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4차 유행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수도권에는 오늘부터 2주간 방역수칙 4단계가 적용됩니다. 우리나라 인구 5천2백만 중 절반이 수도권에 산다고 하니, 우리 국민 절반이 방역 수칙 4단계를 실천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아무리 대범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해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근 2년 만에 얼굴을 보기로 했던 지인 모임을 기약 없이 미룬 것이 지난주 금요일입니다. 주말에는 예약했던 공연 취소 알람이 속속 도착했습니다. 나름 좋은 자리 잡느라 고생한 공연들인데 애석하군, 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아니겠죠. 물론 개정된 방역지침을 준수하는 선에서 적당한 자리를 다시 예매할 수도 있겠으나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지난 주말 종로, 대학로 등등 선별 검사소가 새로 들어선 모습을 이미 확인했거든요.
땡볕 아래 설치된 검사소에는 방호복으로 몸을 감싼 의료진들이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요 며칠은 숨쉬기도 힘들 만큼 더운데, 여기 더해 방호복이라니요. 의료진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러니 관객이 줄어 어려운 공연계 사정도 사정이지만, 일단은 코로나 유행이 잠잠해질 때까지 협조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듭니다.
칵테일 중에도 ‘협조’와 ‘협력’을 통해 탄생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모스코 뮬(Moscow Mule)입니다.
뮬(Mule)은 기본 베이스 주류에 진저에일이나 주스를 타서 만드는 칵테일 종류를 통칭하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모스코 뮬(Moscow Mule)’이라는 말은 ‘모스크바식 뮬’ 혹은 ‘러시아식 뮬’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모스코 뮬은 1941년 당시 스미노프 보드카의 소유주였던 ‘존 마틴’과 <콕앤불(Cook‘n Bull)>이라는 펍의 소유주이자 진저에일 재고때문에 고민하던 ‘잭 모건’, 모스크바 구리 회사를 소유한 아버지 덕에 2000개의 구리 머그잔을 들고 미국으로 이민 온 ‘소피 베레진스키’라는 사람들의 합작으로 탄생했다고 합니다.
인기 없는 보드카, 안 팔리는 진저에일, 쓸데없이 많은 구리 잔을 팔기 위해 세 사람이 의기투합한 것입니다. 이들은 구리 잔에 보드카와 진저에일, 라임을 넣은 ‘모스크 뮬’을 만듭니다. <콕앤불>에서 판매함과 동시에 사진을 찍어 펍에 전시하기도 합니다. 물방울이 맺힌 구리 잔 안의 술이라니, 시원함이 느껴졌을 법도 합니다. 입소문을 타고 매상이 늘기 시작했고, 결과는 잭 팟이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지지요.
한때는 이 이야기가 스미노프 사의 ‘주작’이 아니냐는 말이 있었습니다만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스미노프의 홈페이지도 이 이야기는 나오고, ‘소피 할머니가 가져온 <모스크 뮬> 용 구리 잔’를 팔고 있는 사이트도 있습니다. 구리 잔만 30달러 정도 하더군요. 여기서 시키자면 배송비가 더 들긴 하겠습니다만.
스미노프의 역사를 보기 위해서는 러시아 현대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스미노프 홈 페이지에 들어가면 간단하게 러시아 현대사와 얽히고설킨 스미노프의 역사가 적혀 있습니다.
스미노프 보드카는 1860년대 러시아의 ‘표트르 아르세니에비치 스미르노프(Pyotr Arsenievich Smirnov)’라는 사람에 의해 개발되었습니다. 표트르는 여과할 때 숯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경쟁 보드카보다 순수하고 맑은 맛을 구현했다고 합니다. 러시아에서는 민중들뿐 아니라 귀족이나 황제까지도 즐겨 마셨고, 당시에 러시아 황제로부터 수여받은 4개의 문장이 아직도 라벨에 그려져 있습니다. 표트르가 죽은 후 그의 아들 '블라디미르 스미노프'가 사업을 물려받습니다.
