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작은 오코노미야끼 가게가 있습니다. 주문받고, 음식 만들고, 서빙하고 결재까지 사장님이 혼자 하시는 1인 가게입니다. 손님이 많아서 언제나 대기 번호를 올려야 먹을 수 있는 곳인데, 순서도 사장님이 직접 받습니다. 정신없을 것 같지만 의외로 조용하고, 모든 과정이 막힘없이 진행됩니다. 가게를 순조롭게 운영하는 비결을 따지지면, 물론 사장님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포스가 대단한 외모도 한몫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유도나 격투기를 하신 것이 아닌가 의심되는 단단한 몸과 짧은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 맨 모습으로 “기다리셔야 합니다” 같은 말을 하시면, 듣는 쪽도 ‘예, 예, 물론이지요.’하는 마음이 됩니다.
가게에서 주문할 수 있는 술은 생맥주와 하이볼입니다. 친절하고 센스 있는 사장님이 미리 내 준 하이볼을 마시며 음식이 조리되는 철판 위를 바라보는 것도 이 가게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뭐라고 할까요, 말 잘 듣는 것처럼 보이는 고등학생 시절로 되돌아 간 느낌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하이볼’을 얌전하게 마시다니, 이건 아무래도 ‘위스키의 저항정신’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대개 오꼬노미야끼가 조리되느라 시간이 걸릴 때 드는 생각입니다.
일단, 가게의 하이볼은 일본산 산토리니 위스키를 사용합니다. 산토리니 위스키의 역사에도 ‘저항 정신’이 넘쳤던 사람이 있습니다. 창업주 다케츠루 마사타카의 부인 리타의 이야기입니다.
산토리니의 창업주인 다케츠루 마사타카는 젊은 시절 위스키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 스코틀랜드로 유학을 떠납니다. 그곳에서 리타와 사랑에 빠집니다. 지금이야 국제결혼이 흔하지만, 당시는 드문 일이었습니다. 온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 결혼이라, 리타가 머나먼 일본으로 떠나는 날까지 가족들은 그녀를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1918년 유학을 떠났던 다케츠루가 일본으로 돌아와 첫 위스키를 출시한 것이 1940년입니다. 짧지 않은 시간입니다. 사과 와인을 만들어 공장의 운영비를 만들어야 할 정도로 쪼들리던 시기였습니다. 20세기 초는 추축국 중 하나였던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을 상대로 싸우던 기간입니다. 리타의 고향 영국은 당연히 연합국 소속입니다. 덕분에 리타는 그 긴 시간 동안 스파이로 의심을 받고 감시를 당하는 어려운 시기를 견뎠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당했던 고통을 돌아본다면, 리타가 겪었을 분투가 짐작이 됩니다. 위스키란 어려움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처음 위스키가 만들어졌던 시기로 돌아가 봐도 이야기는 비슷합니다. 흔히 듣는 ‘스카치위스키’라는 말은 ‘스코틀랜드 위스키’라는 말입니다. 지금 ‘스코틀랜드 위스키’라는 말은 ‘스코틀랜드 증류소에서 물과 발아한 보리로 만들며, 증류한 원액은 오크통에 담아 스코틀랜드 안에서 3년 이상 숙성하고, 도수는 40도’인 술을 말합니다. 까다롭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스카치위스키가 이랬던 것은 아닙니다.
18세기 연이은 전쟁으로 가난해진 영국 정부는 보리를 발효한 ‘맥아’에 엄청난 세금을 부과합니다. 우리가 ‘식혜’를 만들 때 사용하는 ‘엿기름’이 ‘맥아’인데, 맥주를 만들 때나 위스키를 만들 때도 없어서는 안 될 재료입니다.
세금을 감당할 수 없었던 스코틀랜드의 증류업자들은 산으로 도망칩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우리에겐 자연인이 있죠^^), 동양이나 서양이나 문제가 생기면 일단 가는 곳이 ‘산’입니다. 증류업자들은 그곳에서 밀주를 만들어 버려진 셰리통에 숨겨 놓습니다(셰리주는 스페인에서 만들어진 와인에 브랜디를 섞어 만든 강화 와인입니다). 예전의 술이란 자연의 절기에 따라 만드는 것이라, 추수가 끝난 뒤 만들어 해를 거듭해 숙성해야 하기 때문에 한 해도 쉴 수가 없었던 겁니다. 통 속에서 숙성되는 동안 증류된 원액은 셰리주의 향기와 오크 통의 색이 더해져 호박색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증류업자들은 몰래 이 술을 유통시킵니다. 이 몰트 위스키가 엄청난 인기를 얻자, 영국 정부는 맥아세를 더 무겁게 올립니다. 스코틀랜드인들은 이번에는 맥아 대신 귀리, 호밀, 옥수수 같은 재료를 주로 한 위스키를 만듭니다(‘그레인위스키’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몰트 위스키와 섞어 ‘블랜디드 위스키’를 만들어 냅니다. 지금 우리가 흔히 마시는 ‘블랜디드 위스키’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이것이 1820년대, 증류업자들이 감당할 만큼 세금이 낮아진 후 스코틀랜드 정부 공인 1호 위스키인 ‘글렌리벳’이 나올 때까지의 위스키의 역사입니다. 그야말로 ‘반항과 저항’의 산물입니다. 물론 문제도 있었습니다. 저질의 그레인위스키를 섞은 블랜디드 위스키가 유통되는 바람에 점점 ‘아일랜드 위스키’에 명성을 내주게 됩니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이라고 할까요.
미국 위스키의 역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위스키 반란’이라고 알려진 사건입니다. 영국과의 독립전쟁으로 빚에 쪼들리게 된 미국 연방정부가 ‘위스키 세금’이라는 것을 만듭니다. 세입 확대를 위한 것이지만, 말로는 ‘미국 농민들의 과도한 음주를 막는다’는 명목을 세웠습니다. 세금에 반대하는 위스키 생산자들의 행동은 점점 거칠어졌습니다. 연방정부는 민병대를 조직해 진압하기 시작했고, 결국 주류업자들은 연방정부의 통제 밖에 있던 켄터키로 가 위스키를 생산하게 됩니다. 이들이 자리 잡은 켄터키주 ‘버번’의 이름을 따서 지금도 미국의 위스키를 ‘버번위스키’로 부릅니다. 물론 세금은 이후에 폐지되었습니다.
그러니 얌전히 카운터에 앉아서 위스키가 든 하이볼을 홀짝이는 것은 좀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 역시 박차고 일어나 ‘저항 정신’을 외치며 떠들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하지만 일단 사장님의 얼굴을 한 번 보고, 때마침 나온 오코노미야끼를 한 입 베어 물면 모든 생각이 싹 사라집니다. 다음에도 친절한 사장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겠다고 다짐하며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 겁니다.
여름으로 향하는 지금이 그 집에 가기 딱 좋은 계절입니다. 하이볼을 한잔 마시고 후끈해진 몸으로 걸어오면 저녁 바람도 쌀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간단한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술이라 집에서 만들어 마시기도 좋습니다. 가까운 친구들끼리 모여 위스키 한 병을 개봉하면, 하이볼 십여 잔은 금방 만들 수 있습니다.
자, 만들어 보겠습니다. 오늘 저는 버번위스키를 사용했습니다.
1. 잔에 얼음을 꽉 채워주세요. 하이볼은 시원한 것이 생명입니다(아, 물론 제 생각입니다. 아닌 분도 있을 수 있겠지요). 저는 냉동실에서 꺼낸 맥주잔을 이용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