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하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라피티가 그려진 벽이다. 귀로 전해지는 ‘갱스터스 파라다이스(Gangsta’s Paradise)’가 맞춤옷처럼 어울린다. 아마도 가난한 동네의 어두운 골목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는 짐작이 든다.
불이 켜지면 얼굴에 문신을 한 백인 남자가 보인다. 갓 교도소에서 출소한 듯한 남자는 감독관에게 그간 있었던 일을 둘러대는 중이다. 불안하고 거칠고 마약에 찌들어 온 몸을 떨고 있다. 그의 이름은 제이슨. 험악하게 다그치던 감독관이 고개를 돌린 곳에는 역시 갓 출소한 듯한 흑인 남자가 앉아 있다. 실망하고 좌절한 남자는 지난 시간을 후회한다. 그의 이름은 크리스. 이 두 남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과거로 시간을 돌리면, 보이는 곳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올스테드 공장 인근의 BAR다. 유쾌하고 그곳 사람들의 사정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는 바텐더 스탠은 생일을 맞은 제시와 그녀의 오랜 친구 트레이시, 신시아와 함께 파티를 벌이는 중이다.
스탠은 3대째 올스테드 공장에서 일했지만 다리를 다친 후 공장을 나와서 바텐더가 되었다. 제시와 트레이시, 신시아 심지어 트레이시의 아들인 제이슨과 신시아의 아들인 크리스도 올스테드 공장에 다니고 있다. 제이슨과 크리스 역시 그 바의 단골손님이다. 그러니까 그곳의 모든 사람들은 올스테드 공장과 함께 살아왔고, 살고 있으며, 아마도 살아갈 예정이다. 왁자지껄한 생일 파티가 벌어지는 바의 이곳저곳을 콜롬비아에서 온 오스카가 그림자처럼 쓸고 닦는다. 트레이시가 던지는 인종차별적이고 무례한 말이 귀찮은 고지서처럼 날아온다.
그들이 술을 마시는 동안 바에 걸린 여러 대의 티브이 속에 세상 이야기가 지나간다. 금융위기, 다우지수 폭락, NAFTA 같은 것들이다. 징조가 좋지 못하다. 아마도 생일 파티를 하는 세 사람의 바람대로 인생이 흘러갈 것 같지 않다. 하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무슨 일인지 회사에서는 생산 라인에서 관리직을 뽑겠다고 하니 그들 중 누군가는 승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노조는 단단해서 적당한 월급에 퇴직 수당까지 보장된다. 아이들도 올스테드 공장에서 돈을 벌기 시작했으니 노조가 아이들의 노후까지 책임져 줄 것이다. 그들이 신경을 쓸 일이 무엇인가.
그리고 며칠 뒤 독립기념일 연휴. 회사는 생산라인의 기계 일부를 제거해 버린다. 자, 이제 다음 순서는 무엇일까? 브루시의 대사처럼 “기계가 없으면 일자리도 없”는 것이다. “아주 간단한 산수”다.
‘중산층’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지 한참이다. 전에는 꽤 사용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죽은 단어가 되어 가는 느낌이다. 한때는 올스테드 공장의 생산직 노동자도,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무직도 조금 고생하면 자신의 집과 작은 차, 가족의 부양 정도는 할 수 있는 때가 있었다(고 한다). 이제는 꿈같은 일이다. 경제적인 상황이 나빠진 것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그보다 더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함께 생일파티를 하던 친구들이 사라진다. 누군가는 파업을 하는 쪽에 다른 누군가는 그것을 막는 입장이 되다 보면 공동체 따위를 말하는 것은 사치가 된다. 어제까지 일하던 곳에 나보다 저임금으로도 일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좋게 보일 리가 없다. 마음속에 있었지만 그래도 꾹꾹 누르고 있던 차별과 혐오와 편견의 감정들이 떠오른다.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꽂히기를 바라며 입 밖으로 쏟아낸다. 그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말하자면 “인간의 존엄성”이란 것을 찾을 수 없게 된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으르렁거릴 쪽은 나보다 낮은 돈을 받고 일하겠다는 다른 노동자가 아니다. 그들도 먹고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뿐이다. 내가,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것은 자본이라는 “독사’들이다. 이전에 한 번도 마주하지 않았던 그런 것이다. “판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거의 모든 이야기가 BAR에서 이루어진다. 가득한 술병, 따뜻한 조명이 이런 무거운 주제를 조금이나마 가볍게 느끼게 해 준다. 정리해고, 인종차별, 노조와해, 남녀차별 같은 숨이 턱턱 막히는 이야기들을 평이한 말과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쏟아낸다. 상징도 없고 비유도 없다. 그저 보이고 들리는 대로 이해하면 된다. 나 자신이 노동자이기 때문에, 지금의 이 시국이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더더욱 와닿았다는 것은 안 비밀이다.
배우들은 딱 집어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웃고, 춤추고, 싸우고, 좌절하는 세 여배우의 합이 정말 잘 맞는다. 단순하고 평범했던 제이슨이 엉망으로 변해가는 모습에는 엄지 손가락 하나쯤 치켜들고 싶어 진다. 올스테드 공장보다 먼저 정리해고당한 직장에서 일했던 브루시의 대사는 하나하나가 묵직하게 남는다. 오스카의 외침에 마음이 아프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특히 꿈을 꾸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던 크리스의 일은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다.
늘 묽고 맛없는 생맥주 한 종류만 팔고 있는 BAR에 올 때마다 크리스는 웃으며 스탠에게 묻는다.
“생맥주, 뭐 있어요?”
같은 것 하나밖에 없는 걸 뻔히 알면서 왜 맨날 묻냐고 스탠이 핀잔을 주자 크리스가 대답한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 거죠.”
크리스가 앞으로도 희망을 버리지 않길 바란다. 나 역시 조그만 희망이라도 갖고 싶기 때문이다. 내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겠다는 희망, 인간의 존엄성 정도는 지키고 싶다는 희망, 일이 끝난 저녁에는 동료와 맥주를 마시고 생일에는 친구들과 케이크를 나눠 먹는 그런 작은 희망들 말이다. 흡입력을 숫자로 환산한다면 10점 만점에 10점을 주고 싶은 연극이다. 중간에 종종 입을 벌리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15분 인터미션 포함 180분의 짧지 않은 공연인데 시간 가는 것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들이 묵직한 돌직구를 던져 줬으니, 오늘은 노동자인 나의 삶에 대해서도 한 번쯤 돌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