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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Feb 10. 2020

상사의 명령은 엄마의 잔소리를 닮았다

-오늘의 위로

일주일의 휴가를 끝내고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사뭇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모든 직원들이 검은 마스크를 한 채 근무 중이었기 때문이다. 정류장에 새로운 버스가 도착할 때마다 창으로 보이는 마스크 낀 승객들을 보면서 세상이 재난 영화 속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비슷한 느낌을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받았던 거다. 자리를 찾아간 내게 전 근무 직원이 마스크를 건넸다. ‘전 직원 마스크 착용 후 근무’라는 지시가 내렸다는 것이다. 


“메일 공지됐는데 못 보셨어요?”


마스크 덕분에 표정을 볼 수 없는 전 근무자가 내게 물었다. 내 직장은 3교대를 한다. 자세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대충 60명 정도가 같은 시간대에 근무한다. 하루에 3명의 직원이 같은 자리에 앉는 시스템임을 고려하고, 거기에 정상 근무하는 직원 숫자를 더하면 하루에 이백 명정도가 쉬지 않고 출근하는 것이다.  


“휴가 중에 왜. 회사 번호와 국번이 같은 전화도 안 받는 판에.”


“그렇게 해도 안 짤리는 방법 좀 공유해주시면 안 될까요?”


전근무자가 낄낄거리면서 메일을 찾아 보여주었다. 과연, 그런 것이 있었다. 3일 전에 나온 따끈한 공지문이었다. 지급된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하라는 명령을 ‘즉시’ 시행하라고 되어 있었다.



“재주가 비상하네. 요즘 시국에 어디서 마스크를 구했대?”


회사 근방을 이 잡듯 뒤져 확보한 물량이라고 했다. 서랍 안에는 비닐에 담긴 마스크가 대여섯 개 들어 있었다. 사무실 입구에 체온계가 비치되고, 전 직원은 마스크를 한 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집에서 뉴스를 보던 때와는 또 다른 심각함이 느껴졌다. 


“몇 개 안 남았구먼. 계속 쓰자면 어디 공장에서 납품이라도 받아와야 할 텐데.”


주섬주섬 마스크를 쓰며 중얼거리자 전 근무자가 말했다. 


“말을 못 하겠어요. 이거 끼고 전화 몇 통 받고 나면 양치질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솟아오른다니까요. 그래서 말씀인데, 저 지금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오면 안 될까요?” 


그럴 만했다. 마스크를 끼고 입으로 숨을 쉬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는 황사가 심한 날 운동하면서 이미 배운 바가 있다. 산책을 시작하면서 꼈던 마스크를 중간에 벗어버렸었다. 


뛰어나가는 직원을 바라보며 ‘과연 이것이 최선이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공기 감염이 된다는 의견과 아니라는 의견이 나뉘는 상태이긴 하지만, 예방을 위한 조치란 나쁠 것이 없다. 게다가 양치질까지 자주하게 된다니, 위생상 더할 나위 없다(좋게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의심이 스물스물 들었던 것이다. 평소라면 하루 200장의 마스크쯤 문제가 아니었겠지만, 지금은 국가가 원활한 마스크 판매를 위해 특별조치를 발표하는 시국이 아니던가. 한 번쯤이야 동네 마스크를 싹쓸이해서 공급했다지만 그 방법이 매번 통할 지는 미지수였다. 



그로부터 삼일 후, 모두의 짐작처럼 마스크는 동이 났다. 흰색 마스크부터 천, KF-94,99 마스크까지 사무실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동갑이지만 나보다 훨씬 출세 중인 중간 관리자에게 지급을 요청하자 ‘떨어졌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디서 또 마스크를 사냐. 집에서 쓰고 온 거 써.”


이따금 본인의 KF-99 마스크를 들고 가쁜 숨을 몰아쉬던 중간 관리자가 대답했다. 


“공문까지 내려 보낸 명령이면 책임을 좀 져. 난 평소에 마스크 안 하고 다닌단 말이야. 게다가 우리는 또 어디서 마스크를 사냐? 동네에서도 품절이야.”


회사 생활 한 두해 하냐? 잠깐 비 몰아칠 때만 피하면 되지. 곧 마스크를 쓰라고 했는지, 안 했는지도 가물가물 하실 거야. 쫌만 버텨. 내 것 두어 개 남았는데 하나 줄까?”


“이럴 거면 차라리 손세정제를 주던가. 공용 컴퓨터 만지면서 번번이 화장실에 가서 손 씻고 올 수도 없고. 위생 대책으로는 그게 낫겠구먼.”


“그분이 마스크라고 하셨다고.”



매일 내려오는 지시사항이 매번 깊은 숙고 후에 한 결정일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한다. 그렇지만 엄마 잔소리도 아닌데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 것은 너무 하지 않은가(내가 누군가의 엄마라서 자신 있게 하는 소리다). 


엄마인 나도 일관성을 지키자고 다짐하지만, 상황에 따라 잔소리가 달라진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며칠째 방 안에서 뭉그적거리는 딸을 보면 ‘친구도 좀 만나고 그래’라고 말하다가, 귀가가 늦은 날이면 ‘맨날 친구들이나 만나고 다니고’라고 하는 식이다. 그런 엄마가 우리 집에만 있을 턱이 있나. 그러나 엄마의 잔소리는 심할 경우 등짝 스매싱 정도로 끝나지만, 상사의 한마디는 그것이 아니지 않은가. 지시를 실행하기 위해 동네 약국을 순회할 직원들도 꽤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입맛이 썼다. 


다음날 오후, 늦은 식사를 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복도에서 상사와 마주쳤다. 근래 발생한 상황을 떠보듯 물어보는 그의 얼굴에 마스크는 없었다. 지적을 당할까 3초쯤 머뭇거렸던 내게도 마스크가 없었음은 물론이다.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다 그는 그의 방으로, 나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엄마 기분이 조금 풀리셨나 보다. 


오늘의 위로 : 소나기는 곧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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