1905년 러시아에서는 러일전쟁의 패전을 계기로 정교회 사제의 주도로 개혁을 요구하는 민중 운동이 일어납니다. 노동조합의 설립과 근로 조건의 향상 등을 '아버지 차르'에게 요구하던 민중들의 시위는 군대를 동원한 무력 진압으로 끝이 납니다. ‘피의 일요일’이라고 불리는 사건입니다. 당시 군대는 도망가는 군중까지 기마대로 추격해서 학살했다고 합니다. 적어도 차르를 ‘아버지’라고 생각했던 민중들이 왕실에 대해 가지고 있던 환상이 와장창 박살 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과격한 진압으로 민중들이 평온해진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고 당연히 차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차르는 민중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로 결정합니다. 승리보다 패배 소식이 많은 군대이다 보니 군인들의 사망 또한 엄청났습니다. 민중의 불만은 다시 터져 나왔고, 1917년 시위를 진압하라며 보낸 군대마저 왕실에 등을 돌리고 민중의 편에 서게 됩니다.
1917년 11월(러시아 달력으로는 10월) 마침내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을 거둡니다. 오랜 시간 지속되었던 거대 권력 대신 새로운 권력이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세상의 어느 권력도 곱게 사라지는 법은 없습니다. 황제를 지지하는 귀족 중심의 백군과 볼셰비키를 지지하는 적군 사이의 내전이 시작됩니다.
블라디미르 스미노프는 백군에 가담합니다. 한 때 백군이 우위를 보인 적도 있었지만, 내전은 결국 적군의 승리로 끝납니다. 블라디미르 스미노프는 ‘국가의 적’으로 규정되고, 회사는 국영화가 진행됩니다. 블라디미르 스미노프는 가까스로 러시아를 탈출합니다. 1923년 폴란드에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뒤 1925년 프랑스에서 보드카를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이름이자 회사의 이름이던 Smirnov를 Smirnoff로 바꾼 것이 이 시기입니다.
1933년 뉴욕에 거주하는 러시아 이민자인 루돌프 쿠넷(Rudolph Kunett)이 미국에서 스미노프를 생산할 권리를 구입합니다. 미국은 누가 뭐라 해도 위스키의 나라입니다. 만들어 내놓는다고 잘 팔릴 리가 없습니다. 루돌프 쿠넷은 회사의 소유권을 존 마틴에게 넘깁니다. 그리고 이 존 마틴이 다른 두 사람과의 협업을 통해 보드카를 ‘미국인들의 입맛에도 맞는 술’로 탈바꿈시킨 것입니다. 무려 1975년 기점으로는 미국내 판매량에서 위스키보다 보드카가 앞서게 됩니다.
혼자 잘해서 잘되는 일도 분명 있겠지만, 지금 이 시간 전염병 이야기에서는 통하지 않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모두 함께 힘을 모을 때가 아닌가 싶네요. 물론 1년 6개월이나 이렇게 살고 있는 우리 중 누구도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암요, 암요. 다들 힘들고 지치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번 유행이 마지막이 되기 위해서라도 힘을 한번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모스크 뮬을 한잔 마시며 마음을 추스리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이 칵테일을 마시면서 '협력'이나 '연대'가 떠오른다면, 다 제 덕분입니다! ㅎㅎ 헛소리는 그만하고 만드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1. 구리잔에 만들면 보기는 좋겠지만, 집에 쉬는 구리잔이 하나씩 있을 턱이 없습니다. 나름 비싸거든요. 유리잔도 좋고, 캠핑용 스테인레스 잔도 좋습니다.
2. 라임을 짜주세요. 요즘같이 힘든 여름에는 라임쥬스를 사서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3. 라임을 짠 잔에 얼음을 채웁니다. 더우니까 가득 채우도록 하지요.
4. 보드카를 1소주잔 붓습니다. 꼭 스미노프 보드카일 필요는 없습니다. 집에 있는 보드카라면 뭐든 좋습니다.
5. 진저 에일을 3소주잔 넣고 살살 저어줍니다.
6. 생강향과 라임의 향이 시원한 멋진 칵테일 완성입니다. 그러나 미리 말하지만 저 같은 술꾼에게 이 칵테일은 조금 약합니다. 저는 한 모금 마신 후 보드카 1소주잔 더 넣었습니다. ㅎㅎ
7. ‘불편해도 절거워’라고 외치시며 쭉 들이켜 주세요. (지금 이런 마음이 필요한 것 같아 신서유기 굿즈를 이용해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