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노 드베르주라크

- 국립극장 NTOK LIVE

by 지안

NT Live(National Theatre Live)라는 것이 있다. 영국 국립극장이 2009년부터 영미권 연극 중 화제작을 촬영해 전 세계에 공급하는 프로그램이다. 우리나라 국립극장은 2014년부터 그중 몇 편을 골라 선보이고 있었다. 2020년부터 국립극장은 NT Live에 네덜란드의 ITA Live, 프랑스의 Pathe Live까지 더해 NTOK Live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국립극장의 커다란 화면을 통해 무대 위 배우들의 작은 움직임까지 볼 수 있고, 엄청난 양으로 쏟아지는 외국어 대사는 자막으로 번역되어 다가온다. COVID19 시국이라 해외에 가서 직접 무대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NTOK Live로 채운다는 소리는 못하겠다. 그러기에는 내 외국어가 너무 짧다.


내게 NTOK Live는 해외의 연극을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NT Live만 상영했을 때, 연극 시작 전 ‘NT Live란 무엇인가’ 하는 소개 영상까지 봐야 해서 좀 지루한 감이 있었는데, NTOK Live로 바뀐 후에 소개 영상은 삭제되었다. 만세~!




2019년 런던의 플레이하우스에서 초연된 <시라노 드베르주라크>는 1897년 에드몽 로스탕이 쓴 희곡 <시라노>를 원작으로 하여 ‘마틴 크림프’가 각색하고 ‘제이미 로이드’가 연출한 작품이다. 원작이 유명해서 줄거리를 말하는 것이 스포일러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다. 몸짱에, 1당 100으로 맞설 정도로 싸움을 잘하고, 훌륭한 군인인 데다 글까지 잘 쓰는, 모든 것을 가진 남자 ‘시라노’가 하필 커다란 코까지 갖고 있는 바람에 겪게 되는 슬픈 로맨스다. 새로운 <시라노 드베리주라크>의 내용은 원작과 동일히다. 배경이 프랑스인 것도 스페인 군대와 싸우는 것도, 참혹한 아라스 전투 중 록산이 찾아오는 것도 똑같다.




세상의 상식을 비웃고 잘난 척하는, 하지만 실제로도 빼어난 인물인 시라노는 자신의 얼굴, 특히 ‘코’에 대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권력이나 돈, 권위 따위는 비웃고 무시할 수 있지만 자신의 코에 대해 떠드는 사람을 만나면 폭발한다. 자신의 콤플렉스마저 웃음의 재료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미 부처의 경지에 오른 사람일 것이다. 극장에서 관객을 만날 이유가 없다.


시라노는 아름답고 지적인 사촌 여동생 록산을 사랑하고 있다. 물론 자신의 외모 때문에 절대 고백할 수 없다. 어느 날 록산이 잘생긴 크리스티앙에 빠졌다고 말하며, 심지어 크리스티앙을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한다. 대부분의 슬픈 사랑은 이렇게 전개된다. 물리치고 싶은 남자를 보호해야 하는 가련한 주인공. 시라노는 흔쾌히 제안을 수락한다. 이렇게라도 록산과 연결되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담은 절절한 편지를 크리스티앙의 이름으로 대필하면서 시라노는 사랑을 키워간다. 시라노가 쓴 편지로 인해 더 깊이 상대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생각한 록산은 크리스티앙과 결혼한다. 자, 그렇다면 록산이 정말 사랑한 사람은 누구일까? 시라노일까? 크리스티앙일까? 혹은 두 사람이 결합한 허구의 인물일까?




<시라노>는 이미 영화로도, 뮤지컬로도 많이 제작되었다. “시라노 = 거대한 코” 이기 때문에 ‘제라르 드 빠르디유’나 ‘스티브 마틴’이 시라노가 되었건, ‘홍광호’나 ‘류정한’이 주인공이 되었건 어쨌거나 커다란 코를 붙이고 나온다. 즉 ‘시라노’의 완성은 비율을 무시하고 얼굴 한가운데를 차지한 그의 ‘코’다.


하지만 이 연극 <시라노 드베르주라크>의 주인공 ‘제임스 매커보이(James McAvoy)’에게 비정상적인 코는 없다. 물론 내용상 코가 있는 것으로, 그래서 괴로운 것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굳이 분장을 통해 그 사실을 관객에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없는 것은 그것 만이 아니다. 레이스가 나풀거리는 고풍스러운 17세기 의상도, 기사들이 쓰던 모자나 펜싱 검도 없다. 삭제된 것들은 오직 대사에 의존해 관객의 상상력으로 채워진다. 희한한 경험이다.


무대 위에는 배우들이 걸터앉을 수 있는 계단과 마이크, 플라스틱 의자가 전부다. 막이 오르면 배우들은 바로 극장 밖으로 뛰어나가도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을 평범한 옷을 입은 채 등장한다. 일렬로 선 그들은 할 말이 생기면 마이크를 잡고 대사를 전달한다. 17세기 사람 ‘시라노’는 운문의 천재였다. 그의 편지는 내용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라임까지 척척 들어맞아 록산의 심금을 울렸다.




17세기 식 고색창연한 운문은 이미 사라졌지만, 21세기에는 21세기식 운문이 있다. 랩이 그것이다. 당연히 21세기 평상복을 입고 무대에 선 시라노는 랩을 한다. 즉 제임스 매커보이가 랩을 한다. 가슴 떨리게 바람직히다. 모든 대사가 랩인 것은 아니지만 짜릿함을 주기에는 충분한 분량이다. 기사들의 칼싸움은 마이크를 통한 베틀로 구성된다. 등장인물의 죽음은 마이크의 전기선이 빠지는 것으로 극적 효과를 더한다. 이토록 간단한 장치로 이만큼의 효과를 주는 무대는 처음이다.


촬영으로 만나는 연극이라 현장감이 사라진 대신, 감정에 호소해야 하는 부분에서 클로즈업된 배우의 얼굴은 몰입감을 준다. 아무래도 실제 무대라면 앞부터 몇 줄을 제외하고 배우의 표정을 완벽하게 파악하기는 힘들다. 오페라글라스가 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NTOK Live에서는 눈동자의 움직임까지 보인다. 빠져들게 된다.


<어톤먼트>, <엑스맨>의 제임스 매커보이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봐야 하는 연극이다. 내 경우는 별 감흥 없던 배우였는데도 연극을 보고 빠져버렸다. 그의 대사 하나에 어두운 정원이 펼쳐졌다, 화려한 극장이 되었다, 적군에 둘러싸인 전쟁터가 된다. 인간의 상상력이란 대단한 것이다. 모든 것을 만들어 보여줄 때보다 텅 빈 무대에서 오히려 감각적으로 발휘된다.


록산이 사랑한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정의할 수는 없다. 도대체 ‘사랑’이란 것이 뭔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연극 <시라노>가 새롭고 창의적이며 강렬하다는 것은 알겠다. 그들의 사랑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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