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부자들]에서 안상구 역으로 나온 이병헌이 한 “모히또에 가서 몰디브나 한 잔”하자는 대사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극 중 무거운 상황을 코믹하게 보이고싶어 이병헌이 친 애드립이었다는데, 덩달아 ‘모히또’에 대한 관심도 상당히 뜨거웠습니다. 모히또는 럼을 베이스로 한 칵테일입니다. 럼과 민트, 라임과 설탕만 있으면 만들 수 있습니다.
몰디브 공화국은 우리나라에서도 신혼부부들의 선호도가 높던 휴양지였습니다. 아쉽게도 코로나 때문에 ‘과거형’이 되어버렸습니다. 몰디브는 인도양, 그중에서도 스리랑카 아래쪽에 있는, 천여 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진 이슬람 국가입니다. 당연히 럼의 생산지도 아닙니다. 아마 이슬람 국가이니 외국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숙소가 아니라면 주류 구입도 쉽지 않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내부자들’의 안상구가 하기에 그래서 더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럼은 17세기 초 영국이나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카리브해의 섬들에서 만들어진 술입니다. 섬에 옮겨 심은 사탕수수와 원주민 대신 실어온 노예들을 동원해 대규모 농장이 개발되면서 럼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지금도 럼의 양대 산맥을 꼽으라면 ‘하바나 클럽’과 ‘바카디’를 꼽습니다. 둘 다 카리브해의 대표 섬나라인 ‘쿠바’ 태생입니다.
‘하바나 클럽’은 쿠바 국영기업입니다. 하바나에 가면 박물관도 있어 럼을 만드는 대강의 과정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물론 ‘마음만은 자본주의 쿠바’ 답게 입장료도 필요하고 팁도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바나 클럽’은 1934년부터 가족기업 Jose Arechabala 가문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쿠바 혁명 정부가 들어선 후 무상 몰수됩니다. 쿠바 내에만 공장이나 사업장이 있었기 때문에 경영진은 간신히 몸만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쿠바 정부는 부족한 노하우를 프랑스 주류회사와의 합작을 통해 해결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리 깔끔한 결론은 아닙니다.
‘바카디’도 쿠바 태생의 가족기업이긴 합니다만 ‘하바나 클럽’보다 좀 더 드라마틱한 길을 걷고 있습니다.
바카디의 역사는 1862년 스페인 와인상이던 Don Facundo Bacardí Massó가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작은 양조장을 개조해 오픈하면서 시작합니다. 이들은 활성탄을 이용해 불순물을 제거하고 수입한 화이트 오크통에서 숙성하는 과정을 거치며 명성을 얻습니다.
바카디의 아내는 양조장 서까래에 과일박쥐 무리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박쥐’를 ‘바카디 럼의 상징으로 사용하기로 합니다(지금도 병에 박쥐 그림이 있습니다). 당시 쿠바인에게 박쥐는 건강이나 가족 화합, 행운의 상징이었다는데, 코로나 시국의 박쥐가 받는 의심과 대접을 생각하면 너무 큰 차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바카디의 야들은 양조장 옆에 코코넛 야자수를 하나 심습니다. 이 나무 역시 바카디의 상징으로 병에 그려져 있습니다(이름은 El coco입니다). 몇 번의 증류소 화재와 지진, 허리케인 속에서도 별 탈없이 자라는 나무는 어느덧 ‘예언’의 주인공이 됩니다. “코코넛 야자수가 살아있는 한 바카디 회사는 쿠바에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1910년 미국과 스페인에서 판매량이 늘어난 바카디는 뉴욕에 판매 거점을 마련합니다. 쿠바 군사 독재 시절 외국인을 위한 바에서 정신없이 팔려 나간 술도 바로 ‘바카디’였습니다. 이후 바하마와 푸에르토리코 등으로 점차 시설을 늘려갑니다.
쿠바 혁명이 시작되고, 바카디는 혁명군을 지지하고 지원합니다. 그러나 막상 혁명이 성공하여 카스트로가 집권한 후, 해외에 생산시설과 공장을 두었다는 이유로 쿠바 내 모든 바카디 운영 및 자산이 불법으로 규정됩니다. 그리고 1960년, 심은지 98년이 지난 야자수 El coco가 시들어 죽습니다. 같은 해 10월 14일 바카디는 쿠바 내 재산을 혁명군에게 몰수당합니다. 예언이 실현되었다고나 할까요(믿거나 말거나 말입니다! ㅎㅎ).
바카디 가문은 쿠바를 탈출하여 바하마를 근거지로 사업을 이어갑니다. 바하마뿐 아니라 미국, 멕시코, 푸에르토리코 스페인에도 공장이 있으며, 다루는 술의 종류도 ‘럼’ 뿐 아니라 Gray Goose 보드카나 Bombay 진, 위스키와 테킬라, 와인까지 다양합니다.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겁니다.
쿠바 정부에 감정이 좋을 리 없던 바카디는 역시 비슷한 입장인 하바나 클럽의 소유주였던 Arechabala가문에게서 ‘하바나 클럽’이라는 상표권을 구입합니다. 그런 다음 1994년 미국에 ‘하바나 클럽’이라는 상표를 달고 럼을 유통시킵니다. 하바나 클럽과 바카디의 상표권 분쟁입니다.
당연히 쿠바 정부는 발끈했습니다. 그러나 쿠바 정부와 사이가 좋지 않던 미국은 바카디의 손을 들어줍니다. 1998년 미 연방 의회는 외국 정부가 강제 수용한 회사의 상표권에 대해 적어도 미국 내에서는 인정해주겠다는 법을 발표해 버립니다. 즉 미국에서는 바카디 회사가 만든 ‘하바나 클럽’이, 다른 나라에서는 쿠바 정부가 만든 ‘하바나 클럽’이 팔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 법은 하바나 클럽 상표에 대해서만 적용된 뒤 바로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일명 ‘바카디 법’으로 불립니다. 바카디 가문의 소심한 복수였다고 할까요. 우리나라에서도 ‘하바나 클럽’을 구할 수 있습니다만 쿠바산입니다. ㅎㅎ
코로나로 힘들어지지만 않았다면 여행지로서의 몰디브의 명성은 아직도 유효할 겁니다. 직항 편이 운항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언제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자국 내 재산을 몰수당했던 바카디 가문의 미래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주저앉아 있을 것인가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설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각자의 몫인 것 같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자, 오늘은 모히또를 만들겠습니다. 바카디 가문 이야기를 한참 했으니 베이스로 사용할 술은 바카디 럼입니다. 물론 다른 럼을 가진 분들은 그것을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1. 일단 민트 준비해주세요. 백종원 선생님은 깻잎을 넣고 모히또를 만드셨다는데……. 전 그 의견에는 반대입니다.ㅎ 박하향과 깻잎향은 다르잖아요. 일단 컵에 민트 입을 대강 잘라 넣어 주세요.
2. 라임 반쪽이 필요합니다. 껍질 세척을 잘하신 후 깍두기 크기로 썰어 넣어 주세요.
3. 설탕을 2 티스푼 넣어주세요.
4. 숟가락이나 포크를 사용해서 민트와 라임을 으깨줍니다. 사정없이. 설탕이 녹을 만큼 휘저으며 으깨주세요.
5. 얼음을 채우고 럼을 1 소주잔 부은 후 잘 섞어 줍니다. 이대로 마셔도 맛있습니다만 너무 진하다고 생각되시는 분은 소다수를 적당량 넣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