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드

-예스 24 스테이지 2관

by 지안

트로이 전쟁을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드’를 읽고 알았다고 말하면 좀 있어 보일 것 같긴 하다. 하지만 ‘트로이의 목마’로 유명한 그 전쟁에 대해 내가 알게 된 계기는 브레드 피트와 에릭 바나가 주연한 2004년 영화 ‘Troy’를 통해서였다(오래된 영화라고요? 예예, 뭐 그렇죠^^).


브레드 피트는 이 영화에서 ‘아킬레스’ 역으로 나온다(에릭 바나는 ‘헥토르’ 역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킬레스와 브리세이스가 전쟁터 막사 안에서 벌이는 러브신이 훌륭하다는 광고에 낚여 보러 갔었다. 굳이 브리세이스와의 베드신이 아니더라도 바람둥이로 묘사된 아킬레스는 이따금 헐벗은 채 등장하는 ‘나쁜 남자’로 헥토르는 국가와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바른 남자’로 묘사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트로이 전쟁에 참여한 ‘장군들’의 이야기다. 10년 간 이어진 전투에서 죽어간 군사들의 숫자는 셀 수도 없이 많았겠지만 그건 알 바 아니고, 아킬레스나 헥토르, 오디세우스 같은 영웅들의 고뇌와 아픔, 배신과 분노가 그려져 있는 것이다. 사실 원작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도 별로 다르지 않다(예, 그 영화를 보고 한참 지나 원작을 읽었습니다. 하하). 아가멤논 군대의 203번째와 301번째 사병의 아픔과 딜레마를 다뤄서야 전쟁 서사시로서의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연극을 보기 위해 극장에 들어서면 무대 위 이미 자리 잡은 뮤즈가 보인다(제가 본 회차의 뮤즈는 퍼커션을 연주했습니다). 술병, 찌그러진 그릇, 쓰레기 따위가 담긴 작은 수레 옆에 넝마를 쓴 채 뒹굴고 있는 내레이터는 조금 후 시선에 들어온다. 잠시 후 내레이터가 일어나 모포를 개고 어슬렁거리며 관객과 시선을 맞춘다. 이야기를 시작한다.


9년 동안 트로이를 함락시키기 위해 고향을 떠난 그리스 병사들의 어려움을, 그 긴 시간을 지나 이제 돌아갈 곳마저 사라져 버린 고통과 좌절을 들려준다. 그리고 이제 그리스와 트로이의 마지막 결전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전에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어쩌다 그리스 병사들은 트로이와 9년 간이나 전쟁을 하게 되었을까? 그리스의 왕 메넬라오스의 왕비 헬레네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도망을 가버렸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의 왕이 ‘대단히 열이 받았’기 때문이다. 파리스가 나쁜 놈 같긴 하지만 그에게도 할 말이 있다. 사실 아프로디테 여신이 헬레네를 파리스에게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어쩌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약속을 하게 되었을까?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해 ‘살짝 열 받은’ 불화의 여신이 던진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쓰인 사과 때문이었다.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 세 여신은 서로 사과의 주인이 자신이라고 주장하다가 그 평가를 파리스에게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를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지목했고, 감사의 표시로 그에게 주어진 선물이 헬레네였다. 그러니 당연히 파리스는 헬레네와 함께 도망을 칠 수밖에. 그럼 누가 감히 불화의 여신을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았을까? 바다의 여신 ‘테티스’다. 아킬레스의 어머니 말이다.




이렇게 해 놓고 보니 감이 오는가? 전쟁의 원인은 ‘분노’였다. 그리스 왕 메넬라오스의 ‘엄청난 분노’때문인지, 불화의 여신 에리스의 ‘살짝 빡친 분노’ 때문이었는지 딱 잘라 말하기는 그렇지만 하여간 그 ‘분노’로 인해 그리스와 트로이의 힘없는 백성들은 9년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는 상태다.


