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테베의 왕이다. 오이디푸스 왕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리스 신화나 소포클레스보다 오히려 프로이트가 아닌가 싶지만(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그 '오이디푸스'입니다), 신화든 신경증이든 같은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므로 좀 길지만 줄거리를 적어 보겠다. 줄거리를 알고 계시는 분은 건너뛰셔도 무방하다.
테베의 왕 라이오스와 어머니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남자아이가 태어난다. '아버지를 죽일 운명'이라는 신탁을 들은 부모는 아이를 숲에 버린다. 목동에 의해 발견된 아이는 이웃 나라인 코린토스의 왕에게 입양되어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으로 자란다. 시간이 흐른 후 코린토스에서 '아버지를 죽일 운명'이라는 동일한 신탁을 받게 된다. 운명이란 그런 것이니까. 이미 장성한, 코린토스의 왕을 아버지로 알고 있는 오이디푸스는 운명을 피해 집을 떠난다.
테베로 여행하던 중 길에서 라이오스 일행과 싸움을 벌이게 되고, 혈기 왕성했던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를 죽여 버린다. 테베의 골칫거리였던 '스핑크스'마저 물리친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이 되면서 당연히 왕비인 이오카스테와 결혼한다. 쌍둥이 아들인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 딸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를 낳고 잘 살던 중 테베에 역병이 번진다.
오이디푸스는 처남인 크레온을 델포이 신전으로 보내 역병의 원인을 묻는다. 신탁은 '라이오스를 죽인 자를 찾아 복수하면 역병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크레온은 신탁의 비밀을 풀기 위해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데려온다. 예언자는 오이디푸스가 살인자이며,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할 것이라고 말한다. 오이디푸스는 왕위를 탐낸 크레온이 예언자와 짜고 일을 꾸민 것이라며 화를 낸다. 그러나 예언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두 눈을 찔러 앞을 볼 수 없게 된다.
여기까지가 오이디푸스 신화의 줄거리이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반항심을 품고 어머니와 함께 하려는 심리를 말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이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이 가문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오이디푸스의 사연을 안 사람들은 그를 테베에서 쫓아내라고 말한다. 그를 추방해야 역병이 멈출테니까. 크레온은 섭정의 권한으로 오이디프스를 추방하는데,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은 이를 못 본 척한다. 오이디푸스는 두 아들에게 '서로를 죽일 것'이라는 저주를 퍼붓으며 테베에서 쫓겨나고, 그의 딸들만이 뒤를 따른다.
아버지를 쫓아낸 후 두 아들은 1년씩 번갈아 테베를 다스리기로 합의한다. 하지만 에테오클레스가 1년 동안 왕을 한 후에도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자 폴리네이케스는 이웃나라 아르고스의 군대를 끌고 와 테베를 공격한다. 오이디푸스가 죽은 후 테베로 돌아온 안티고네는 두 사람을 화해시키려 하지만 실패하고, 결국 오이디푸스의 저주대로 두 아들은 서로를 죽이며 전사한다.
왕이 된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의 장례를 훌륭하게 치러준다. 그러나 폴리네이케스의 시체는 벌판에 던져 버린 후 시신을 매장하는 사람은 사형시키겠다고 선포한다. 아무리 왕이 되고 싶었다지만 이웃나라의 군대까지 끌고 들어온 것은 매국이며 반역이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안티고네는 사형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혈육의 의무를 지키고자 한다. 안티고네는 오빠인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러준다.
이 사실을 안 크레온은 안티고네를 감금하고, 그녀는 자살한다. 여동생 이스메네도 언니와 같은 선택을 한다. 안티고네의 약혼자이자 크레온의 아들이었던 하이몬 역시 연인의 뒤를 따라 자살하고, 아들의 죽음을 슬퍼한 크레온의 아내도 자살한다.
여기까지가 소포클레스가 쓴 [테베를 공격한 일곱 장수]와 [안티고네]의 스토리다. 우울로 점철된 한 가문의 이야기다.
