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포네 트릴로지]는 영국 작가 '제이미 월크스'의 작품으로 2014년 에든버러에서 초연되었다고 한다. 국내에는 2015, 2016, 2018년, 그리고 2021년인 지금 무대에 올려졌다. 1시간 분량의 연극 세편이 인터 미션 20분을 사이에 두고 배치되어 있다. 즉 세 편을 다 보려면 3시간 40분 정도를 투자해야 하는, 꽤 강도 높은 관람이다.
에든버러에서의 호평은 접어두더라도, 국내에서 4번씩이나 무대에 올라간다는 것은 그간 좋은 평가를 받았거나 재관람을 기다리는 팬층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어쩌다 보니 이전 무대는 보지 못했고, 명성은 익히 듣고 있었기에 3부작 공연을 다 관람할 수 있는 날을 선택했다.
[카포네 트릴로지]의 '카포네'는 짐작대로 '알 카포네'를 일컫는다.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뉴욕에서 태어난 알 카포네는 시카고를 중심으로 활약한 폭력조직의 두목이다. 1920년 시작된 미국 금주법 시대에 '밤의 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돈과 권력을 누리다 1932년 앨커트래즈 섬에 갇히게 된다. 1939년 석방이 되지만 나름 조용히 지내다 1947년에 사망한다. 간단하게나마 이력을 적어보는 이유는 이 연극이 알 카포네가 활약하던 1923년, 그가 앨커트래즈에 갇혀있던 1934년, 석방 이후 조용히 지내던 1943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몰라도 연극을 보는 것에는 지장이 없다. 배우들은 입버릇처럼 알 카포네를, 시카고를, 무법이 난무하는 도시를 이야기한다. 알 카포네는 거의 제4의 배우처럼 느껴진다.
막이 오르면 붉은색 프레임으로 원근감 있게 배치된 무대가 눈길을 끈다. 프레임 바깥쪽으로도 공간을 살려
무대로 활용한다. 재치 있다. 그런데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은 딱 여기까지다.
이어서 그곳이 렉싱턴 호텔 661호실이라는 것을 알리는 멘트가 울려 퍼진다. 등장하는 배우는 셋이다. 첫 편에서 롤라를 연기한 배우가 그다음 편에서 말린을 연기하는 식이다. 닉을 연기하는 배우는 데이빗으로도 바비로도, 아버지로도 나타난다. 배우들이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눈에 보이니 알 수 있다.
1923년을 배경으로 하는 첫 편에서 주인공 롤라는 "이 도시에 탈출구는 없다"고 노래한다. '노래한다'는 상투적 문구가 아니다. 정말 뮤지컬의 주인공처럼 노래를 부른다. 다른 뮤지컬적 속성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뜬금없이 노래를 부른다. 물론 배우의 노래는 훌륭하다. 노래가 삽입된 곳이 예상치 못한 부분이라 관객 입장에서는 조금 당황하게 된다. 흑백 영화 시대의 뮤지컬 주인공처럼 갑자기 노래를 부르는 여주인공을 바라보다 보면 첫 편이 막을 내린다.
1934년의 렉싱턴 호텔 661호에는 부부가 살고 있다. 알 카포네가 감옥에 갇힌 후 2인자가 되는 남자와 그의 아내의 이야기다. "이 도시에 나보다 안전한 곳은 없다"는 말로 아내를 묶어두고 있는 남자에게 그가 믿는 '조직의 시스템'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이 편에 뮤지컬적 요소는 없지만 역시 예전 영화가 가물거린다. 뭘까? 옳거니, 1990년대 쿠엔틴 타란티노의 "포룸"같은 영화가 떠오른다. 음모와 배신과 막장이라면 이미 쿠엔틴 타란티노가 다 해버렸다. 1934년의 시카고보다 더하면 더했지 그 보다 못할, 물러 터진 타란티노가 아니다.
1943년의 렉싱턴 661호에서는 좀 더 어두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이미 쿠엔틴 타란티노가 머리에 들어와 버렸다. 도무지 뽑아낼 방법이 없다. 어떤 잔혹한 스릴러를 들이밀어도 타란티노에겐 어림없다.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왜 지금 '알 카포네'일까? 1923년에서 1943년까지의 시카고가 어땠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뭐가 되었든 당시의 조선이 훨씬 드라마틱했으리라 나는 상상한다. 아마도 극본을 쓴 영국인과 나의 넘어설 수 없는 상상력의 차이일 것이다. 그들의 문화에서 알 카포네가 차지하는 위상을 나는 정확히 모른다. "대부"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같은 미국 영화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그 시기를 보고 있는지 '대충' 짐작할 뿐이다.
"빠져나갈 수 없는 폐쇄된 공간에서 극단적인 상황에 부딪혔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인간의 심리를 여러 캐릭터를 통해 보여준다"는 연출진의 설명에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극단적 상황에 부딪힌 인간의 심리'가 도통 느껴지지가 않는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배우들의 노력은 대단하다.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부족하다. 원 대본이 문제인 것인지 연출이 내 상상을 뛰어넘는 기교를 보여준 탓인지 알 수는 없다. 이전 버전들이 호평을 받았던 이유에 대해 곱씹게 된다. 내가 문제인가, 이 연극이 문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