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티독 (SaltyDog)

-열심히 일하는 우리는 솔틱 독

by 지안

Salty Dog은 ‘갑판에서 일하는 승무원’을 일컫는 영국 선원들의 은어라고 합니다. 배의 승조원이라면 선장, 항해사, 기관사 등이 먼저 떠오르지만 이들에게는 자신만의 일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마법사가 아닌 이상 갑판에 앉아 손짓만으로 배의 방향을 바꾸고, 배의 기관들을 수리할 수는 없으니까요.


‘갑판에서 일하는 승무원’이란 특별한 기술 없이, 바닥을 닦고, 짐을 옮기는 허드렛일을 하는 선원을 말합니다. 갑판 위에서 파도를 맞으며 땀을 흘리다 보면 온몸이 소금으로 얇고 하얗게 덮이게 되겠죠. 여기서 유래한 표현이 ‘Salty’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솔티 독(Salty Dog)이란 ‘갑판에서 개처럼 열심히 일하는, 특별한 기술 없는 선원’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작은 고깃배에도 갑판이 있겠지만, 특별한 기술이 없는 선원이 일하는 장면을 상상하다 보면 거대한 함선이 떠오릅니다. 나무로 된 커다란 함선이 파도를 헤치고 나아갑니다. 육지를 떠난 지는 한참 됐고, 어느덧 식수도 부족합니다. 돛대 위에는 망원경을 든 선원이 육지를 찾습니다. 하지만 원하는 것 대신 어둠처럼 두꺼운 구름이 몰려옵니다. 출렁이는 배의 갑판에서 젊은 선원이 온몸으로 파도를 맞으며 폭풍을 이겨 내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긴 폭풍이 지나가고 마침내 해가 뜹니다.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아뿔싸, 눈앞에 해골 깃발을 단 해적이 나타납니다. 네,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너무 많이 봤나 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솔티독이 됐던 것일까요? 귀족이나 왕가의 사람 일리는 없습니다. 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젊은이들이 허드렛일부터 차근차근 배워 항해사가 되거나 선장이 되었을 겁니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 바다를 평정했던 ‘해적왕 드레이크’처럼 말입니다.




프랜시스 드레이크(Francis Drake)는 16세기 후반 활약한 영국의 탐험가이자 해적이며 군인이었습니다. 해적과 군인이라, 어쩐지 함께 수행하기 힘든 직업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드레이크가 활약할 시기의 영국은 유럽 변방의 작은 나라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세계를 호령하던 인물은 스페인의 ‘펠리페 2세’였습니다. ‘블러디 메리’로 알려진 메리 여왕의 남편 펠리페 2세가 떠오르셨다면, 맞습니다.


메리 여왕이 죽은 후 여동생 엘리자베스가 왕이 됩니다. 그녀가 44년간의 통치를 끝내고 눈을 감을 때쯤 우리가 알고 있는 영국의 모습이 됩니다. 흔히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표현합니다. 지구 곳곳에 식민지를 두고 있어, 영국 본토에 어둠이 찾아와도 어느 식민지의 하늘에는 해가 떠있다는 뜻입니다. 당시 영국은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개척했습니다. 타국의 침략을 받았던 역사를 가진 나라의 국민으로서 입맛이 쓴 대목입니다만 어쩔 수 없지요. 그리고 그 강력한 해군력에 일조를 했던 인물이 드레이크입니다.




역사책을 넘기다 보면 ‘현재의 기준’으로 재단하기 힘든 역사를 만나게 됩니다. 이 프랜시스 드레이크의 삶도 그랬습니다.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1543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영국 데본에 살던 농부의 12명의 자식 중 하나였으니 정확한 기록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10살 무렵부터는 이미 뱃사람으로 살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20대 초반 자신의 배를 소유하게 되고, 사촌인 존 호킨스의 선단에 참여해 노예무역에 종사하게 됩니다. 아프리카의 노예를 싣고 스페인령 서인도 제도로 건너가 황금과 교환하는 사업이었습니다. 당시 노예무역은 합법이었습니다. 단지 스폐인령 식민지에서 황금을 가지고 나오는 행위가 불법이었죠.


이들은 주식회사를 만들어 귀족뿐 아니라 엘리자베스 여왕의 돈까지 투자를 받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자신이 소유한 선박까지 드레이크에게 넘겨줄 정도로 큰 투자를 합니다. 드레이크는 타고난 해적이었습니다. 노예무역뿐 아니라 지나가는 상선을 약탈하거나 식민지를 침략해 재물을 탈취하기도 했습니다. 스페인의 상선과 식민지들이 많은 피해를 봤습니다만, 이들에게 빼앗은 재물로 드레이크는 자신에게 투자한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배당금을 지급합니다.


용케 스페인의 감시망을 피해 사업을 하던 호킨스와 드레이크는 1568년 스페인 함대의 공격을 받아 상단의 대부분을 잃습니다. 이후로 두 사람은 스페인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웁니다.