그런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현대로 가져온 것이 이 연극, [오이디푸스]다. 2018년 네덜란드 무대에 올려진 작품이며, 영국의 극작가 로버트 아이크(Robert Icke)가 각색했다.
너무 유명한 이야기이다 보니 현대에 맞게 어떻게 각색했을지 짐작도 가지 않던 작품이다. 아버지가 죽은 후 왕이 된 삼촌이 햄릿의 어머니와 결혼하는 것처럼, 먼 과거에는 새로운 왕이 직전 왕의 부인을 자신의 배우자로 삼는 경우가 흔했다.
하지만 지금은 21세기. 오이디푸스 신화의 가장 중요한 연결 고리 같은 이 장치를 어떻게 구현했을지 궁금했다. 예언은 실현되고, 오이디푸스는 두 눈을 찌를 것이고, 이오카스테는 자살할 것이다. 관객은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떤 마법을 부려 21세기에 맞게 그 상황을 만들어낼까?
연극의 시작은 선거일 인터뷰 화면이다. '라이오스'가 죽은 뒤 오랫동안 공석이던 총리 선거에서 가장 당선이 유력한 후보는 오이디푸스다. 그는 자신이 당선되면 '라이오스 죽음'을 재조사하고, 자신의 출생증명서를 공개하겠노라 호언장담한다. 인터뷰 화면이 작아지며, 선거 사무실로 만들어진 무대 위 티브이 화면임이 드러난다.
인터뷰를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온 오이디푸스는 "나는 나다"라고 중얼거린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다며 처남인 크레온에게 소리를 지른다. 거만하고 독선적이며 자신감 넘치는 정치인의 표본처럼 보인다.
그는 자신보다 13살 많은 이오카스테와 결혼해 쌍둥이 아들인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 딸인 안티고네를 두고 있다. 신화에서 비중이 떨어지는 이스메네는 등장하지 않는다. 두 아들은 아버지의 당선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한다.그들은 아버지의 권력을 흠모한다.
오이디푸스는 선거 사무실에서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개표 결과를 지켜보기로 한다. 때마침 나타난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오이디푸스가 라이오스를 죽였다고 말하며, 크레온이 총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불안해진 오이디푸스가 화를 참지 못하는 사이, 갑자기 나타난 어머니는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며 그를 재촉한다.
식사 도중 두 아들은 서로를 죽일 것처럼 싸움을 벌이고, 아내는 감춰두었던 과거를 고백한다. 이오카스테의 고백은 극의 결과를 뻔히 알고 있는 관객들을 놀라게 만든다. 맞다, 저런 방법이 있다,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가 신탁 같은 것을 받지 않고도 아이를 버리게 만드는 방법이. 이오카데스를 왕관처럼 이어받지 않고도 오이디푸스와 결혼하게 하는 마법이 과연 있었다.
고대의 비극은 상상 가능한 현재의 장면으로 바뀌며 감정을 자극한다. 실제 일어날 법한 비극이라 더 슬프다. 관객은 허를 찔린 채 어쩔 줄 모른다. 객석 이곳저곳에서 한숨이 터져나왔다.
어머니의 고백을 들으며, 오이디푸스는 더 이상 '나는 나다'라는 말을 할 수 없다. 대신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문제에 빠진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 모두가 선의를 가지고 조금씩 감춰 놓은 진실 때문에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절정에 도달하지만 누구도 그를 도울 수 없다.비극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다. 멋지다.
네덜란드의 연극은 처음봤다. 자막이 제공되지 않았다면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보는 배우들의 낯선 연기지만 흡입력이 대단하다. 다만 지금껏 보던 작품들과는 감정의 결이 조금 다르다. 우리나라 무대에 올려졌다면 아마도 19금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고전을 현대에 맞게 각색한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모범답안 같은 연극이다. 아직도 이오카스테의 눈물이 떠오른다. 멋대로 주어진 운명 앞에서 인간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나의, 그리고 당신의 운명에 자비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