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레스트로이카’는 러시아가 ‘소련’이던 1985년,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실시한 일련의 개혁 정책들을 말한다. ‘페레스트로이카’는 공산당과 노동조합 개혁 같은 정치, 행정 부분뿐 아니라, 군비 축소나 서방 관계의 변화까지 다방면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모든 변화의 열망은 보수적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에 부딪히는 법. 고르바초프는 1991년 공산당 보수파들이 일으킨 쿠데타로 축출된다.
그렇게 고르바초프를 없앴다고 그 모든 움직임이 멈추고, 상황이 페레스트로이카 이전으로 돌아갔을까? 천만에.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덕분에 소련은 해체됐고, 술주정뱅이 옐친을 지나 죽을 때까지 러시아의 수장일 것 같은 블라디미르 푸틴의 시대까지 도착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벌어진 지금, 그래서 러시아의 변화가 ‘좋았다’ 고만 말할 수는 없겠으나, 아니면 어쩔 텐가? 변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으면, 그럼 무슨 방법이 있지? 이런 질문에 답을 주는 것이 바로 이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 파트 투 : 페레스트로이카]이다.
‘페레스트로이카’ 답게 무대의 시작은 공산당의 연설로 시작한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움직이지 말라’고 그는 한껏 목소리를 높여 주장한다. 짜증을 내는 것도 같다. 새로운 껍질도 준비하지 않은 뱀이 탈피를 시작한다면 연약한 뱀은 죽을 수밖에 없다며 호통을 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인 것도 같다.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시작하지 말라. 하지만 그 뒤에 감춰진 말은 다음과 같다. ‘완벽하게 끝나는 준비는 없다’.
[엔젤스 인 아메리카 파트 원: 밀레니엄이 다가온다]는 프라이어가 천사와 마주하면서 끝이 났다. 즉 동성애자이자 AIDS로 죽어가는, 소수자인 프라이어가 ‘예언자’로 선택된 이후의 시간이 [엔젤스 인 아메리카 파트 투]에서 벌어진다. 아픈 것은 프라이어만이 아니다. 로이 역시 파트 원에서 이미 쓰러졌다. 로이를 병원으로 인도한 것은 에델 로젠버그(귀신)다. 귀신의 형상을 보고 있는 로이의 상태가 좋을 리 없다. 이런 조건을 갖춘 채 두 번째 파트가 시작된다.
루이스와 조의 애정 전선은 그린라이트다. 조는 이제야 자신의 ‘게이 정체성’을 찾았으니 돌아올 다리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앞으로 직진 중이다. 집을 나왔고, 루이스와 함께 살기 시작했으며, 자신을 걱정해서 솔트레이크 시티부터 달려온 어머니의 연락은 계속 무시하고 있다. 늦바람이 이렇게 무섭다.
아무 곳으로도 갈 수 없는 하퍼는 자신의 환상 속 여행을 계속한다. 다행히 하퍼에게는 그 여행을 지속시켜 줄 약물도 충분하다. 다만 현실과 약간의 충돌은 어쩔 수 없다. 그럴 때 도와줄 사람이 남편인 조였는데……. 그는 루이스에게 가 버렸다. 위기의 순간. 다행히 시어머니인 한나가 나타났다. 한나는 아들을 돌보기 위해 뉴욕까지 온 것이지만, 뭐 대신 며느리를 돌본다고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세상이 계획대로만 흘러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병원으로 실려 온 로이를 담당하게 된 것은 흑인이자 동성애자 드랙퀸인 벨리즈다. 처음 약을 챙겨 병실로 들어간 그에게 로이는 당장 나가라고 소리를 지른다. 백인 간호사에게 간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말로 흑인인 벨리즈를 모욕한다. 그런 말에 쉽게 상처받을 벨리즈가 아니다. 주사 바늘을 들이밀며 ‘날카로운 물건을 다룰 때’는 조심하라며, ‘바늘이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꽂을 수도, 하수도 배관이 쑤시고 들어오는 것처럼 아프게 만들 수도 있다며’며 로이를 협박한다. 말로 흥한 자는 말로 조용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순리다.
이런 벨리즈도 천사를 만났다는 프라이어 앞에서는 당황한다. 자신이 예언자가 됐다고 주장하는 병든 친구는 벨리즈로서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최대한 친절하게 ‘이성적으로 이해 가능한 범위’ 안에서 납득해보려고 하지만 안 된다. 세상 일이 다 이해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난 전 남자 친구의 새 애인’을 보기 위한 프라이어의 여정에는 흔쾌히 동행한다. 이런 일을 해주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존재를 알게 된 ‘새 애인’ 조의 뒤를 밟는 프라이어. 조와 한나가 말싸움을 벌이고 돌아선 후, 프라이어는 한나의 도움으로 병원까지 도착한다. 우리는 가끔 ‘낯선 이의 친절에 의존’하게 될 때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곳에서 프라이어와 한나는 천사를 만난다. 그런데 그 천사, 조금 이상하다. 어쩐지 어정쩡하고 덜 떨어져 보인다. 애초에 예언서라는 것도 부엌 바닥에 파묻혀 있었다. 아픈 프라이어가 저 바닥을 파내라는 거냐며 화를 내자 천사는 우물쭈물 방법을 수정한다. 프라이어가 천사에게 엉겨 붙어 요구사항을 늘어놓자 어쩔 줄을 모른다. 천사는 명령을 전달하는 메신저일 뿐, 누군가의 요청을 들어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천사란 뭔가를 만들고, 상상하고, 요구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만 그럴 뿐이다. 할 수 없이 투덜대는 예언자를 천상으로 데리고 간다.