호킨스는 당시 주종을 이루고 있던 ‘갈레온 선’을 개량해 빠르고 날렵하고 더 많은 무기를 실을 수 있는 ‘레이스 빌트 갈레온 선’을 만듭니다. 여왕은 드레이크와 호킨스의 선단을 ‘사략선(privateer ship)’으로 임명합니다. 사략 증명서를 가진 개인은 자신의 배를 무장해 적성국가의 배를 공격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시선으로 보면 좀 이상한 제도입니다만 근세 초기 유럽 국가들이 흔히 쓰던 방식이었습니다. 국방비를 지출하지 않고 국방력을 키울 수 있는 꼼수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이 사략 제도는 무려 20세기 초까지 지속됩니다.


당시 스페인과 영국은 여러 가지 이유로 사이가 좋지 못했습니다. 메리 여왕이 죽은 후 펠리페 2세는 동생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합니다. 영국 땅을 그냥 먹겠다는 속셈이었는데, 당연히 엘리자베스는 거절합니다. 언니 메리와는 다르게 엘리자베스는 신교도였습니다. 그렇다고 가톨릭교도들을 탄압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이 모든 것이 펠리페 2세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여기에 드레이크의 해적질이 더해집니다. 스페인은 드레이크를 처벌하라고 요구하지만, 영국 왕은 오히려 드레이크에게 기사 작위를 내립니다. 스페인 대사가 지켜보는 앞에서요. 펠리페 2세는 전쟁을 결심합니다.




스페인이 영국을 공격할 것이라는 소문이 상인들의 입을 통해 전해집니다. 1587년 드레이크는 스페인의 보금품이 쌓인 카디즈를 선제공격합니다. 항구에 정박 중이던 스페인의 갤리선들은 드레이크의 약탈과 방화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는데, 특히 함대에 싣게 될 식량 저장용 통이 모두 불타버립니다. 1년 뒤 벌어지는 전쟁에서 스페인은 ‘채 마르지 않은 통에 저장된 식품과 물’ 때문에 식중독과 전염병으로 고생하게 됩니다. 배를 많이 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약점을 교묘하게 공격한 것입니다.


1588년 마침내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거대한 위용을 갖추고 영국의 해안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당시 스페인의 함대에는 해군보다 보병의 숫자가 많았습니다. 적의 배에 갈고리를 걸어 고정한 후 보병을 보내 적을 죽이는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국의 작고 민첩한 배들은 스페인의 배들이 고리를 걸 만한 위치까지 다가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적당한 거리에서 화력이 센 함포를 퍼부어 스페인의 함대를 격침시킵니다. 함선의 숫자는 스페인에 비견할 수 없이 초라했지만 함포만은 스페인보다 월등한 기술을 가지고 있던 영국이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전술이었습니다.


당시 대포를 개량하던 기술자들은 루터파를 비롯한 신교도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종교 박해를 이유로 그들은 스페인으로 가지 않았고, 자유로운 영국에서 마음껏 기술을 개량합니다.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려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지혜가 빛을 발하는 순간입니다.


영국의 레이스 빌트 갈레온 선과 함포로 큰 타격을 입고 퇴각하던 스페인 군 앞에 거대한 폭풍이 몰려옵니다. 이 폭풍으로 백여 척의 전함이 침몰하고 만 사천 여명의 병사가 사망합니다. 영국군의 항전보다 폭풍으로 인해 더 큰 피해를 본 것입니다. 스페인은 이 전투 이후 다시는 이전의 명성을 되찾지 못합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드레이크를 ‘엘 드라코’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용이라는 뜻입니다. 드레이크는 위험하고 무섭고 위협적인 인물이었으며 위대한 뱃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도 시작은 어린 ‘솔티독’이었습니다. 열 살 정도의 작은 꼬마가 갑판 위에서 일하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처음 배운 일이라 어설픈 손놀림 때문에 선장에게 혼도 많이 났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합니다. 드레이크가 처음 소유한 배는 선장에게 물려받은 것이었습니다. 드레이크의 성실함을 선장이 인정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바닷물을 뒤집어쓰지는 않지만 학교에서, 회사에서, 작업실에서 노력하는 모든 분들을 솔티독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별 볼일 없고 허접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러니까요. 하지만 이런 시간을 견뎌야 결국 ‘엘 드라코’처럼 빛나는 시기가 오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의미로 오늘은 솔티독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솔티독은 보통 보드카를 베이스로 합니다만 아무래도 영국 이야기를 하고 난 다음이니 진을 이용하겠습니다.


1. 먼저 ‘솔티독’이란 이름에 걸맞게 소금이 필요합니다. 잔 위에 물이나 레몬즙을 적신 후 소금을 뿌려 주세요. 저는 접시에 소금을 깔고 잔을 뒤집는 방식으로 했습니다.


2. 잔에 얼음을 채워 주시고 진을 1 소주잔 부어주세요


3. 자몽 주스를 2 소주잔 넣은 후 흔들어 주세요. 솔티독이 완성되었습니다.


4. 상큼하고 짭조름한 솔티독을 즐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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