다. 이억삼천사백오십 퍼센트 이해한다. 프로야구를 개막 때부터 보고 있다. 응원하는 팀의 우승도 연속 우승도, 꼴등도, 그보다 더 험한 꼴도 지켜봤다.


"열 받으면 팀을 바꿔봐. 잘 안 되겠지만."


"그러니까요. 안 돼요. 바꾸려고 해도 안되더라고요."


응, 그 마음도 안다. 나도 해보려다 실패했다. 정이 무섭다.


"성적 안 좋아 마음 상하는 거는 선수랑 관계자가 하라고 해.  그거 열 받는다고 안 보면 나만 야구 못 보는 거잖아. 내 연봉 깎이는 것도 아니니깐 그냥 봐."


야구는 여름에만 한다. 운이 좋아야(내 운 말고 선수들 운) 가을 야구도 할 수 있다. 보통은 긴 팔을 입기 전에 파티는 끝이 난다. 그러니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 한다. 상대방은 그다지 납득한 얼굴이 아니었다.




살면서 거의 목숨을 걸 때가 있다. 육아, 연애, 입시 같은 것들 말이다. 지나고 보면 다 별 것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싸워도 좋다. 별 것 아니긴...... 다 별일들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이, 사랑을 지키는 일이,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되는 일이 특별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집중하게 되고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 애를 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똑같다.


사실 대단한 수학적 계산이 아니더라도, 그 일들이  잘 될 확률보다는 잘못될 확률이 높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내 아이가 엄친아가 될 확률보다는 그냥 평범한 아이가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나도 엄친아가 아닌 마당에)? 연애란 도대체 몇 번 해야 성공하는 것인가? 성공이란 것이 있기는 있나(결혼이 성공이라고 하지 말자)? 입시는....... 말 안 해도 되겠지.


문제는 그 다음이다. 누군가는 실패를 견디고, 어떤 이는 결국 쓰러지거나 좌절한다. 이유가 뭘까.


내 아이를 키우는 것도, 그 사람과의 사랑을 지키는 것도, 원하는 시험합격하는 것에도 공통점이 있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두 타인과 함께 해야 하는 일이다.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남이라고 보면 된다. 사실 배 안에 있을 때부터 남이다. 적아 세포증 같은 것을 보면 그렇다(엄마가 RH-이고, 아가가 RH+ 혈액형일 경우다) RH- 혈액형을 가진 지인은 저 문제 때문에 말 그대로 사경을 헤맸다(엄청난 양의 철분제를 먹어야 해서 임신 기간 내내 어지럼증으로 고개도 들지 못했다).  내가 죽느냐 아이가 죽느냐의 문제이고 보면(그 와중에 둘 다 살려야 한다, 어휴~) 엄청난 상황인 것이다.  아이가 내 안에서 자라고 있으니 나의 한 부분 같다, 이런 소리는 나오지도 않는다.


그리고 태어난다. 뽀로로도 보고 선생님도 만나고 친구도 생긴다. 점점 변한다. 모를 존재가 된다. 그러니 백 퍼센트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럴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부모뿐이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성인인 A와 또 다른 성인인 B가 만나서 알아봐야 얼마나 알 수 있을까. 내 마음을 나도 모르는 순간이 허다한데 말이다. 식성부터 말투, 성격, 하다못해 잠자는 시간까지 다르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나서 함께 다니고, 같은 것을 먹고, 이야기를 나눈다. 매일매일이 싸움으로 끝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다. 여기에 더해 만나는 사람을 체크하고 귀가시간까지 신경 써야 한다. 보통 정성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그래서 내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입시도 상대적인 것이다. 내가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나보다  더 좋은 성적의 학생이 많다면 게임은 끝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상대가 있는 일에 목숨을 걸어서는 곤란하다. 도무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내 몸 정도다. 그것도 제대로 못 해서 늘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우리가 아니던가. 상황이 이러하니 상대가 있는 일에는 이제 한 걸음쯤 뒤로 물러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아이가 잘되기를 원하는 것은 좋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울고 불고 매달리고, 어르고 협박하고 달랜다고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 연애라면, 뭐. 육아보다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해봤을 것이고 마음대로 될 턱이 없다는 것도 경험상 알 것이다. 입시도 내가 열심히 했다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면 됐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겨서 될 일이 따로 있다. 하물며 야구 경기다. 상대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전부 남들이 하는 일이다.


"그래도 올해는 안 볼래요."  그가  뚱한 얼굴로 대꾸했다.


"뭐 안 본다면서 성적은 다 알고 있구먼, 그럴 바에는 그냥 보자고. 내가 하는 경기도 아닌데 너무 힘 빼지 말고"


한참만에 그가 물었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인 것도 같네요. 언제 시간 맞으면 야구장이나 갈까요?"


"이봐. 코로나 때문에 다시 야구장 금지야. 이번엔 언제 풀리려나......"


그렇다. 상대가 있는 일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한걸음 떨어져서 묵묵히 기다려 볼 일이다.


오늘의 조언 : 내 마음도 내 맘대로 안 되는 거, 아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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