이제 프라이어가 천상의 존재들에게 자신의 진심을 말한다. 완벽하고, 변하지 않고, 한결같은 천사들에게 고통받고 변화하고 상처받는 인간으로서 말한다. 과연 프라이어는 어떤 말을 들려줄까.
이 연극은 17시 30분에 시작해서 22시 20분에 끝났다.
두 번의 인터미션을 착실하게 이용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허리와 엉덩이가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파트 원] 때와 마찬가지로 단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다. 몸은 아프다고 아우성인데 예언자 프라이어의 꿈 이야기를 듣는 벨리즈처럼 내 머리는 도통 공감해주지를 않는다. 허..허리를..조..조금 움직여 볼까..
무대는 [파트 원] 때와 마찬가지로 원형무대다. 하지만 좀 더 단순해졌다. 로이와 프라이어가 대부분 침대에 누워있는 덕분이다. 대신 비 내리는 몰몬선교센터의 모습이 압권이다. 음악이 거의 사용되지 않아서 극이 끝나고 나면 빗소리가 여운처럼 남는다.
로이 역이 한지일 배우나 프라이어 역의 정경호 배우, 루이스 역의 김세환 배우는 [파트 투]에서도 역시 빛났다. 하지만 ‘조’라는 인물의 입체감이 부여되면서 정환 배우의 모습이 가장 크게 보였다. 하지만 연극에 출연하는 8명의 배우 누구도 빼놓을 수 없다. 모두에게 엄지 척을 해드리고 싶다. 물론 나의 최애는 역시 벨리즈다. 박용우 배우는 정말 사랑스럽다.
다시 말하지만 이 연극, 쉽지 않다. 1950년대 이후 미국사를 어느 정도는 숙지해야 대사 이해가 가능하다. 루이스와 조가 언쟁을 벌이며 “아직도 그렇게 행동하다니 부끄럽지 않습니까?”라는 대사를 누가 했느냐며 다그치는 부분이 나온다. 누가 했지? 답은 국립극단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는 [2022_엔젤스 인 아메리카_프로그램북. pdf]에 담겨 있다. 1954년 매카시 청문회 때 조셉 웰치가 했던 발언이라고 한다. 나처럼 연극 내내 ‘뭐야, 뭐야’하는 답답함으로 가슴을 치고 싶지 않다면, 프로그램을 한번 훑어보고 관람하시길 바란다. 무엇보다 무료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다 보고 나서도 조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번역 상의 오류인지 모르겠다. 특히 천사들의 대화는 ‘인간들의 구어체’라기보다는 ‘셰익스피어의 시’처럼 진행된다. 그 대사들이 덜 바른 가시처럼 귀에 걸린다. 프로그램 북에 있는 나와있는 구절만 해도 그렇다.
온 마음으로 바라는 것을 뒷마당에서 찾지 못한다면 애초에 잃어버린 것이 아니니.
영어 원문을 보지 못해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네 마음이 원하는 걸 아무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면, 그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었다” 뭐 이런 의미인 것 같다. 하지만 위 문장이 대사로 들리면 ‘응, 뭐래?’ 하는 마음이 된다. [파트 원] 때 보다 압도적으로 이런 부분이 많다. 내 이해력 부족일 수도 있긴 하다. 하지만 이런 나 같은 사람조차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면 좋겠다.
‘신’은 사라졌다. 천사들이 다급하게 프라이어까지 찾아온 이유다. 그리고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
연극과 아무 상관없지만, 저 대사만은 너무 강렬하다. 2014년 이후 트라우마로 남은 말이다.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멈출 수 없다. 프라이어의 말처럼 우리는 돌이 아니다. 우리는 생물이다. 그러니 계속 살아갈 것이고 변화할 것이고, 진보할 것이다.
극 중 프라이어가 울며 말한다. 죽어가고 있고, 몸은 이미 망가졌다. 온몸에 퍼진 카포시 육종을 몰몬교도 한나에게 보여주며 그가 말한다.
"이 끔찍한 꼴을 봐요."
누구보다 보수적이며, 아무것도 이해해줄 것 같지 않은 한나가 천천히 말한다.
"그건 그냥 암이에요.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죠."
우리는 가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을 친구로 만들 수 있다. 의외의 장소에서 위안을 받을 수 있다. 사랑에 빠지는 대상은 늘 타인이다. 천사가 아닌 '인간인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최근에 본 연극 중 가장 낙관적이고 강렬한 작품이다. 쉽지 않지만, 준비를 하고서라도 꼭 관람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그 대신 관람 전 스트레칭은 필수다.