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키리

- 타인에 대한 배려

by 지안

다이키리는 쿠바의 광산 이름입니다. 스페인-미국 전쟁 시기, 다이키리 광산에서 일하던 미국인 제닝스 콕스에게 어느 날 손님이 찾아옵니다. 접대용 진은 떨어졌고, 날은 덥고.... 머리를 굴리던 제닝스 씨는 남아있는 럼에 얼음과 라임, 설탕을 섞어 내놓았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고 합니다. 당시의 럼은 품질이 좋지 않았습니다. 제닝스 씨는 쌉싸름한 라임과 달콤한 설탕을 넣어 질 낮은 럼의 맛을 살짝 가린 것 입니다.




쿠바, 그리고 다이키리라고 하면 빠질 수 없는 작가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입니다. 그가 생전에 얼마나 다이키리를 즐겼는지 제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 지금도 바 '엘 플로리디타'의 구석에 흡족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것은 본 적이 있습니다. 이 가게의 시그니처 메뉴는 얼음을 빙수처럼 갈아 넣고 만든 프로즌 다이키리입니다. 죽은 후에도 동상으로 남아 좋아하던 프로즌 다이키리를 바라보는 사람은 행복한 인생을 산 것일까요? 모르겠습니다. 함께 인증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표정은 행복해 보였습니다만.




다이키리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작품도 있습니다. 애거사 크리스티가 쓴 [깨어진 거울]입니다. 애거서 크리스티라면 에르퀼 푸아로나 제인 마플이 등장하는 탐정소설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당연히 [깨어진 거울]도 추리 소설입니다. (이후로 [깨어진 거울]의 스포일러가 잔뜩 나옵니다. 혹시 마음에 안 드시는 분은 이번 편은 건너뛰셔도 좋습니다!)




영국의 조용한 교외 마을에 여배우 '마리나 그레그'가 이사를 옵니다. 인기 절정인 시기는 아니지만, 나이를 먹은 지금도 여전히 아름다운 배우입니다. 네 번 이혼했고, 다섯 번째 남편과 살고 있는 그녀는 어렵게 가진 아이가 지적 장애를 가진 채 태어나 죽어버린 아픔이 있습니다. 사실 마리나는 아직도 그 아픔을 극복하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마리나 부부는 근사한 빅토리아풍 대저택을 사들여 대대적인 수리를 한 후 동네 사람들을 불러 파티를 엽니다. 그 파티에서 마을 주민인 '베드콕 부인'이 살해당합니다. 이때 사용된 살인 도구가 바로 ' 다이키리'입니다. 라임의 쌉싸름한 맛이 독약의 쓴 맛을 감추기에 알맞았겠지요.


이제 우리의 탐정 '미스 마플'이 등장할 차례입니다. 사건 현장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떠드는 이야기를 종합해 범인을 추리하기 시작합니다. 마리나 그레그의 숨겨진 과거와 영화에 관한 이야기, 변화하는 동네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동네 주민들이 살해당한 '베드콕 부인'에 대해 하는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그녀는 사람들이 어떤지를 알 생각조차 안 했지. 한 번도 남들 생각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녀는 상대방에게 자기가 뭘 했고, 뭘 봤고, 뭘 느꼈고, 또 뭘 들었는지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타입의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들의 삶은 일방 통행적이라 볼 수 있지요. 그들 눈에 비친 타인들은 그저 방에 붙어 있는 벽지나 마찬가지예요."


"그녀가 사람을 좀 피곤하게 만드는 타입의 여자라는 걸 알게 됐죠. 매사에 적극적이고 말이 좀 많은 데다 감정 표현이 좀 지나친 데가 있는 사람이었어요..... 옛날로 따지자면, 만일 그런 사람이 대문에 모습을 비추는 걸 보면 얼른 하녀에게로 가서 이렇게 시키곤 했답니다. '집에 없다고 그래'.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도 말이에요."




그러니까 '베드콕 부인'은 자신의 집 앞에서 다친 사람에게 차를 내주고, 동네 일이라면 앞장서는 열성적인 주민이었지만 자신의 생각만 중요했을 뿐 타인의 감정은 안중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주장만 늘어놓는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은 전혀 즐겁지 않습니다. 못되거나 나쁜 사람은 아니니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옆 사람들은 슬슬 이런 사람을 피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혹시 내가 너무한 것 아닌가'하는 양심의 가책도 덤으로 받게 됩니다. 이런 분들, 주위에 꽤 있지 않습니까?


그룹 과제를 하면서 자기가 다 알아서 하겠다고 큰 소리를 치지만 정작 '이걸 어쩌나'싶은 결과물을 가져온다거나, 위로해 주겠다고 해서 나가보면 쓸데없이 자기 이야기만 쉬지 않고 늘어놓는 친구도 있지요. 회사일에 온갖 참견을 다 하면서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는다거나, 나설 때 안 나설 때 구별 못 해서 다 같이 분위기 썰렁해지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베드콕 부인은 젊은 시절 마리나 그레그의 엄청난 팬이었습니다. 풍진을 앓고 있는 중에도 마리나를 보고 싶은 마음에 사인을 받으러 뛰어갑니다. 풍진에 걸린 어른이라면 열이 나는 정도로 가볍게 앓고 지나가지만, 태아의 경우는 정신 지체나 심각한 장애를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사인회가 있던 시기는 마리나가 막 임신을 했던 때였습니다. 마리나의 아이가 잘못된 이유는 베드콕 부인에게 옮은 풍진 때문이었습니다. 파티장에서 베드콕 부인은 그때의 일을 자랑스럽게 고백합니다. 내가 당신을 이만큼 사랑했다, 는 표시로 말이지요. 그 이야기를 듣는 마리나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이 작품이 더 소름 돋는 이유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배우인 '진 티어니(Gene Tierney)가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마리나 그레그와 똑같은 이유로 상심에 빠진 진 티어니에게 어느 날 여성팬이 나타나 말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풍진에 걸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의사의 명령을 무시하고 검역소를 빠져나와 당신을 보러 갔다고 말이지요. 진 티어니는 그녀와의 첫 만남은 기억나지 않지만 두 번째 만남은 절대 잊을 수 없다고 했다는군요. 왜 아니겠습니까. 물론 진 티어니는 그녀를 죽이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혼자 사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어렵습니다. 당연히 조금만 몸을 돌리면 타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권리도,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권리도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를 구성해서 사는 이상, 타인의 입장도 반드시 고려의 대상에 넣어야 합니다. 전염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기쁨을 위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전염병으로 인해 삶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2년을 지내며 더욱더 고민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시원한 다이키리를 마시며 이런 주제를 심사숙고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홈 칵테일을 하신다면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독살의 위험도 제거할 수 있습니다. 농담입니다.


그럼 만들어 보겠습니다.


1. 플라스틱 통에 얼음을 준비해 주세요.


2. 럼을 1 소주잔, 라임 주스를 2 숟가락, 설탕을 1 찻숟가락 넣어주세요.

쿠바에서는 막 착즙한 사탕수수 원액을 넣고 다이키리를 만듭니다. 시럽이 있는 분은 사용하세요.


3. 설탕이 녹을 때까지 잘 흔들어 준 후 잔에 따라냅니다.


4. 전염병에 대해 고민하며 다이키리를 즐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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