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7남매 중 막내였다. 할머니는 자신의 장남, 장손, 장 증손자와 함께 살다 돌아가셨다. 그런 형태를 ‘정상가족’이라고 부르던 시절이었다.
할머니는 심기 불편한 일이 생기면 식사를 거부하고 누우셨다. 티브이 사극에 나오는, 머리에 끈을 묶고(할머니는 머리에 끈 같은 것은 쓰지 않으셨지만) 벽 보고 누워 있는 그 장면이 떠올랐다면? 정답! 며느리는 매번 밥상을 차려와서 머리를 조아렸다. 한복이 몸빼바지로 바뀐 것뿐, 사극에도 일말의 진실은 숨어있다. 식구들은 번갈아 할머니 등에 대고 말을 하다 돌아갔다.
이유는 모른다. 어쩌면 이유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특별한 목적의 연극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은 유추해본다. 권력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으로서 말이다. 당사자들이 즐거워하거나 심각하게 생각한 것 같지도 않다. “에구, 시늉이라도 해야지.”라고 중얼거리며 밥상을 옮기던 큰어머니를 기억한다. 아무도 진심인 사람은 없었다. 하긴 매번 진심이었다면 더 못 견뎠을 것이다.
다음 세대인 어머니는 자식인 내게 불만이 없을까? 그랬다면 좋기는 하겠지만, 사람이 모인 곳에 불화는 늘 함께한다. 사람이란 ‘아’와 ‘어’의 뉘앙스 차이에도 세상 무너지는 상처를 받는다. 붙어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번도 식사를 거부하고 누운 적은 없다. 무엇보다 봐줄 사람이 없다. 할머니에게는 집에 상주하는 며느리가 있었지만, 어머니 딸은 출근시간이 되면 사라진다. 화를 내려고 해도 낼 수가 없다. 퇴근 시간에 맞춰 화를 연출하기에는 자식의 표정이 너무 어둡다. 직장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생기발랄한 사람은 사장 빼고는 거의 없다.
외할머니도 할머니만큼 자주 하지는 않았지만 등 돌리는 장면을 몇 번인가 연출했다. 이래저래 등 돌리는 부모 달래느라 힘들었을 텐데, 막상 그 나이가 되니 본인은 누리지 못해 안타까울 법도 하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고, 같은 패턴을 반복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달라졌다.
농사를 짓던 할머니는 계절이 바뀔 때면 자식들과 할 말이 많았다. 씨를 뿌리고 잡초를 정리하고 수확물을 거둬들이는 일은 절기를 따른다. 경험이 자산인 시대였다. 어머니는 내가 무슨 일로 월급을 받고 있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나 역시 딸이 어떤 미래를 살아갈지 짐작할 수가 없다. 구글과 애플이 사라질 수도 있다. 양자 컴퓨터가 핸드폰 안에 들어갈 수도 있고, 자가로 소유한 차는 몽땅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지금과는 다른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점을 빼고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잠깐 눈을 돌리면 모든 것이 변한다. 꾸준히 노력하지 않으면 대화조차 이어 가기가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이런 형편이니 ‘효도’라는 말을 꺼내기도 어색하다. 심지어 내게는 할머니처럼 쥐고 있는 땅문서도 없다. 나나 딸이나 조건이 같다. 각자 노동력을 팔아 밥을 벌어먹는 수밖에 없다. 애틋한 대화라도 이어가고 싶다면 여기서 또 공통된 주제를 이해할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심히 힘겹다. 이제 네 앞가림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면, 너는 네 앞가림을, 나는 내 앞가림을 잘하자고 말하고 싶다. 네가 힘든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직장 생활 25년 차라니까!). 나도 등 돌리고 눕거나 하지 않을 테니, 너 역시 알아서 잘 살아 주기를 바란다고 손을 꼭 잡고 말해주고 싶다.
부모 자식의 관계도 결국 인간 대 인간일 뿐이다. 만나고 대화하고 감촉을 느껴야 관계가 이어질 수 있다. 노화에 따른 신체적인 문제는 기술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세대 간 정서의 문제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팔순이 다 되신 어머니와는 이따금 동네를 산책한 후 쌀국수를 먹으러 간다. 테이블 대여섯 개가 놓인 작은 가게다. 입구에는 주문용 키오스크가 놓여있다. 어머니는 하나, 둘 중얼거리며 화면 속 쌀국수 주문을 넣는다. 아, 결제는 내 카드를 사용한다. 얻어먹을 때 계산 정도는 하는 것이 도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