그리고 이 연극의 시작, 아킬레스는 아가멤논에게 분노한다. 그리스 인이 트로이 군대에게 질 것을 원할 정도의 강력한 분노다. 하지만 친구인 파트로클로스가 죽은 다음에는 분노로 이성을 잃는다. 트로이를 쓸어버리겠다고 다짐한다. 반인반신이지만 인간 따위가 이길 수는 없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테티스는 신이지만 아들인 아킬레스의 편이다. 그리스가 이기는 것을 도와주려 안간힘을 쓴다. 아프로디테는 어땠을까? 자기가 한 말이 있으니 파리스를 도와주지 않았겠는가? 이러다 보니 신들도 그리스 편과 트로이 편으로 나뉘어 응원하고 개입하고 싸운다. 그야말로 막장이다.




하지만 이것들이 한 나라와 다른 나라가 서로 찌르고 찢으며 죽이는 전쟁을 벌일만한 정당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는가? 내레이터가 묻고 있는 것은 그 부분이다. 이 이야기가 ‘일리아드’이므로, 나는 당연히 내레이터가 호메로스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다. 내레이터는 내레이터의 시선을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 과연 이 전쟁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냐고, 한발 더 나아가면 과연 ‘의미 있는 전쟁’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이냐고 묻는다. 죽고 죽이는 병사, 무너지는 아름다운 도시, 도망치고 강간당하고 노예로 끌려가는 시민들이 과연 당연한 결과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싸움의 순간을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묘사하면서 내레이터는 괴로워한다. ‘이래서 내가 관두려고 하는 거야’라고 중얼거리며 독한 술을 벌컥댄다. 낡고 어둡고 나락에 빠진 사람의 모습으로 무대 위에 그가 등장해 있던 이유가 이것이다. 그는 전쟁의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좌절했고 고통을 받았고 상심했다. 그러나 이야기를 멈출 수 없다. 이것은 그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 연극은 2012년 리사 피트슨(Lisa Peterson) 데니스 오헤어(Denis O'Hare)가 쓴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초연이다. 세 명의 내레이터 출연하는데, 1인극에 가까우므로(뮤즈가 한 분씩 계시고, 이 분들의 역할도 크다) 배우의 역량에 따라 큰 차이가 나는 작품이 될 것이다. (다른 배우의 공연은 보지 못했으므로 모르겠으나) 최재웅 배우는 고뇌하는 내레이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쟁의 어이없음에 ‘분노’하는 내레이터로는 최고가 아니었을까 한다.


다만 극장이 열악하다(정말이지 이 극장에서 하는 공연은 두 번 고민하고 간다. 그만큼 힘들다). 작은 규모의 소극장보다 열악하다 싶을 정도의 불편함이다. 통로도 확보되지 않고, 천장도 낮으며, 의자도 불편하다. 계속해서 마이크를 사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간중간만 활용하는 탓에 긴장을 풀기 위해 틈틈이 관객에게 던지는 대사들은 잘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일리아드의 이야기를 전혀 모르고 가는 관객에게는 몰입이 쉽지 않을 것이다. 트로이 전쟁 이야기는 단군 할아버지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서양인들에게 그리스 고전이 갖는 의미와 우리에게 일리아드가 갖는 의미는 당연히 다르다. 그러니 앞 뒤 자르고 전쟁 이야기가 펼쳐지는 스펙터클의 세계로 끌려 들어가기 전에 사전 지식 정도는 알고 가도 좋을 것 같다. 일리아드를 읽고 가셔도 좋겠으나(미리 말하지만 두껍다. 그리고 이 연극에서 일리아드의 내용은 부분 부분만 나온다), 간단히 정리된 요약본 인터넷 정보로도 훌륭하다.


그다음 내레이터의 이야기에 집중해보는 것이다. 당신이나 나나 어차피 엄마가 바다의 여신도 사랑의 여신도 아니다. 반인반신은커녕 왕의 자식도 못 된다. 전쟁이 벌어지면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 전쟁터로 뛰어나갈 확률보다는 창 하나 덜렁 들고 자박자박 흙길로 뛰어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니 이제 ‘영웅’들의 이야기는 말에게나 주고, ‘보통 사람들’, ‘전쟁으로 상처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한 번쯤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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